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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외모를 지적하지 않고 개인의 개성으로 보는 사회가 되어야 사람들이 편안하게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선천적 소이증으로 타인 시선 의식
수술 성공 뒤에도 우울과 불안 심화
‘다름=결함’ 편견은 깊은 좌절 불러

30대 영미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냅니다. 평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싫어합니다. 어릴 때부터 친했던 친구 몇 명이 있지만 새로운 친구를 만나지는 않습니다. 부모님은 결혼하지 않고 일도 안 하는 영미씨가 늘 걱정이지만 잔소리를 하면 싸움이 되어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영미씨는 자신의 방에서 잘 나오지 않고 주로 하는 일은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는 것입니다. 영화에 몰입되다 보면 모든 고민을 잊고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한 판타지에 빠지게 됩니다. 현실보다 판타지 속에서 더 마음이 편하고 모든 것을 잊게 됩니다.

사실 영미씨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왼쪽 귀의 위쪽 귓바퀴 부분이 없습니다. 선천적으로 없었고, 병원에서 소이증(microtia)이라고 진단받았습니다. 소이증은 귓바퀴의 형성 부전으로 인해 귓불만 있고 다른 부분은 거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겉으로 보이기에만 작을 뿐 소리를 듣는 기능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어릴 때 수술을 하려고 했지만 귀가 완전히 자란 뒤 해야 한다고 해서 그대로 두고 지냈습니다.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여자애 귀가 이렇게 생기면 어쩌냐”며 항상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왼쪽으로 길게 자라게 해서 귀를 가리도록 했습니다. 어린 영미씨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 귀가 드러나지 않도록 항상 조심시켰습니다. 사춘기가 된 영미씨는 자신의 귀가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이 수치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혹시나 놀림을 받지 않을까 늘 걱정 속에 살았습니다. 단지 크기가 작을 뿐이지만 영미씨의 마음속에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귀만 보고 있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학교를 잘 다니지 못하고 휴학을 반복했습니다. 같은 과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수업만 듣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감추어져야 하는 존재인가? 내 몸의 작은 부분인 귀 때문에 이렇게 모든 생활에 영향을 받아야 할까?’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질문했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영미씨는 드디어 귀 수술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갈비뼈 연골을 채취해 귓바퀴 속에 이식한 뒤에 양쪽 모양을 동일하게 만드는 수술이었습니다. 수술은 더할 나위 없이 잘되었고 양쪽 귀는 영미씨나 부모님 누가 보기에도 이상이 없어 보였습니다. 부모님과 영미씨는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영미씨가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태도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계속 자신의 귀를 보다 보니, 왼쪽 귀와 오른쪽 귀의 생김새가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수술한 담당 선생님도, 부모님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해도 영미씨는 재수술을 해야 되겠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습니다. 그리고 다시 왼쪽 머리카락을 기르고 귀를 가리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실망감 때문에 매사에 더욱 우울해지고 삶의 의욕까지 없어지면서 더욱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점점 더 방에 틀어박히는 딸이 걱정되어 부모님은 영미씨를 데리고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방문했습니다. 영미씨는 상담을 받으면서 연신 눈물을 흘렸습니다. 평생 마음을 짓눌러오던 왼쪽 귀의 문제를 해결한 줄 알았는데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검사상 중증도의 주요우울증과 사회불안장애로 진단되었습니다.

사회불안장애는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거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는 등의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해당 상황을 피하게 되면서 일상생활의 불편감을 유발하는 질환입니다. 사회공포증이라고도 합니다. 영미씨는 학교나 직장에서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게 되면 심한 긴장과 공포를 느꼈습니다. 호흡이 잘 안되고 어지러워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도 자주 있었습니다. 영미씨는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느낌이 들면 자신의 왼쪽 귀를 보고 거부감이 들어서 그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시험이나 면접에도 긴장하다 보니 평소보다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담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왼쪽 귀를 가린 것이 자존심과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부모님도 영미씨의 귀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가리도록 했고 영미씨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미씨에게 영향을 준 것은 소이증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신체 문제를 부끄럽게 생각하게 한 것이 영미씨가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데 큰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부모님도 ‘여자애의 외모는 이래야 한다’는 편견을 거두고 영미씨의 왼쪽 귀를 문제 삼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듯합니다. 자신을 드러내면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지적할지 몰라도 처음 몇 사람만 그럴 뿐입니다. 그것을 두려워하여 가리고 숨겨야 하는 고통은 어린 영미씨의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특정한 외모를 이상화하고 그것을 모든 사람이 동경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외모는 그 사람의 사적인 영역입니다. 외모를 지적하지 않고 개인의 개성으로 보는 사회가 되어야 사람들이 편안하게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영미씨는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통해 자신의 왼쪽 귀의 모양이 문제가 아니고 귀를 가리고 살아온 시간 때문에 자신의 성격이 만들어졌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도 영미씨의 귀에 대해서는 앞으로 언급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혹시나 자신의 왼쪽 귀의 모양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 있게 이렇게 대답하기로 했습니다.

“제 왼쪽 귀는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생겼지만 저는 제 귀가 소중합니다.”

영미씨는 이제는 자신의 귀를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드러내 보기로 했습니다.

개인별로 자세한 것은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진료, 상담하면서 파악해야 합니다. 기사만 읽고 자기 자신을 진단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기사에 나오는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경우를 통합해서 만들었습니다. 모두 가명을 쓴 것임을 밝힙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의학과 교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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