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대통령 관저 인근에 도착해 경호 차량에서 내려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석방되면서 국민의힘의 조기 대선 셈법이 복잡해졌다. 윤 대통령 행보 하나하나가 경선과 본선 국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당내 경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윤심’(윤 대통령 의중) 후보를 밀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당내 일각에서는 친윤석열(친윤)계가 당 후보로 낙점되면 대선에서 불리해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직후부터 빠르게 당의 구심점 역할을 되찾고 있다. 그는 국민의힘 의원들과 만나 “잘 싸워줘서 고맙다”고 격려하고, 당 지도부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전했다. 국민의힘 지도부 역시 조만간 윤 대통령 관저를 찾기로 했다. 한 친윤계 의원은 9일 기자와 통화하며 “이제 불구속 상태이기 때문에 정치권에 주는 메시지에 다소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향후 윤 대통령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윤 대통령이 당분간 불구속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민의힘의 조기 대선 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당초 국민의힘은 지도부 내에서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를 전후로 윤 대통령과 거리 두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석방된 윤 대통령이 적극적인 행보를 하면 이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된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대통령 석방이) 보수 전체로 보면 별로 안 좋다”며 “윤 대통령 성격상 탄핵되면 장외 정치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당내 경선에서 윤심 후보를 내세울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앞서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당대표·비상대책위원장을 정하는 과정에도 사실상 개입했다. 2023년 초 김기현 의원이 윤심을 등에 업고 대표로 선출됐다. 한동훈 전 대표도 최근 발간한 책에서 “2023년 말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게 된 것은 대통령의 부탁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당 후보 결정 시 당원선거인단 투표가 50%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윤심 후보로는 여론조사상 지지율이 앞서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언급되고 있지만 윤 대통령 의중은 확인된 바 없다. 범친윤계 후보로 분류되는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나경원·윤상현 의원 등이 언제든지 윤심 후보로 지목될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김 장관 지지율의 상당 부분이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윤심 향방에 따라 언제든지 다른 후보가 부상할 수 있다.
당내 일각에서는 윤심 후보가 본선에 오르면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윤심 후보의 중도 확장력이 부족할 것이란 시각이다. 한 비윤석열계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대통령 석방은) 당에는 악재”라며 “윤심 후보가 되면 우리 당은 선거에서 무조건 진다”고 말했다. 그는 “비상계엄 책임이 있는 윤 대통령이 활동하면 (중도층이)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하겠나”라며 “이재명 대표에게는 좋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윤 대통령이 파면 선고를 받는다면 이후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파면된 대통령의 적극적인 행보가 오히려 역풍을 불러올 수도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파면된 대통령 메시지가) 진짜 별로라는 반응이 나오면 (그 여파는) 모른다”며 “지난 8일 석방되면서도 고생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웃는 걸 보고 (여론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