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맘.때] ‘청년기지개센터’
임하린 전략기획팀장
요즘, 당신의 마음은 어떠신가요? ‘요.맘.때’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마음 돌봄’의 시각으로 조명하는 코너입니다. 이슈마다 숨어 있는 정신건강의학적 정보를 전하고 때로는 독자들에게 공감과 힐링의 시간도 제공하고자 합니다.임하린 전략기획팀장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종로구의 한 건물 1층에 있는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요가 수업을 마친 청년들이 개운한 표정으로 각자의 매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스튜디오 한쪽에 마련된 주방에서는 직접 만든 요리로 끼니를 해결하는 청년도 눈에 띄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득하던 이곳에 누군가 들어오자 청년 약 20명은 미소 띤 얼굴로 인사를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최근 서울 종로구 청년기지개센터에서 만난 임하린 전략기획팀장. 임 팀장은 “고립과 은둔의 삶을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현실을 극복하겠다는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찾아간 이곳은 서울에 거주하는 ‘고립 청년’이나 ‘은둔 청년’을 상대로 각종 상담을 진행하고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청년기지개센터’였다. 한국 사회의 가장자리로 내몰린 청년들은 이 센터에서 안식과 치유의 시간을 보내면서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었는데, 취재진이 방문했을 당시 청년들이 반갑게 맞은 이는 센터의 실무를 총괄하는 임하린 전략기획팀장이었다.
‘세상’이 두려운 청년들
고립·은둔 청년들이 적은 문구들이 청년기지개센터 천장에 걸려 있다.
센터는 지난해 4월 전국 최초의 고립·은둔 청년 전담 기관이 된 곳으로, 12월까지 무려 청년 1890명이 센터가 벌이는 각종 사업에 지원서를 냈다. 지인들의 권유 덕분에, 혹은 기존에 다니던 다른 상담센터 관계자들의 소개로 센터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센터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청년들은 우선 고립·은둔 생활의 정도를 조사하는 검사를 받게 되는데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했다고 한다. ‘고립 수준’을 묻는 말에 ‘중간 이상’이라고 답한 청년이 대부분이었고 6개월 이상 방에 틀어박혀 살았다는, 극심한 고립 상태에 처해 있는 청년의 비중도 상당했다.
문제는 은둔과 고립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세상 밖으로 나오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상과의 단절에 익숙해진 탓에 누군가에겐 센터를 찾는 것 자체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돼버린다. 실제로 상담에 응하겠다는 약속을 한 뒤 무려 5번이나 센터에 나타나지 않은 ‘노쇼’ 사례도 있었다. 집 밖으로 나올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센터 관계자들은 이런 청년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꾸준히 연락을 시도했다. 임 팀장은 “고립·은둔 청년의 경우 기본적으로 외출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아 센터에 도착할 때까지 대중교통에서 두세 번씩 내리고, 구토나 탈진을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어떻게든 센터 문턱을 넘는 사람들은 뭐라도 해보겠다는 각오가 있는 편이에요. 다른 사업의 경우 한두 번 약속을 ‘펑크’ 내면 ‘아, 하기 싫었나 보다’ 짐작하면서 포기할 수 있지만 저희 센터는 달라요.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되거든요.”
임 팀장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고립·은둔 청년들이 가진 양가적인 감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온갖 어려움에도 기어코 센터의 문턱을 넘은 청년 중엔 이런 말을 하는 이가 많았다. “센터에 나오기 싫었는데, 사실 나오기 싫었던 건 아니에요”
고립·은둔 청년이라고 해서 또래들과 다른 고민을 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진로를 걱정하고 다양한 문화를 즐기고 싶어 한다. 다만 이 같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걸 어려워할 뿐이다. 2021년 기준 고립·은둔 청년은 전체 청년의 5%인 54만명에 달한다.
그렇다면 이런 청년들은 어쩌다가 고립과 은둔의 삶을 살게 됐을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3년 전국에서 고립·은둔 경험이 있는 19~34세 청년 2만1360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외부와의 단절을 택한 이유로는 취업 실패가 24.1%로 가장 높았고, 대인 관계로 인한 문제가 23.5%, 가족 혹은 건강 문제가 12.4%였다.
실제로 고립·은둔 청년이 증가하고 있는 데엔 얼어붙은 취업 시장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구직 활동이나 자격증 시험 준비 등을 포기하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이가 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계청이 지난 1월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이른바 ‘쉬었음 인구’로 분류되는 2030세대는 72만2000명이나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한창이던 지난 2021년 1월(74만1000명) 이후 4년 만에 다시 70만명을 돌파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고립과 은둔의 삶을 살아가는 청년들을 상대로 섣부른 충고나 조언, 평가는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마음이 힘든 상황에서는 좋은 이야기도 안 좋게 들릴 수 있고, 심한 경우 주변의 어떤 충고도 와닿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처한 현실을 심각한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것도 피해야 한다. 이들은 자신의 일상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외부의 삐딱한 시선까지 더해지면 심한 압박감을 느낄 수도 있다.
임 팀장은 “주변에 고립·은둔 문제를 겪는 지인이 있다면 ‘밥 한 끼 먹자’ 같은 일상적인 말로 대화를 시도해보는 게 좋다”며 “물론 몇 년 동안 집 밖을 나오지 않는 등 고립 정도가 심각할 때엔 다른 전문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의 삶은 내가 이끌어야 한다’
센터 내부에 있던 일정표로, 여기엔 '추운 날씨에 여기까지 나온 나를 칭찬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청년기지개센터를 찾는 청년들은 센터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편안함과 동질감을 느끼곤 한다. 자신과 비슷한 고충을 겪는 이가 많다는 사실 만으로도 위로를 받는 것이다. 센터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가운데 특히 인기가 많은 것은 요가나 산책, 트레킹처럼 신체 활동이 중심이 되는 것들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비용이 많이 들어서, 혹은 많은 사람과 섞이는 게 부담스러워서 고립·은둔 청년들에겐 언감생심일 때가 많은 활동들이다.
센터에 따르면 고려대와 협업해 진행한 집단 상담 프로그램의 반응도 뜨거웠다고 한다. 고립·은둔 청년들은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면서 불안해할 때가 많은데,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이 같은 불안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다양한 ‘행동 실험’이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지하철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카페에서 춤을 추거나, 길거리에서 뜬금없이 하늘을 가리켜야 했다.
임 팀장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엉뚱한 행동을 해도 타인이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으며, 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체감하면서 청년들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프로그램들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청년들의 의지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끌고 가야 한다는 것, 즉 ‘주도성’이 문제의 궁극적 해법이기 때문이다. 임 팀장은 끝 모를 고립감에 힘겨워하고 있을 청년들에게 우선 세상으로 한 번만 나와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아마도 많은 청년은 걱정부터 할 겁니다. 센터에서 벌이는 활동에 참가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생각하면서 회의감을 느끼겠죠. 그렇게 망설이고 주저하면서 고민만 하다 보면 고립의 삶을 사는 게 자신에 걸맞은 삶이라고 여기게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저는 그런 청년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어요. 일단 한 번만 밖으로 나와보라고, 그러면 삶이 달라질 거라고, 굉장히 많은 게 바뀔 거라고.”
센터의 문을 두드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서울에 거주하는 만 19~39세 청년이라면 ‘청년몽땅정보통’ 웹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서울시는 올해 안으로 온라인 기지개센터 사업을 시작하고, 고립·은둔 청년의 부모를 위한 교육도 하반기 중 온라인으로 제공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