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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분쟁조정 신청건수 160건
5년만에 3.5배 늘어 '역대 최대'
플랫폼 DB·UX 도용도 부지기수
"사례 캡처 여론전 유일 대응수단"
업체 규모 작을수록 피해 치명적
제도 보완 외 자정 활동 병행돼야

[서울경제]

# 2023년 말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월드스마트시티엑스포(WSCE). 행사장을 둘러보던 김정빈 수퍼빈 대표는 현장에 출품된 A사의 제품을 발견하고는 두 눈을 의심했다. 몸체의 구조뿐만 아니라 파란 바탕에 생수병 모양으로 그려진 일러스트까지 김정빈 대표가 3년 연구 끝에 개발한 인공지능(AI) 쓰레기통 ‘네프론’과 꼭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정빈 대표는 당시 ‘네프론’ 개발 사례를 소개하기 위해 주최 측 초청을 받고 엑스포에 참석했던 만큼 더 당혹감이 컸다. 노골적인 베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A사 외에도 네프론의 모습을 좌우로 반전시켜놓은 듯한 모방품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했다. 김정빈 대표는 “경쟁사 제품을 고쳐달라는 이용자들의 민원 전화가 우리 회사에 걸려올 정도로 외관이 유사했다”고 토로했다.

경쟁사에 의해 기술이나 디자인 등을 침해당했다며 특허청에 분쟁 조정을 신청한 기업이 지난해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선발 주자의 아이디어를 모방해 유사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는 카피캣의 난립이 이어지면서 창업자들의 의욕이 꺾이는 것은 물론 산업 전반의 혁신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산권과 관련한 분쟁 조정 신청 건수는 160건으로 1995년 산업재산권 분쟁조정위원회 설립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9년(45건) 이후 5년 만에 3.5배 이상 폭증했고 2022년(76건) 대비 2배 이상 뛰어오른 2023년(159건)의 추세가 그대로 이어졌다. 특히 지난해 스타트업을 포함한 중소기업이 신청한 분쟁이 122건으로 전체의 76.3%를 차지했다. 신청 사례를 보면 상표·디자인 관련이 65.6%로 가장 많았다. 여기에는 실물 상품과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사용자환경(UI) 등 도용이 모두 포함된다.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한 4명의 창업자들은 “경쟁 기업이 사업 기반을 베껴가는 피해를 당해도 구제 방법이 사실상 없어 시장에서의 우위를 잃거나 심지어는 생존까지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 수퍼빈 외에도 각종 디자인 도용 피해를 호소하는 중소 규모 스타트업이 많다. 하지만 창업자들 사이에서는 피해 사례를 캡처한 뒤 여론전을 펼치는 방법이 사실상 유일한 대응 수단으로 꼽힌다.

온라인 플랫폼들끼리 벌어지는 UI나 사용자경험(UX) 도용은 더욱 속수무책이다. 부동산플래닛의 경우 지난달 글로벌 기업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매물 소개 플랫폼 ‘CW Land’가 자사 딜 정보 홈페이지 디자인을 그대로 따라 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일자 쿠시먼 측이 부랴부랴 디자인을 수정했다는 것이다. 정수민 부동산플래닛 대표는 “UI에 대한 저작권이 인정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고 손해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쿠시먼 측은 “부동산플래닛과 유사한 인터페이스로는 하루도 영업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이다.

피해는 스타트업의 규모가 작을수록 치명적이다. 한인 민박 위주인 숙박 플랫폼 ‘민다’는 경쟁 업체 마이리얼트립이 직원들을 동원해 입점 업소 데이터베이스(DB)를 탈취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전을 벌이는 중이다. 자체 추산한 거래액 피해는 연간 기준 약 250억 원에 달한다. 김윤희 민다 대표는 “직원 수로 치면 우리는 마이리얼트립의 100분의 1 수준”이라며 “소송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다 빼앗겨 아무 일도 못 할 정도지만 ‘이래서 망하나 저래서 망하나’ 하는 생각에 결국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전했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후발 주자가 선도 기업을 거리낌 없이 모방하는 행태가 업계에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고 호소한다. 선도 기업의 아이디어를 참조할 수 있지만 베끼기가 마치 ‘모범 답안’처럼 굳어졌다는 것이다. 서정훈 카카오스타일 대표는 “산업에 큰 반향을 일으킬 만한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이를 너무 보수적으로 보호한다면 생태계가 위축되는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과거부터 창업자들 사이에 퍼져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제도적 보완뿐 아니라 업계 내부의 자정 활동 또한 스타트업의 산업재산권 보호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진단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카피캣의 근절을 위해서는 결국 기업 경영에서 상도의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스타트업들도 표절이나 ‘인력 빼오기’ 등이 세간에 알려지면 기업의 존망에까지 영향이 미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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