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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문화스포츠부국장
요즘 가장 화제가 되는 연예인은 단연 이수지다. 지난해 12월 개설한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 덕이다. ‘휴먼페이크다큐 자식이 좋다’란 이름으로 내놓은 단 두 개의 ‘대치동 엄마’ 패러디 영상이 한 달 만에 총 조회수 1270만회를 기록했다.

이수지가 대중을 열광시킨 동력은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속물 근성에 대한 풍자다. 아이를 영어 이름 ‘제이미’로 부르는 제이미맘의 하루는 라이딩 스케줄로 꽉 차 있다. 고가의 외제차 안에서 김밥을 먹으며 학원과 학원 사이를 오간다. 대치동에선 배변 훈련과 제기차기, 연날리기도 사교육 과목이다. 네 살 아이를 두고 “영재적인 모먼트” 운운하며 “그걸 캐치하고 확장해 주는 게 엄마”라고 뻐기는 모습이 헛웃음을 자아낸다. 몽클레르 패딩과 에르메스 목걸이, 고야드 가방 등 천편일률적 유행 아이템을 좇는 집단 몰개성 현상도 풍자의 대상이다.

개그우먼 이수지가 대치동 엄마의 일상을 풍자해 인기를 끌고 있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자식이 좋다’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대치맘 패러디 조회수 1270만회
트럼프 DEI 정책 폐지 비꼰 SNL
풍자, 기원전부터 사회 비판 도구
반발 심한 정치풍자 국내선 실종
풍자의 본질은 현실에 대한 문제 의식이다. ‘핫이슈지’ 속 과장된 사교육 만능주의는 ‘친구에게 말 걸기’ 방법까지 학원에 보내 가르치는 실제 상황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장치다.

문화 콘텐트를 통한 사회 풍자는 역사가 길다. 고대 그리스의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기원전 423년 희곡 ‘구름’에서 당대 최고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제물로 삼아 궤변을 펼쳐서라도 언쟁에서 이기는 것에 가치를 두는 세태를 비판했다.

우리 역사에선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탈춤이 풍자 콘텐트의 대표격이다.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도 탈 쓴 광대에겐 양반에 대한 비판이 허용됐다.

신분사회서도 탈춤의 양반 비판 허용 안동 하회마을의 별신굿 탈놀이에선 사서삼경의 곱인 팔서육경을 읽었다고 자랑하는 양반이 등장한다. 육경이 뭐냐는 질문에 하인 초랭이가 하는 대답이 웃음 포인트다. “팔만대장경, 중의 바라경, 봉사의 안경, 약국의 길경, 처녀의 월경, 머슴의 새경.” 지배계층의 허위 의식을 고발하는 고도의 은유다.

10년 전만 해도 TV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소화했던 이런 풍자의 세계는 이제 우리나라 방송에선 보기 힘들다. 특히 정치 풍자는 금기 영역이 돼버렸다. 여야를 막론하고 자기 편 비판을 용납 안하는 강성지지층이 등장하면서 생긴 변화다.

반면 지난 1일 방송된 미국 NBC의 예능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는 바로 전날 파행으로 끝난 미국·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을 작정하고 풍자했다.

트럼프 대통령, 젤렌스키 대통령, 밴스 부통령, 루비오 국무장관, 일론 머스크 등으로 분장한 배우들이 그날의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재현하며 트럼프 2기의 각종 정책들까지 풍자의 밥상에 올렸다.

SNL 속 트럼프는 “‘스타트렉’ 캐릭터처럼 옷을 입은 젤렌스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실제 트럼프가 군복 스타일 옷차림의 젤렌스키에게 “오늘 정말 잘 차려입었다”고 비꼰 것을 겨냥한 대사다. SNL의 트럼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스타트렉엔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가 없어서 좋다. 백인남자가 리더다”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DEI 정책 폐지에 대한 풍자다.

정상회담 패러디로 트럼프 정부의 독선을 꼬집은 SNL. [유튜브 캡처]
실제 두 정상 사이의 ‘카드놀이’ 공방도 SNL에선 한발 더 나갔다. 자신이 가진 카드를 자랑하던 SNL 속 트럼프는 “난 ‘감옥에서 나오기 카드’도 있다. 대법원에서 줬다”고 했다. 트럼프에게 면책 특권을 인정한 지난해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꼬집은 대목이다.

이날 방청객의 웃음이 가장 크게 터진 순간은 머스크 팀의 19세 팀원이 “DOGE(정부효율부) 외에 ‘어린이 건강 보험과 교육 해체부(the Department of Undoing Child Health Care and Education)’를 시작했다”며 이 부서의 약자 ‘DOUCHE’를 크게 외치는 장면이었다. ‘Douche’는 영미권에서 욕으로도 쓰이는 단어다. 서슬 퍼런 트럼프 대통령의 보복 가능성도 아랑곳하지 않는 풍자의 수위다.

풍자의 웃음은 갈등상황서 완충재 역할 기원전 사회에서부터 풍자 콘텐트가 존재했던 이유는 그 효용 때문이다. 풍자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드러내고 성찰을 유도한다. 사회적 문제를 공론화시키는 계기를 만들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날 선 비판과 달리 에둘러 비틀어 끌어내는 웃음이 갈등 상황의 완충재 역할도 한다.

풍자가 사라진 곳에선 직설적인 선동이 세력을 키우게 마련이다. 왜곡된 가짜뉴스와 음모론에 시달리는 지금 우리 처지다. 동네 극성엄마 이상을 겨냥하는 우리 창작자들의 용기있는 도전이 필요한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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