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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의 저자 남유하 작가를 지난 5일 서울 광화문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남 작가는 엄마가 스위스에서 안락사(조력사망)하게 된 과정을 책으로 펴냈다. 김현동 기자

" "I want to die quickly, please."(나 빨리 죽고 싶어요, 제발.) "
말기 암 환자인 조순복씨는 삶의 마지막 하루를 남기고도 담당 의사에게 이렇게 애원했다. 유방에서 시작해 뼈와 피부, 장기 곳곳으로 퍼진 암세포로 인한 고통에 몸서리치면서다.

1944년생 조씨는 2023년 8월 3일 스위스 패피콘에 있는 조력사망 기관 '디그니타스'에서 안락사했다. 그는 죽음길에 동행한 딸에게도 사망 전날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칼로 콱콱 찌르는 듯한 통증'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SF소설 작가인 딸은 세상에서 사라질 엄마를 글로 영원히 남기고 싶었다. 스위스에서 '존엄한 죽음'을 맞는 엄마의 이야기는 애초 소설로 쓰려 했다. 하지만 거동이 힘든 몸을 이끌고 8770㎞를 날아가는 여정은 '존엄'과는 거리가 먼 '현실'이었다. "다른 환자들이 나처럼 고생하지 않았으면, 우리나라에서도 존엄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뜻을 전하기 위해 딸은 허구가 아닌, 사실 그대로를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남유하 작가의 에세이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는 올해 초 그렇게 출간됐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남 작가는 조력사망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 그는 "죽음을 결정하는 일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고통받아 마땅한 사람은 없고, 조력사망은 고통을 없애주는 선택지가 된다는 점에서 생명 경시가 아닌 생명 존중"이라고 덧붙였다.

남유하 작가는 엄마를 조력사망으로 떠나보낸 뒤 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에 검은 매니큐어를 바른다. '무언가 검은 것'(something black)으로 엄마를 추모하기 위해서다. 김현동 기자

Q: 우리나라에선 조력사망이라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다. 이런 선택을 한 계기가 있나.
A: 엄마는 영화 '미 비포 유'와 다큐멘터리 '우아한 죽음'을 봐 조력사망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암 전이로 고통받기 전부터 '만약 불의의 순간이 온다면 스위스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스위스는 외국인 조력사망을 받아주는 유일한 국가고, 여러 조력사망 기관 중 1998년에 설립된 디그니타스의 역사가 가장 길어 이곳을 선택했다.

Q: 어머니의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A: 엄마를 말릴 수 없었다. 엄마는 죽음보다 더한 통증을 끝내려 자살을 고민했다. 어느 날 엄마의 화장대 서랍에서 많은 양의 압박 붕대를 발견하기도 했다. 목맬 생각을 한 거다. 엄마가 '스위스 갈까?'라고 말했을 땐 오히려 안도했다.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혼자 외롭게 떠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누구보다 삶을 사랑한 엄마도 자살이 아닌 존엄사를 간절히 바랐다.

Q: 다른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
A: 아빠도, 오빠도 괴로워하는 엄마를 보면서 차마 반대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특히 아빠는 엄마가 고통받는 모습을 옆에서 가장 생생히 지켜봤으니까. 아빠가 그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데가 없었잖아. 한 군데라도 괜찮아야 붙들고 늘어지지'라고. 엄마의 상태를 잘 모르는 친척 중엔 반대하며 마지막 인사를 하지 않은 분들도 있다. 엄마의 몸은 봉제인형 같았다. 암으로 도려낸 오른쪽 가슴, 전이된 피부, 척추측만증으로 네 번 수술한 허리…울긋불긋 상처투성이였다.

지난 2022년 남유하 작가와 어머니 조순복씨. 사진 남 작가


조력사망을 신청하는 과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신청자 사망에 있어 법적으로 문제가 없도록 디그니타스가 확실한 자료를 끊임없이 요구해서다. 남 작가는 "기관과 총 66통의 e메일을 주고받았고, 담당자와 왓츠앱으로도 수없이 연락했다"고 말했다. 조력사망이 불법인 우리나라에서 서류를 발급받으려고 사용처를 속여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Q: 조력사망은 어떻게 신청하나.
A: 우선 회원 가입비와 연회비를 내 디그니타스 정식 회원이 돼야 한다. 이후 치유할 수 없는 질병으로 통제 불가능한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라는 걸 입증해 조력사망 허가(그린라이트)를 받는다. 그린라이트를 받으려면 영문 의료 기록과 라이프 리포트(life report), 조력사망을 요청하는 자필 서명 편지 세 가지 서류를 보내야 한다. 이 서류들은 발급된 날로부터 6개월까지만 유효해 구체적인 사망일을 정한 뒤 그린라이트를 신청하는 게 좋다.

Q: 서류에는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나.
A: 의료 기록에는 병명과 치료 날짜를 비롯해 어떤 치료를 어떻게 받았는지, 통증은 얼마나 심한지 등 주치의 소견도 필요했다. 병원에서 용도를 묻자 엄마는 외국 보험기관 제출용이라고 둘러댔다. 한 사람의 인생을 건 중대한 결정인데 솔직히 말할 수 없다는 게 슬펐다. 라이프 리포트는 병력 중심으로 쓴 엄마의 일대기다. A4용지 1장 넘는 분량이었는데 엄마가 쓰고 내가 영어로 번역했다. '극심한 통증으로 인해 우울하다(depressed)'라는 문장 때문에 문제가 됐다. 제삼자의 개입이나 우울감에 치우치지 않은 온전한 자기 결정임을 증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서다. 기관은 엄마에게 우울 병력이 없는지 확인 서류를 요청하기도 했다.

Q: 그린라이트를 막상 받았을 땐 어땠나.
A: 나는 엄마의 죽음에 앞장서는 거 같아서 너무 힘들었지만 엄마는 정말 행복해했다. 스위스에 가면 의사와 두 번 면담해야 하는데, 엄마가 예행연습을 하겠다며 'I will die'(나는 죽을 거예요)를 되뇌었다. 내가 '그만해'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더니 엄마의 표정이 확 변했었다. '관두자. 스위스 가지 말자. 내 팔자에 무슨 호강이야?'라고 하더라. '호강'이라는 단어를 써 놀랐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남유하 작가는 "고통받아 마땅한 사람은 없다"며 "조력사망은 고통을 없애주는 선택지가 된다는 점에서 생명 경시가 아닌 생명 존중"이라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디그니타스에 사망일을 지정해 알린 이후 남 작가의 어머니는 항암치료를 중단했다. 항암 약을 끊자 하반신 마비가 왔고 급격히 쇠약해져 사망일을 세 번 앞당겼다.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스위스에 어서 가고 싶다, 좀 앞당길까?"라고 해 일정을 변경했을 땐 디데이(D-day)가 고작 8일 남았을 때였다.

Q: 최종 사망일을 정했을 때 심정은.
A: 급박하게 정한 거라 디그니타스에서 가능하다고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불가능하다고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뒤섞였다. 원래 8월 4일로 문의했는데 그날은 불가능하다고 해 3일로 정했다. 만약 우리나라에 조력사망 제도가 있었다면 엄마가 며칠은 더 살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고령의 환자가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를 가야 할 걱정 없이 내 나라에서 편히 눈감을 수 있지 않겠나. 이랬다면 저랬다면 엄마가 며칠이라도 더 살 수 있었을까? 여전히 곱씹는다.

Q: 스위스 가는 길도 험난했다고.
A: 역경 그 자체였다. 항암을 중단한 뒤 엄마에게 하지마비가 왔다. 나중에 CT 사진을 보고 알았는데 척추 주변까지 시커먼 암덩어리가 퍼졌더라. 휠체어를 탄 채 기내 좁은 화장실을 이용하는 건 고역이었다. 만일에 대비해 엄마는 성인용 기저귀를 차고 있었는데, 착륙 얼마 전 엄마에게 '화장실 가고 싶지 않아?' 물으니 '괜찮아, 조금 쌌어'라고 했다. 너무 화가 났다.

Q: 존엄사 하러 가다가 존엄이 무너지는 기분이었겠다.
A: 그런 의미로 엄마도 '제발 다른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겪지 않길, 국내에서도 조력사망이 합법화되길' 바라셨다.

남유하 작가의 어머니는 2023년 8월 3일 스위스 디그니타스의 블루하우스에서 안락사했다. 그의 어머니가 생을 마감한 침대와 마지막으로 본 창밖 풍경. 사진 남유하 작가


스위스에 도착하면 묵고 있는 호텔로 디그니타스 담당자가 온다. 이후 절차를 설명하고 조력사망에 필요한 서류도 작성한다. 사망 전 담당의도 두 번 호텔을 방문해 신청자에게 "아직도 죽길 원하나" "펜토바르비탈나트륨(안락사 약)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나" 등을 재차 묻는다. 확실히 죽을 의향이 있는지, 순수한 자기 결정에 따른 일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Q: 스위스에서 어머니와 마지막 2박 3일 어떻게 보냈나.
A: 엄마를 잘 챙기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드시고 싶다던 음식을 구하기 어려웠고, 평소 워낙 깔끔한 성격이라 아픈 날에도 꼭 씻는 엄마인데 머리를 제대로 못 감았다. 욕실에 샤워부스가 없는 데다 바닥에 배수구도 없어 욕조 안에서만 샤워할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하지마비인 엄마를 아빠와 내가 들어 올리다가 미끄러져 넘어지면 큰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한국이었다면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Q: '블루하우스'(안락사 시행 장소)로 향할 땐 어땠나.
A: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엄마는 내내 의연했다. 아빠는 호텔 담장에서 빨간 보리수나무 열매를 따다가 엄마에게 선물했다. 엄마는 떠날 때 이 보리수 열매 말고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블루하우스로 가기 전 남유하 작가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건넨 '마지막 선물' 보리수나무 열매. 어머니는 마지막 가는 길에 이 열매 말고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사진 남 작가


Q: 어머니의 유언이 있었나.
A: 스위스에 남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 너무 아팠던 기억이 많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공기 좋고 아름다운 곳에서 마음껏 날아다니고 싶다고. 엄마는 본인이 떠난 뒤 아빠와 내가 유골을 뿌리기 위해 스위스에 머무르는 걸 '시간 낭비'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빠의 건강이 걱정되기도 해 귀국하면서, 디그니타스 담당자에게 예쁜 곳에서 엄마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담당자가 그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보내줬고, 1년 뒤 아빠와 나는 '엄마의 언덕'을 찾았다.

Q: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A: 보통 약을 먹고 숨이 끊어지기까지 2~5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약을 먹자마자 엄마는 '사랑해'라는 내 말에 답하지 않을 정도로 빨리 잠들었다.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평온했다. 기관이 약물을 주사하지 않고 마실 경우 가족들과 몇 분이라도 작별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했는데 아쉬웠다. 엄마도 눈감는 순간까지 주삿바늘을 꽂길 원치 않았다.

남유하 작가는 "꼭 스위스에 남고 싶다"는 엄마의 유언에 따라 디그니타스 담당자의 도움으로 유골을 현지에 뿌렸다. 남 작가는 1년 뒤 스위스를 다시 찾아 엄마의 유해가 뿌려진 언덕으로 향했다. '엄마의 언덕'으로 가는 길. 사진 남 작가

조력사망 이후 남아있는 이들에게는 감당해야 할 '몫'이 생긴다. 주변에 사망 사실을 어떻게 알릴지, 사망 신고는 어떻게 할지 등 현실적인 문제부터 자살방조가 아니냐는 눈초리도 견뎌야 한다.

Q: 한국에선 안락사가 불법이라 자살방조로 볼 수 있다.
A: 엄마의 고통을 끝내주는 것 말고 나머지는 고려사항이 되지 않았다. 나와 아빠가 엄마의 조력사망을 찬성한 게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누가 떠나보내고 싶겠나. 붙잡을 수 없었던 거다. 엄마가 '아픈 게 나쁜 건 아니잖아'라고 했었는데, 우리에게 죄책감을 갖지 말라고 한 말 같다.

Q: 잘한 결정이라고 믿나.
A: 아이러니지만, 엄마를 통해 원할 때 죽을 수 있다는 게 살아갈 희망이라는 걸 내 눈으로 봤다.

Q: 엄마의 사후에는 어떤 절차가 진행됐나.
A: 디그니타스가 현지 관공서에 사망 사실을 알리는 등 행정 절차를 밟는다. 1달 반 정도 지났을 때 사망 진단서를 메일로 받았다. 한국인 조력사망자는 매우 드물어 처리가 까다롭다고 한다. 이후 엄마가 떠난 지 55일 만에 내가 주민센터에서 사망 신고를 했다. 신고서 내 사망 장소에 '스위스 패피콘'이라고만 적었다. 직원이 사망한 구체적인 장소를 적어야 한다고 해 '기관'이라고 했다. 엄마의 죽음에 대해 더는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 꿋꿋이 '병원'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2주 뒤 재차 연락이 와 정확한 장소를 확인하길래 머뭇거리자 직원이 '안락사하셨나요?'라고 물었다. 그제야 '맞다'고 했다. 다행히 직원이 나를 신고하지는 않았다.

Q: 조심스럽지만 비용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A: 기관에 낸 돈만 1800만원이 넘는다. 회원 가입비와 연회비, 그린라이트를 받기 위한 특별 회원비, 약물·장례 비용, 공무집행 수수료 등을 포함한 것이다. 이뿐 아니다. 거동이 힘든 엄마와 고령의 아빠를 위해 갈 때는 비행기를 비즈니스석으로 끊었다. 또 스위스 물가 비싸기로 유명하지 않나. 3박 5일 체류하면서 쓴 식비와 호텔비까지 다 합하면 2000만원 이상 썼다. 총 4000만원 정도 든 거다. 엄마가 '외화 낭비'라고 한 이유가 있다.

Q: 언어 장벽과 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A: 기관 측과 소통할 때 번역기로도 한계가 있고, 가족이 조력사망을 돕는 경우도 드무니까. 다만 조력사망 기관이 보통 비영리 단체다 보니 통장에 잔고가 없다는 걸 증명하면 돈을 받지 않더라.

Q: 공짜면 문턱이 너무 낮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A: 직접 해보니 삶과 죽음에 대한 진정한 고찰 없이는 그린라이트를 받기 어렵다. 기관이 이를 계속 검증한다. 이 과정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제 죽음을 선택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남유하 작가가 엄마를 그리워하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김현동 기자

우리나라 성인 82%는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최근 '미래 사회 대비를 위한 웰다잉 논의의 경향 및 과제' 보고서에서 지난해 4∼5월 성인 남녀 10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같이 답했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는 '무의미한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41.2%)를 가장 많이 꼽았다. '누구나 자기 죽음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27.3%), '죽음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19.0%) 등이 뒤를 이었다.

남유하 작가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에서도 조력사망에 대한 논의가 진지하게 이뤄져야 할 때"라며 "아픈 사람들이 내 나라에서 가족에 둘러싸여 편안히 죽음을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바람은 이제 내 바람이 됐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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