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과 박민수 제2차관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생들이 수업에 복귀하면 2026학년도 의대정원을 2000명 증원 이전인 3058명으로 되돌리겠다는 정부 발표를 두고 후폭풍이 거세다. 정부가 의·정 갈등 수습을 위해 “의료개혁 후퇴”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내놓은 조치이지만, 의료계와 환자단체 모두 이번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이번에도 정부가 의사 집단의 버티기에 ‘백기’를 들면서 지난 1년 간의 희생이 ‘무의미’해졌다고 했다. 반면 의료계는 의대 증원이 실패한 정책이라며 정부 인사들에 대한 문책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9일 입장문을 내고 “의대 증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중대한 정책으로, 정부가 의대생 복귀를 위해 함부로 번복할 사안이 아니”라며 정원 회귀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경실련은 “어떠한 이유로도 증원 정책은 원점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며 “정부는 언제까지 의사와 의대생의 집단행동에 질질 끌려다닐 것인가”라고 했다.
교육부는 지난 7일 ‘의대생 복귀 및 의대 교육 정상화’ 대책을 발표하고 이달 중 복귀를 전제로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2024년 수준인 3058명으로 되돌린다고 발표했다. 또 정부는24·25학번 의대생을 을 분산 교육하고, 졸업 시기를 달리할 수 있도록 하는 네 가지 모델을 제시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24·25학번 의대생을 한꺼번에 수업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은 정부가 그간 유독 의사 집단의 요구에 후퇴만 거듭하다 생긴 결과이고, 의대생들이 자초한 결과”라며 “정부가 의대 증원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은 온갖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 온 환자와 국민, 병원노동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복귀하지 않는 의대생들에게는 학칙을 엄정하게 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이제 와서 정책원점회귀라는 발표는 무책임하고 비겁하다”며 “결국 지난 1년간 환자의 희생만이 남는 개선책을 환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정부의 후퇴에도 증원에 반대하는 기존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제시된 내용으로는 교육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이 변화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정책은 실패한 정책이다”며 “이 부당한 정책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사에 대해 문책이 동반된 사과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의료계가 의정갈등의 책임자로 지목해 온 것은 보건복지부의 조규홍 장관, 박민수 제2차관 등이다.
정부 내에서도 부처간 입장이 미묘하게 엇갈린다. 이번 정원 회귀 결정은 교육부 주도로 진행됐다. 지금까지 의대 증원을 이끌어 온 복지부는 “교육부 취지는 이해한다”면서도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추계위) 관련 법률안이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돼 의대 정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냈다. 복지부 내에서도 “국민들과 현장에 남아있는 의료진만 고생한 꼴이 됐다”거나 “그동안 뭘 한 걸까 싶다”는 자조 섞인 불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