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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4명.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 아동의 수입니다.
한국인처럼 자라왔지만, 한국인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해야하는 아이들. 한국에서의 삶도, '불법'인 삶도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이들은 늘 강제퇴거를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3년 전 시행된 법무부의 한시적 구제 대책으로 일부는 임시 체류 자격을 얻었지만, 이 대책도 이번달이 지나면 종료됩니다.
KBS는 '있지만 없는' 존재가 된 아이들의 기록을 3편의 기획 기사로 조명합니다.

있지만 없는, 나의 기록 : 무비나를 소개합니다.

무비나 씨는 우즈베키스탄 민족 출신으로 어린 시절 러시아에서 살았습니다.

14살이 될 때 까지 한 번도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었는데, '히잡을 썼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학교는 히잡을 쓰면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수 없다고 했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테러리스트'라고 하거나, '폭탄 어디에 숨겼냐'고 캐묻는 등 차별과 박해를 받았다고 무비나 씨는 말합니다.

무비나 씨는 14살에 가족 여행인 줄 알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아버지가 난민 신청을 하면서 가족들과 한국에서 임시 체류를 하게 됐습니다.

이후 한국에서 생애 처음으로 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먼저 인천의 한누리학교에서 다른 이주 배경 아동들과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처음엔 한국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라 손짓발짓을 써가며 소통했지만, 무비나 씨는 3개월 만에 교내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1등을 할 정도로 빠르게 한국어를 익혔습니다.

그렇게 남들보다 2살 더 많은 나이에 초등학교 6학년이 됐습니다. 공교육 체계로 처음 들어오게 된 겁니다.

처음엔 다른 친구들과 학습 격차가 너무 크게 느껴져 좌절하기 일쑤였지만, 중학교 1학년 때 만난 국어 선생님이 무비나 씨의 인생을 바꿨다고 합니다.

'반 친구들보다 두 살이나 많은데 너무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무비나 씨에게, 선생님은 "공부에는 나이가 없다"며 용기를 불어넣어 줬습니다.

삶의 동기와 희망을 준 선생님을 만나고, 무비나 씨는 더욱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무비나 씨는 학교 시험에서 100점을 턱턱 받아낼 정도로 공부에 열심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2022년, 월세가 더 싼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서 무비나 씨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게 됐습니다.

해당 지역 고등학교에서 '무비나 씨가 기존에 다니던 특성화 고등학교와 같은 과가 없다'는 이유로 전학 요청을 거부한 겁니다.

■ "공부하고 싶었을 뿐인데"…추방 위기 놓여

지난해 무비나 씨 가족은 미등록 이주 아동에 대한 법무부의 임시 구제 대책을 알게 됐습니다.

몇몇 조건을 모두 만족하고 범칙금을 내면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안정적으로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아동과 부모에게 학교 졸업 때까지만 임시 체류 자격을 주는 대책입니다. (*이 대책은 다음 기사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려 합니다.)

앞서 무비나 씨는 난민 신청 과정에서 주어지는 임시 체류허가를 받고 있었지만, 이 대책을 신청하려면 난민 신청 과정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지난해 6월, 미등록 상태가 된 무비나 씨와 동생들은 법무부의 구제 대책을 신청했습니다.

학교에 다니고 있던 동생들은 구제 대상에 해당됐습니다.

그런데 무비나 씨는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홀로 추방될 위기에 놓이게 됐습니다.

법무부 임시 구제 대책의 조건 중 하나가 초·중·고등학교 재학이었기 때문입니다.

무비나 씨는 출입국 사무소에 "내가 원해서 학교를 그만둔 게 아니었다"고 설명하며,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물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들을 문제가 아니다', '다 컸으니 가족과 살 필요도 없다', '혼자 추방돼야 한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가족들도, 선생님도, 친구들까지… 삶의 모든 기반이 한국에 있는데, 홀로 추방된다는 생각에 무비나 씨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허망하고 너무 절망적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처음부터 교육을 받았고, 제 인생은 한국에서 시작한 거였거든요. 14살 때까지 교육을 받은 적도 아예 없었고. 이제 더 이상 한국이 저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어요. 제가 살아왔던 시간들을 하루아침에 부정당한 것 같이 느껴졌어요."

-무비나 씨 인터뷰 중에서


■ "지식의 힘을 믿게 돼"…"구제 대책 꼭 필요"

고등학교 전학을 거절당하면서 학업을 포기할 만도 했지만, 무비나 씨는 공부를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지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게 됐기 때문입니다.

홀로 IT 학원에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했고, 웹 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 등을 개발할 수 있는 풀 스택 개발자 자격증을 땄습니다.

하지만 미등록 상태로는 취업도 안 되고 프로젝트를 맡을 수도 없어, 무비나 씨는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홀로 IT 관련 공부를 이어 나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달, 무비나 씨는 어렵게 한 대안학교에 다시 입학했습니다. 한시적 구제 대책을 다시 신청해볼 수 있게 돼 작은 희망이 생긴 겁니다.

무비나 씨에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무비나 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고등학교에 다시 가게 된다면, 제 꿈은 컴퓨터 하드웨어 분야로 대학에 진학해서 아날로그 IC 회로설계 엔지니어가 되는 거예요.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서 꼭 한국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요."

-무비나 씨 인터뷰 중에서

임시 구제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본인의 이야기를 취재진에게 들려줄 수 있었던 용기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법무부의 해당 대책이 올해 3월이 지나면 종료되는데, 그 점이 아쉬웠기 때문이라고 무비나 씨는 답했습니다.

무비나 씨는 " 저처럼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한국 정부가 구제 대책이 왜 필요한지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인터뷰에 응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 공부하고 싶어 하지만 학교에 갈 수 없게 된 아동들에게도 구제 대책이 적용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습니다.

(촬영기자 서원철 / 영상편집 서원철 전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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