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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추진 잠수함 건조 현장을 처음 공개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속도를 내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핵잠 관련 기술을 챙기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또 트럼프 행정부 들어 처음 진행되는 한·미 연합연습을 코앞에 두고 보란 듯 러시아와 군사 밀착을 암시하며 ‘몸값’을 높이려는 속셈도 담겨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요 조선소들의 함선 건조 사업을 현지에서 료해(점검)하고 선박 공업의 획기적 발전을 위한 전략적 방침을 제시했다"고 8일 보도했다. 노동신문=뉴스1



北, SLBM·SLCM 동시 탑재한 핵추진 잠수함 건조 가능성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중요 조선소들의 함선 건조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했다면서 "당 제8차 대회 결정에 따라 추진되고 있는 핵동력 전략 유도탄 잠수함 건조 실태도 현지에서 요해(파악)했다"고 지난 8일 보도했다. 핵동력은 핵추진을, 전략 유도탄은 핵탄두를 탑재한 탄도 미사일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갖춘 핵추진 전략잠수함(SSBN)을 건조 중이라는 주장으로 보인다.

여기엔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이 탑재될 수도 있다. 국방정보본부는 이미 북한이 수직발사형 SLCM을 개발해 중형 잠수함인 ‘김군옥영웅함’에 탑재할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25일 해당 미사일을 콜드런치 방식으로 시험 발사한 뒤 “7507∼7511초 간 1500㎞의 비행구간을 타원 및 8자형 궤도를 따라 비행해 표적을 명중 타격했다”고 밝혔다. 함정에서 콜드런치 수직발사관을 갖추게 되면 어뢰발사관보다 연속 발사가 용이해지는 데다, 방향 전환을 뜻하는 미사일 즉응성에서도 강점을 지닌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요 조선소들의 함선 건조 사업을 현지에서 료해(점검)하고 선박 공업의 획기적 발전을 위한 전략적 방침을 제시했다"고 8일 보도했다. 김정은이 핵추진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함정을 돌아보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북한 매체의 이번 보도는 핵추진 잠수함과 관련해 실체를 드러낸 첫 현장 사진 공개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사진 속 잠수함의 크기다. 김정은 옆 잠수함을 받치는 레일 바퀴 숫자가 2쌍씩 짝을 이뤄 최소 14개가 포착됐는데, 5000t급 이상 크기로 추정된다. 사실이라면 3000t급 디젤 잠수함인 김군옥영웅함보다 덩치를 훨씬 키운 것이다. 6000t급 이상인 미 로스엔젤레스급(SSN)에 버금가는 크기다. 외형만큼은 핵추진 잠수함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4년 넘게 말로만 무성한 핵잠, 드디어 공개 행보

북한의 공개 시점 ‘택일’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북한의 핵추진 잠수함 사업은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연구가 끝나 최종심사 단계에 있다”는 김정은의 2021년 1월 8차 당대회 발언이 출발점이었다. 이후 한동안 소식이 뜸하다가 김정은은 2023년 9월 전술핵공격잠수함 ‘김군옥영웅함’ 진수식에서 “앞으로 계획돼 있는 신형 잠수함들 특히 핵추진 잠수함과 함께…전반적인 잠항작전능력을 향상시키겠다”고 다시 화두를 던졌다. 김군옥영웅함이 핵무기를 탑재했다는 의미에 그친 ‘유사’ 핵잠수함이었다면 진짜 핵추진 잠수함은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

김정은은 지난해 1월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 '불화살-3-31형' 시험발사 현장에서 핵추진 잠수함 얘기를 재차 꺼냈다. 북한 매체는 김정은이 이 자리에서 “핵동력(추진) 잠수함과 기타 신형 함선 건조 사업과 관련한…당면 과업과…집행 방도에 대한 중요한 결론을 주셨다”고 보도했다. 군 당국 역시 지난해 10월 “최종적으로 원자력 기술을 적용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핵추진 잠수함으로 보이는 함정의 초기 건조 단계가 포착됐다”고 확인한 적이 있다.〈중앙일보 2024년 10월 8일자 2면〉

이처럼 김정은이 핵추진 잠수함 집착하는 건 ‘게임 체인저’로서의 능력 때문으로 풀이된다. 핵추진 잠수함은 본토가 공격당하더라도 수중에서 얼마든지 반격이 가능한 이른바 ‘제2격(Second Strike)’ 개념의 핵심으로, 핵 위협 능력을 급격히 끌어올릴 수 있다. 이 때문에 군 당국은 북한 핵추진 잠수함을 김정은의 ‘버킷 리스트’로 보고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해 왔다.



러·우 종전, 한·미 연합연습 앞두고 ‘몸값’ 높이기 속셈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요 조선소들의 함선 건조 사업을 현지에서 료해(점검)하고 선박 공업의 획기적 발전을 위한 전략적 방침을 제시했다"고 8일 보도했다. 김정은이 핵추진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함정을 돌아보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핵잠과 관련해 연기만 피워온 북한이 지금 현장을 공개한 건 우크라이나전 종전 협상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종전이 이뤄지기 전 러시아로부터 핵추진 잠수함 관련 기술을 지원 받겠다는 의지 표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지난해 10월 1만1000여명 규모로 1차 파병에 나선 뒤 지난 2월 2차로 대규모 파병을 감행했다. 종전을 앞두고 베팅 금액을 올려 ‘지분’을 확보하려는 심산으로 보인다.

북한이 오는 10일 실시되는 상반기 한·미 연합연습 ‘자유의 방패(Freedom Shield·FS)’ 이틀 전 전격 공개에 나선 점도 주목된다. 군 관계자는 “원거리 작전 능력을 지닌 핵추진 잠수함은 한반도 외 미군 기지를 넘어 미 본토를 향한 위협도 상징한다”고 말했다. 김여정이 지난 4일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CVN-70) 부산 입항 당시 “우리도 전략적 억제력 행사에서 기록을 갱신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미국을 향한 이런 엄포가 허언이 아니라는 점을 핵추진 잠수함 공개로 강조했다는 의미다.



소형 원자로 자체 확보 비현실적…러시아에 ‘베팅’ 가능성

다만 북한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에 대해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핵추진 잠수함은 농축 우라늄으로 증기를 발생시켜 터빈을 돌리는 원리로 작동하는데, 이를 위해선 밀폐 구조의 소형 일체형 원자로가 필요하다. 고온·고압을 견디는 특수강, 배관 등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습득하고 함정에 적용하는 데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날 공개된 사진만으로는 북한이 이런 기술을 확보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

러시아가 기술이나 원자로를 통째로 지원할 가능성도 그래서 거론된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비밀리에 소형 원자로 시험을 진행하면서 러시아의 기술을 지원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관련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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