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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세계 여성의 날
‘2012년 극단 성폭력’ 피해자 인터뷰
공론화 2년8개월 만에 가해자 징역 3년
광주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주최 치유워크숍에서 피해자 김산하의 손과 맞잡은 연대자의손. 김씨 제공

스무살이었다. 김산하(가명)씨는 연극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다. 2012년 광주의 한 극단 오디션에 합격한 뒤 연극계에 첫 발을 내디뎠지만, 2개월 만에 극단 대표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극작가·연출가인 ㄱ씨는 첫 만남에서부터 “내가 널 밀어줄 수 있다”며 위력으로 김씨를 추행했다. 조명을 가르쳐준다는 핑계로 극장에서, 연극 연습을 마치고 회식 자리에서 1년여간 상습적인 성폭력이 이어졌다.

2018년 연극을 그만두기 전까지 김씨는 지역 연극제 등 일정에서 ㄱ씨를 계속 마주쳐야 했다. 김씨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고 그 기억과 시간은 그를 오래 괴롭혔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김씨는 정신과 약을 복용했다. ㄱ씨는 범행 이후에도 여전히 확고한 위상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김씨는 과거의 일을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2022년 6월에서야 김씨는 10년 전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놓을 수 있었다.

광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고상영)는 지난달 17일 강간치상 등 혐의로 기소된 ㄱ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공론화 뒤 2년8개월 만에 김씨 등 피해자 2명을 성폭행한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내가 여태까지 내 상처로부터 너무 스스로 도망쳤다는 생각이 컸어요.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해보자 결심했습니다.”

김씨가 이야기를 꺼내놓기까지 앞서 상처를 내보였던 사람들의 힘이 컸다. 2018년 연극계 미투를 보면서 김씨는 자신이 겪은 폭력이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에도 광주 연극계에 반성이 없는 모습을 보고 김씨는 용기를 냈다. 자신과 비슷한 피해를 입은 피해자 1명과 함께 고소를 하고, 대책위를 만들었다. ㄱ씨뿐 아니라 ㄱ씨 아내인 ㄴ씨로부터 당한 성추행과 다른 극단의 대표이면서 함께 연극 배우로도 활동했던 ㄷ씨로부터 당한 성폭행 피해도 공개했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공론화 이후 김씨가 또 한번 느낀 건 ‘공동체의 폭력’이었다. 한 선배는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광주 연극계를 너무 부정적으로 그린 것 아니냐. 연극계에 대한 너의 폭로를 솔직히 다 좋게 생각 안 한다. 가해자들이 나쁜 생각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했다. “광주 연극인들이 큰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며 김씨에게 자책감을 심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동료 배우의 2차가해도 이어졌다. 김씨는 “가해자가 나쁘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걸 묵인하고 용인하는 문화 속에 본인들이 있었던 건데, 오히려 피해자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려는 발언이 있었다”고 했다. 피고인들은 모두 재판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은 ㄱ씨에게 징역 10년, ㄴ씨·ㄷ씨에게 각각 징역 6년, 5년을 구형했다.

재판에서 과거의 기억을 계속 떠올려야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지만, 함께 방청을 하는 사람이 있기에 김씨는 매번 공판기일에 출석해 재판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한 친구도 위력에 의한 폭력의 경험이 있어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저를 도와줬어요. 자기가 하지 못했던 것을 저를 통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엄청난 힘이 되었고,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책임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법정에서 ㄱ씨는 ‘의사에 반해 강제 추행한 사실이 없고, 그렇다 한들 상해와의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며, 당시 피해자가 피고인의 신체적 접촉 또는 성관계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당시 이의제기가 없었던 것은) 극단 대표라는 우월적 지위를 가진 ㄱ씨에게 잘못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과 연극계 내부에서 어느 정도의 성적 수치심이나 학대 행위는 감내해야 한다는 분위기 등으로 적절한 대처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어 “범행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차례 반복해 이뤄진 점, 다른 원인들만으로는 피해자에게 이 사건 상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현저히 적은 점 등의 사정을 종합해 볼 때, 피고인의 추행 및 강간 행위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상해를 입게 된 데 결정적이자 유력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ㄴ씨의 성추행은 고의성과 범행 일시의 특정이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ㄷ씨의 성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항거불능’ 상태를 좁게 해석해 역시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싸운 시간만 2년8개월인데 ㄱ씨가 고작 3년형을 받은 것으로 제 아픔을 회복시켜주진 못하는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피해를 처음으로 인정받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과거의 기억으로 고통받고 있는 다른 피해자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고 피해를 말하는 순간부터 그게 회복이 될 수 있는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피해에 대해 내가 다시 이름을 지어주고, 그게 어떤 감정이었는지를 보는 것이 정말 괴로운 과정이지만, 그렇게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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