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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 건기식 판매 시작하자마자
약사들 반발에 제약사들 철수 검토
"제약사가 약국에 비싸게 공급 의심"
"식품기업도 파는데, 비상식적 갑질"
전문가 "향상된 소비자 눈높이 간과"
서울시내 한 다이소 매장에 건강기능식품들이 진열돼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쿠팡, 네이버는 물론 무신사에서도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을 파는데, 왜 다이소는 못 파나.'

일양약품이 약사들의 압박에 못 이겨 지난 6일 다이소 건기식 판매 중단을 결정하자 온라인에선 소비자들의 이런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에 1,500여 개 지점을 두고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다이소가 약사와 제약회사 간 알력 다툼의 장이 된 모양새다. 소비자 사이에선 제품 선택권을 빼앗기고 불합리한 가격을 강요받는 건 아닌지 우려와 함께 양측에 대한 불신마저 커지고 있다.

4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다이소 오프라인 매장에서 지난달 24일부터 일양약품과 대웅제약의 건기식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종근당건강도 이달 초부터 다이소 대형 매장 200곳에서 건기식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들 제약사는 일부 성분을 줄이고 포장을 최소화해 다이소 제품 가격을 약국 제품의 약 5분의 1 수준인 3,000~5,000원(한 달분)으로 낮췄다.

그런데 판매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불투명하다. 이미 일양약품은 초도 물량만 공급하고 사업을 종료하겠다고 밝혔고, 대웅제약과 종근당건강도 지속 판매 여부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약사회가 지난달 28일 "생활용품점을 통한 건기식 유통을 즉시 폐기하라"는 입장문을 공표한 이후 제약사들이 "불매운동을 불사하겠다"는 일선 약국의 반발에 버티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5대 제약사의 한 임원은 "건기식 불매가 아니더라도 '슈퍼갑'인 약국은 제약사를 말려죽일 수단이 무궁무진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약사회 측은 다이소의 건기식 판매가 소비자들의 오해를 불러온다고 주장한다. 약국에서 파는 건기식은 다이소 제품과 성분과 함량이 다르고 전문적 상담이 제공되는데도 소비자들이 단지 가격만 비교해 그간 약국이 비싸게 판매해왔다고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약사회는 오히려 제약사가 건기식을 약국에 비싸게 공급한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전문가 사이에선 약사들이 제조사의 판매처 확대를 막을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조건 값싼 제품을 선호하는 게 아니라 성분을 꼼꼼히 비교해가며 자신에게 맞는 건기식을 찾을 만큼 소비자들 눈높이가 향상됐음을 약국이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약국들은 전문성을 내세우지만, 정작 소비자에게 실질적으로 득이 되진 않고 오히려 경쟁을 통한 가격 하락을 방해하고 있다"며 "시장 지위를 남용한 경쟁 제한 행위로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는 것은 물론, 소비자의 선택권도 제한하는 부적절한 행위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다이소 건기식 판매가 약국 매출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건기식 시장(6조440억 원 규모)에서 판매 비중이 가장 높은 소비 채널은 온라인 쇼핑몰로, 69.8%에 달한다. 약국 비중은 4.2%로, 대형 할인점(5.5%)이나 다단계 판매(5.2%)에도 못 미친다. 더구나 건기식은 의약품과 공급망이 다르고 식품기업들도 판매한다. 한 의약품 유통사 관계자는 "건기식은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으로 제약사는 브랜드만 빌려주는 제품이 대다수"라며 "약사들의 제약사 길들이기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약사들이 그간 보여왔던 행보도 곱지 않은 시선의 배경이 됐다. 2017년엔 약품판매가 담합 의혹이 불거졌고, 지난해엔 한약사 약국에 납품 중단을 요구해 공정거래 이슈를 촉발시켰다. 편의점 약 판매, 비대면 처방 같은 변화에도 대한약사회는 "오남용 우려"를 이유로 반대를 고수했다.

2월 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약국에 손님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제약업계 한편에선 약국과의 갑을 관계가 관행적으로 이어져온 만큼 "이번만은 밀릴 수 없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또 다른 5대 제약사 관계자는 "비상식적인 갑질에 대응하지 말아야 한다"며 강경한 태도를 주문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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