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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에 알고 지내던 이모님이 울먹이며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도와달라는 말에 나가보니 비좁은 철근 사이에 강아지 한 마리가 끼여있더라고요. 그때 눈이 많이 왔고 진짜 추운 날씨였거든요. 당장 구조하지 않으면 강아지가 잘못될 것 같았어요.”
-허그미쉘터 소장 나성균(51)씨
경기도 평택의 시골 마을. 한밤중 소장님에게 전화를 건 ‘이모님’은 김순주(55)씨였습니다. 20년 넘게 인근을 떠도는 유기동물 끼니를 챙겨온 순주씨는 지난 1월 28일에도 사료를 들고 집을 나섰다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성인 손 한 뼘밖에 되지 않는 철근 사이에 강아지 한 마리가 끼여 신음하고 있었던 겁니다.

지난 1월 28일 오후 10시쯤 경기도 평택시의 한 시골 마을에서 철근 사이에 목이 끼인 채 발견된 장수. 나성균씨 제공

기록적인 폭설과 혹한 속에서 강아지의 몸은 서서히 굳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틈이 너무 좁아서 강아지를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철근을 옮기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강아지가 끼여있는 H빔 철근은 순주씨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웠거든요. 순주씨는 급히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게 나 소장을 포함해 네 사람. 그때부터 한밤중 강아지 구조 작전이 시작됐습니다.

“몸이 얼어서 안 움직여” 한밤중 펼쳐진 구조작전

나 소장과 인근에 살던 남성 주민이 힘을 합쳐 파이프를 이용해 철근 사이를 벌리고 있다. 나성균씨 제공

오후 10시, 강아지를 구하기 위해 모인 네 사람은 우선 외부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경찰서와 소방서에 전화를 걸고, 철근을 옮기기 위해 포클레인 업체도 검색해보았습니다. 하지만 경찰과 구조대에서는 출동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고, 여기저기 전화를 해봤지만 늦은 시간 전화를 받는 중장비 업체도 없었습니다. 결국 현장에 있는 네 사람이 힘을 합쳐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철근 틈을 벌리기 위해 한참을 씨름했지만 역시나 쉽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근처에 있던 굵은 나무 막대기를 이용해 안간힘을 다해도 틈새는 벌어지지 않았죠. 그때 한 사람이 쇠파이프를 떠올렸습니다. 쇠파이프를 지지대로 이용하면 공간을 넓힐 수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친 이들은 파이프 2개를 찾아냈습니다. 성인 남성 두 명이 파이프를 잡고 온 힘을 쏟아붓자 철근이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작은 틈이 생겼고, 그 사이로 강아지의 어깨가 보였습니다.

“오! 오! 됐다, 됐다.”
“빠졌어?”
“어, 어, 얼었어? 얼었어?”
“몸 얼었다, 얼었어.”
“어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흑흑), 어우 고맙습니다.”

1시간여 만에 마침내 강아지를 구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시간의 구조 끝에 극적으로 구조된 장수가 따뜻한 차량에서 몸을 녹이고 있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을 알아보는 듯 연신 꼬리를 흔드는 모습. 나성균씨 제공

얼마나 오래 갇혀있었는지 강아지는 몸이 얼어붙어 제대로 서지도 못했습니다. 순주씨는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강아지를 덮은 뒤 품에 안고 따뜻한 차량 안으로 이동했습니다. 꽁꽁 얼었던 작은 생명은 그제야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순주씨는 유기견에게 ‘장수’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혹한에서 기적적으로 구조됐으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합니다.

“저희가 보호할게요” 부부의 동물보호시설로 옮겨진 장수

지난 2월 19일 평택의 '사단법인 허그미쉘터'에서 만난 장수와 누룽지. 대견 사회성이 좋은 장수는 누룽지의 행동을 보고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민석 기자

순주씨네 집에서 몸을 녹인 장수는 이후 나 소장이 운영하는 사설 동물보호소인 허그미쉘터로 거쳐를 옮겼습니다. 이곳은 나 소장과 아내인 나카히라 시즈카(51)씨가 6년 전 동물 구조 활동을 시작하면서 마련한 유기동물 보호소입니다. 순주씨는 “장수를 제가 돌보고 싶었지만 이미 집에 보호하고 있는 강아지 20마리가 있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혹시 모를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장수는 우선 외부 견사에서 지내며 병원을 오갔고, 최근에는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예방접종과 중성화 수술까지 모두 마쳤습니다. 이제 장수는 건강한 상태로 실내 견사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개st하우스팀은 지난달 19일 장수를 만나기 위해 허그미쉘터를 찾았습니다.

취재진을 보고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장수의 모습. 최민석 기자

허그미쉘터에서 만난 장수는 강아지와 사람 양쪽을 상대로 사회성 훈련을 받으며 순조롭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었습니다. 나 소장은 “훈련사가 아니기 때문에 동물 행동교육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강아지들이 스스로 사회화하고 학습할 수 있는 환경 조건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보호소에 전문 훈련사는 없었지만 강아지들은 잘 훈련된 모습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강아지들이 나 소장의 지시에 따라 얌전하게 케이지로 들어가서 지켜보는 취재진을 놀라게 했습니다.

나카히라 시즈카씨 품에 안겨있는 누룽지와 나성균씨 앞에 서있는 장수. 부부는 6년째 동물 구조와 보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최민석 기자

장수 역시 보호소의 교육 덕에 사회성이 향상되는 등 입소 초기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실제 취재진을 만난 장수는 곧장 꼬리를 힘껏 흔들며 다가와 몸을 부딪히며 반가움을 표현하는 등 애교 넘치는 모습이었습니다. 게다가 생애 첫 목욕을 마쳤다는 장수는 분홍색 옷을 차려입은, 보송하고 깔끔한 모습이었죠. 구조 영상 속 털빛은 누런 갈색 빛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깔끔한 베이지색이었습니다.

장수는 생후 9개월 추정의 퍼피로, 아직 어린 탓에 수시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참을 뛰어다니다가 잠든 장수를 바라보던 시즈카씨가 나즈막하게 말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 장수를 구조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아직 목줄이 무서워요” 장수를 위한 맞춤 훈련

행동전문가 윤이쌤, 미애쌤에게 다가가 애교를 부리는 누룽지와 장수. 최민석 기자

장수는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가 하나 있습니다. 철근에 목이 끼였던 경험 때문에 목줄을 보면 거부하는 반응을 보였거든요. 반려견 행동 전문가 미애쌤과 윤이쌤이 나서 함께 행동교정을 했습니다. 장수는 목 근처로 손이 다가오거나 목줄을 채우려고 다가가면 뒷걸음질을 쳤지만 다행히 공격성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몇 차례 시도 끝에 목줄을 차고 난 뒤에는 산책도 곧잘 해내더군요. 다만 두려운 상황에서는 도망가려는 회피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행동전문가 윤이쌤이 나성균 소장과 함께 스틱클리커 훈련을 연습하고 있다. 훈련에 능숙한 누룽지가 먼저 시범을 보이자 장수도 곧잘 따라하는 모습. 최민석 기자

윤이쌤은 겁이 많은 강아지들에게 효과적인 스틱클리커 훈련을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스틱클리커의 길이를 짧게 해 친숙함을 느끼게 한 후 점차 길이를 늘려가며 적응시키는 방식입니다. 장수는 견생 처음 접하는 훈련에 당황한 듯 했지만 보호소 친구인 ‘누룽지’가 먼저 시범을 보이자 곧잘 따라했습니다. 장수는 사회성이 좋은 강아지들과 함께 하면 교육 효과가 더욱 높아지는 강아지더군요. 미애쌤은 “장수가 학습 능력이 뛰어나고 사회성이 좋아 앞으로도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습니다.


길 위에서 떠돌던 강아지 장수는 마음씨 따뜻한 부부의 보호소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린 강아지 장수의 견생 2막을 열어줄 가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수의 입양 혹은 임시보호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기사 하단의 입양 카드를 확인해주세요.

✔ 호기심 많은 애교쟁이, 귀여운 장수의 평생 가족을 찾습니다
-9개월 추정, 중성화 완료한 수컷(19kg)
-사람을 좋아하고 아직 잠이 많은 퍼피
-철근 사이에 끼었던 경험 때문에 목줄을 겁내는 경우가 있으나 산책을 매우 좋아함

✔ 장수의 입양에 관심있는 분은 인스타그램 '사단법인 허그미쉘터(@hugme_shelter)'에 DM 보내주세요:)

✔ 장수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52번째 견공입니다 (108마리 입양 완료)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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