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4명.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 아동의 수입니다.
한국인처럼 자라왔지만, 한국인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해야하는 아이들. 한국에서의 삶도, '불법'인 삶도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이들은 늘 강제퇴거를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3년 전 시행된 법무부의 한시적 구제 대책으로 일부는 임시 체류 자격을 얻었지만, 이 대책도 이번달이 지나면 종료됩니다.
KBS는 '있지만 없는' 존재가 된 아이들의 기록을 3편의 기획 기사로 조명합니다.
한국인처럼 자라왔지만, 한국인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해야하는 아이들. 한국에서의 삶도, '불법'인 삶도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이들은 늘 강제퇴거를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3년 전 시행된 법무부의 한시적 구제 대책으로 일부는 임시 체류 자격을 얻었지만, 이 대책도 이번달이 지나면 종료됩니다.
KBS는 '있지만 없는' 존재가 된 아이들의 기록을 3편의 기획 기사로 조명합니다.
■ '한시적 이주아동 구제 대책'은 왜 만들어졌을까?
이 대책은 미등록 이주 아동 2명이 국가인권위원회에 넣은 인권침해 진정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고,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고등학교까지 다녔지만, 법적으로는 '강제퇴거 대상 외국인'인 이들이었습니다.
지난 2020년 인권위 결정문에 따르면 미등록 이주 아동 A 양은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선천적 청각 및 언어장애를 가진 부모님이 한국에서 결혼했고, A 양이 태어남. A 양은 관악구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오고, 동작구의 고등학교에 재학중. 2주에 한번씩 지역 요양원에서 봉사하며 사회복지사가 되고자 함. 체류자격과 경제적 궁핍으로 의료와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이들에 대한 애환과 장애인의 자녀가 겪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어,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싶다고 생각함. 모국어는 한국어. 국적국의 언어는 배워본 적도 없고, 관련 사회 문화 교육을 접하지 못함. 부모님과는 수어로 대화하고, 국적국에 가족이나 친척이 없어 현지에서 A 양을 보호하고 지원해줄 인적 기반이 전혀 없음. A 양에게 국적국은 TV에서 보고 들은 낙후된 국가라는 정도의 이미지 뿐. 국적국과 연대감이 없고, '그곳에 돌아갈 바에는 높은 데에서 떨어져 죽겠다'는 심정이 들 정도로 거부감이 큼. |
당시 인권위는 미등록 이주 아동에 대한 강제 추방이 인간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미등록' 상태가 된 책임이 이주 아동들에게 있지 않고, 이들이 한국에 장기 체류하며 성장해 우리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했다는 겁니다.
이에 인권위는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무조건적인 강제 퇴거를 멈추고, 이들이 원할 시 공개적인 심사기준에 따라 적정한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라고 법무부에 권고했습니다.
법무부는 이 권고를 수용해, 2022년에 한시적 구제 대책을 내놨습니다.
■ 한시적 구제 대책의 내용은?
구제 대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6살 이전에 입국한 미등록 이주 아동의 경우 ▲ 6년 이상 국내에 체류하고 ▲ 국내 초·중·고등학교 재학중이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임시 체류 자격을 줍니다.
6살 이후 입국한 미등록 이주 아동의 경우는 ▲ 7년 이상 국내에 체류하고 ▲ 국내 초·중·고등학교 재학중이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임시 체류 자격을 줍니다.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아이의 체류 허가를 신청하려면, 부모 본인의 불법 체류에 대한 범칙금을 내야합니다.
법무부는 당시 대책 신청기간을 2022년 2월 1일부터 올해 3월 31일까지로 정했습니다.
제도를 상시적으로 시행할 경우 아동을 수단으로 한 불법이민 등 부작용 우려가 크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법무부는 당시 관련 보도자료를 내면서 "교육부 통계상 현재 외국인 등록번호 없이 학적을 생성해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3천여 명"이라며, 이들 상당수가 제도 구제대상에 포함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뒤, 실제로 대책을 신청해 구제된 아동의 비율은 전체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했습니다.
KBS 취재 결과, 올해 1월을 기준으로 법무부가 파악한 미등록 이주 아동은 모두 3천434명이었습니다. 이들 중 3년간 해당 대책을 통해 구제된 아동은 모두 1천131명이었습니다.
즉, 2천303명의 아동은 구제 대책이 있는데도 신청하지 못한 겁니다.
이들은 왜 대책이 있는데도 구제 신청을 하지 못했던 걸까요?
■ 이유 들어보니…"행정처리 문제·범칙금·부정확한 안내"
인권위는 구제 대책과 관련해 2년전 '미등록 이주 아동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주민 지원 단체를 통해 모두 40건의 이주아동 사례가 수집됐는데, 대책을 신청하지 못한 경우가 13건이 있었습니다.
조사 결과, 구제 대책을 신청하는 과정에서는 ▲ 서류 준비의 어려움 ▲범칙금 납부의 어려움 ▲출입국·외국인청의 부정확한 안내 등이 장벽으로 꼽혔습니다.
이들은 여권이 없거나 만료됐는데 발급이 어려운 경우, 가족관계 증명서가 없어 유전자 검사를 해야했던 경우, 아동의 여권상 이름과 학교 졸업증명서 상 이름이 달랐던 경우, 서류를 준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습니다.
또 아동의 체류를 신청하기 위해 내야하는 범칙금도 큰 부담이었다고 말했습니다.
7년 이상 미등록으로 체류했을 때 부모 1인당 9백만원, 총 1천8백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되는데, 생계가 어려워 돈을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당 대책을 신청하기 위해 찾아간 출입국·외국인청에서 신청요건과 제출서류, 심사과정에 대해 부정확한 안내를 한 경우도 있는거로 조사됐습니다.
조사 대상의 30%가 신청 당시 출입국·외국인청에서 안내가 부족했거나 정확하지 않은 설명을 듣고 어려움을 겪었던 거로 파악된 겁니다.
물론 구제 신청 요건 자체를 충족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지만, 요건을 충족해도 ▲ 범칙금 납부 능력이 부족하거나 ▲ 가족 해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신청하지 못한 가정도 있었습니다.
구제 대책 신청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다른 가족이 함께 살고 있을 경우, 대책을 신청했다가 강제 출국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어, 가정이 분해될 걸 우려해 신청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주민 지원 단체들은 구제대책을 신청할 수 없게 하는 장벽을 낮추고, 올해 3월까지만 운영되는 대책을 상시 제도화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3월이면 끝나는 대책…인권위는 '제동'·법무부는 '고심'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한시적 대책'은 이번달이 지나면 모두 종료됩니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대책을 쏘아올렸던 인권위도, 대책 시행의 주체인 법무부도 '대책 연장 여부'와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먼저 인권위의 상황을 좀 볼까요. 인권위 전원위원회에는 지난달 20일부터 3차례에 걸쳐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보장을 위한 정책권고의 건' 안건이 상정됐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추천한 상임위원인 김용원 위원은 이 안건이 "지금 논의할 시급한 문제가 아니"라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인권위지부가 '윤석열 방어권 보장 안건'의 철회를 요구했는데, 이게 인권위원의 독립성을 침해한 범죄행위라고 주장하며 이를 반대한 직원들을 징계하는 게 우선이란 겁니다.
인권위 남규선 상임위원은 지난 6일 연이어 상임위가 결렬되자 "미등록 이주 아동 퇴거 문제와 관련한 긴급한 안건을 오늘 통과시켜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김용원 위원은 본인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사진행 발언만 하고 퇴장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고려하면 현재로서는 인권위가 권고에 나설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정책 시행 주체인 법무부는 어떨까요.
이미 지난달 14일 국회 대정부 질문 자리에서 김석우 법무부 차관은 "토론회 등 의견을 조율해본 결과 상당히 유용하고 타당한 제도로 판단이 돼 가급적 연장할 방침을 세우고 있다"면서 "실무적 측면에서 논의해 조만간 구제책을 다시 발표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법무부 내부적으로도 자체 실태조사를 진행하는 등 제도 연장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분위기도 읽힙니다.
하지만 대책이 연장되는 기간은 어느 정도일지, 대책을 보완하거나 상시화할 계획도 있는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 '있지만 없는' 나의 꿈은…
미등록 이주 아동 출신인 고 강태완 씨와 무비나 씨
앞선 두 기사에서 살펴봤던 '있지만 없는' 아이들의 삶은 어쩌면 정부의 결정으로 인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국인처럼 자랐지만 끝내 한국인이 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강태완.
구제 대책의 사각지대 속에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무비나.
이들이 바랐던, 바라는 꿈은 단 하나. 쫓겨날 걱정 없이 세상에 '존재하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3월이 지나도, 이들과 같은 꿈을 꾸는 아이들의 일상은 지켜질 수 있을까요?
법무부는 구제 대책에 대한 KBS 질의에 "아동 교육권 보장의 인권적 측면과 불법체류 양산 방지라는 공익적 측면을 고려해야 하므로, 충분한 검토를 거쳐 3월 중으로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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