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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판 백강혁’ 조항주 경기북부권역외상센터장 쓴소리
조항주 경기북부권역외상센터장(가운데)이 지난해 7월 소방청 응급의료헬기 ‘119 Heli-EMS(Emergency Medical Service)’에 탑승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본인 제공


병원 경영진 ‘돈 먹는 하마’ 인식에 최소 인력·최대 업무 감당

의대 증원 필요하지만 전제조건일 뿐…몇명 늘어도 도움 안돼

현장선 드라마보다 전율…후배들, 의사의 진짜 재미 알아주길


2023년 서울아산병원에서 간호사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 숨졌다. 당시 이 병원은 ‘뇌졸중 적정성 평가 1등급 병원’이었다.

의료진이 현장에 복귀하고 의대 정원이 늘면 ‘응급실 뺑뺑이’가 사라질까. 지난달 서울 서초동에서 만난 조항주 경기북부권역외상센터장(50)은 이 간호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사례로 들었다.

“아산병원은 중증질환 전문의나 전공의들이 근무와 수련을 희망하는 1순위 병원이에요. 그런데도 이런 일이 생긴 데엔 여러 사정이 겹쳐 있습니다.”

조 센터장은 2012년부터 소방청 응급의료헬기에 직접 탑승해 온 응급 전문의로, 소방청 버전의 ‘닥터헬기’ 시스템을 구축한 선구자 중 한 명이다. 2015년 경기북부권역외상센터장이 됐고, 지난해엔 대한외상학회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필수의료’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추진된 의대 증원 정책이 지난 1년간 ‘정원을 늘리느냐 마느냐’ ‘몇명을 늘리느냐’만 가지고 갈등을 빚어왔던 것 같다”며 “몇명을 늘리든 그것만으론 ‘필수의료’가 살아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먼저 지나치게 세분된 전문의 체계를 문제로 봤다. 그는 “신경외과 전문의라도 ‘뇌종양’ 전문의는 ‘뇌출혈’ 경험이 없고, ‘뇌출혈’ 전문의는 ‘척추’ 관련 경험이 없는 식”이라며 “신경외과 응급대응력을 갖추려면 분야별 전문가를 모두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상황은 주로 야간에 발생한다. 24시간 대응을 위해선 3교대 체제, 즉 이런 팀이 최소 3개는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게 가능한 병원은 한국에 없습니다. 아산병원마저 사건 당시 개두술(머리를 여는 수술)이 가능한 신경외과 의사는 2명뿐이었어요. 모두 비번인 날 일이 터진 거죠.”

‘한 우물만 파는 전문의’가 양산되는 건 ‘그래도 되는 구조’ 때문이라고 했다. “개두술도 가능하고, 척추도 볼 수 있다고 해서 돈을 더 받는 게 아니에요. 그냥 ‘호봉’만큼만 받습니다. 오히려 괜히 이 수술 저 수술 관여했다가 사고라도 나면 문책이나 소송만 당하죠.”

‘수련 체계 고도화’는 뒷전인 채 전공의 수련 시간만 기계적으로 줄인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했다. “외과의 모든 수술을 두루 실습할 수 있는 시기는 전공의 시절뿐이에요. ‘펠로’가 되면 전문 분야에만 집중하거든요. 줄어든 전공의 수련 시간에 맞춰 수련 체계를 ‘근로’가 아닌 ‘견습’에 맞췄어야 했는데 그게 안 된 거죠. 수술 하나도 제대로 배우기 힘든 상황이에요.”

인력 문제는 중증외상 분야에서 특히 심각하다고 했다. “팔다리의 동맥을 봉합해 과다출혈을 막는 혈관결찰술의 의료수가가 일반 병원에서 MRI를 ‘처방’하는 수가보다 적습니다. 그런데 드는 인력과 시간은 전자가 훨씬 많죠. 병원 경영진에게 ‘필수의료’는 ‘돈만 먹는 하마’예요. 권역외상센터 정도를 제외하면 최소한의 규모를 유지하는 것조차 벅차요.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대의 업무를 감당하는 구조가 되죠.”

이런 의료수가 체계의 배경엔 필수의료가 ‘소수 중의 소수’라는 현실이 있다고 했다. 그는 “개복(복부를 절개) 혈관결찰술은 수년째 수가가 80만원대인 반면 담낭절제술은 해마다 올라 요즘은 150만원 정도”라며 “응급실이나 외상센터 등에서만 생명이 위급한 경우 시술되는 전자보다, 일반 병원에서 널리 시술되는 후자의 수가를 올려달라는 목소리가 의사단체 내에서조차 더 크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 겹치면서 전문의는 물론 전공의 한 명 모시기조차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고 했다. “비록 개원의보다 돈은 못 벌지만 연구하고, 연구한 기법을 임상에서 시도하고, 학계에서 인정받고, 그걸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한때는 이런 맛이라도 있었어요. 그러나 인력이 줄면서 맡아야 할 수술과 업무는 느는데 논문과 강의 의무는 여전하고, 뭐 하나 제대로 할 짬도 없고, ‘워라밸’은 최악입니다. 이런 미래를 전공의들에게 권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그는 의대 증원은 필요하지만 ‘전제조건’일 뿐이라고 했다. “‘2000명 증원’은 개원의 시장을 죽여 공공의료를 살리겠다는 얘기죠. ‘인력 초과공급 상태’를 만들면 개원의 시장에서 도태된 이들이 ‘필수의료’로 올 거라는 계산인데, 마치 ‘사교육 시장을 죽이면 공교육이 살아날 거야’ 수준의 발상인 것 같아요.”

그는 ‘공교육’ 자체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한 우물만 파는 전문의’들과는 별도로 통합 진료가 가능한 응급의료 인력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공의 수련의 ‘질’을 담보할 대책도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도 전공의 근무시간을 엄격히 제한합니다. 다만 전문의 자격 부여 요건은 엄격하고 체계적이에요. 일정 기간을 수료하면 대부분 전문의가 되는 한국과는 다르죠.”

의사들의 노동 강도 완화를 위해 ‘진료지원(PA) 간호사’ 등 전문성을 가진 의료인을 적극 양성해 보다 많은 진료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의료수가 체계를 넘어 건강급여 체계 자체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감기 등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질환의 보장 범위를 줄이고, 그 재원을 필수의료에 집중하는 식의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공의료 구축에 드는 막대한 재원을 감당하려면요.”

그는 “<중증외상센터> 같은 드라마보다 현실의 의학 현장이 훨씬 재미있을 것”이라며 “후배들이 의사 일의 진짜 재미를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온몸과 얼굴에 피 칠갑을 하기도 해요. 끝도 없이 밀려드는 환자 때문에 컵라면 먹을 시간도 못 내기도 해요. 의료사고나 민원에 휘말리기도 하죠. 그래도 ‘아무것도 안 했다간 이 사람은 100% 죽는다’는 생각이 들 때 과감히 행동하는 용기, 그래서 한 생명을 구했을 때 느끼는 전율, 구하지 못했을 때 떠안는 트라우마, 그걸 극복하며 이루는 진짜 ‘성장’, 그 과정을 함께해주는 동료들의 ‘전우애’…. 이런 ‘낭만’이 ‘돈 버는 것’보다 몇 배는 재밌어요.”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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