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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안·광물협정 안따르자 우크라 군사지원 중단 '철퇴'
벼랑 몰린 동맹에 더 가혹…자국이익 있을 때만 협력 성향
대만 좌불안석…한국도 안보비용 청구·북미밀착 가능성에 불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서혜림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한번 자신의 거래주의적 세계관을 노골화했다. 자신의 종전 구상에 따르지 않는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을 전면 중단하는 '철퇴'를 내리면서다.

이는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각종 협상 테이블에서 구사해온 전략을 재확인하는 또 다른 사례로 한국을 비롯해 미국에 경제나 안보를 의존하는 국가들에 중대 리스크로 부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원조를 전면 중지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3일(현지시간) 전해졌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이 '평화를 위한 성실한 약속'(a good-faith commitment to peace)을 입증했다고 판단될 때까지 운송 중인 물자를 포함해 모든 군사원조를 멈추라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침이다.

이 같은 조치는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싸우는 우크라이나에는 치명상이 될 수 있다. 그동안 미국의 지원은 전장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전투력을 떠받친 주요 기둥이었기 때문이다.

독일 킬(Kiel) 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2022년부터 약 3년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금액은 약 1천197억 달러(174조5천억원)로 집계된다.

이날 조치는 미국이 제시하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안과 광물협정안을 거부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굴복시키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달 28일 정상회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고성으로 언쟁을 벌이며 종전안 등을 둘러싼 파열음을 노출했다.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은 쫓겨나듯 백악관을 떠났고, 양국이 예정했던 광물협정 체결도 불발됐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우리가 없으면 당신에게는 아무런 패(협상카드)가 없다"며 취약한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부각하기도 했다.

그 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와의 광물협정은 살아있다며 추진 재개를 시사했고, 종전안에 대해선 "합의를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단행한 군사원조 중단 조치에 비춰본다면, 이 발언은 결국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가진 막강한 '패'를 이용해 우크라이나가 자국 이익을 포기하도록 굴복을 끌어내겠단 뜻으로 풀이될 여지가 있는 셈이다.

나아가 미국이 가진 자금력과 국방력 등 막강한 영향력을 내세워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상대국을 굴복시키는 방식이 트럼프 대통령의 전형적인 협상 전략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평가에 설득력을 더하는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좌)과 트럼프 대통령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동맹을 철저히 상거래 대상으로 여기는 듯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정책은 지난 1월 취임 이후 반복돼왔다.

더욱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백악관으로 돌아온 그는 국제관계 및 시장에서 미국이 가지는 강력한 지위를 이용해 주변국을 코너로 내몰았다. 관세 등 경제적 수단이나 군사적 우위가 압박에 동원됐다.

이에 유럽연합(EU) 등 미국의 오랜 동맹들조차 위기감을 느꼈고 미국의 동아시아 우방들도 바짝 긴장했다.

한국의 경우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과 주한미군 규모 조정이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 표적이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 선거운동 기간에 한국을 '부자 나라', '머니머신(money machine)' 등으로 언급해 왔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주둔이나 전략자산 전개에 대한 막대한 비용을 청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많다.

한국과 미국은 2026년부터 5년간 적용할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미국 대선 직전이던 작년 10월 타결했다.

내년 분담금은 2025년 대비 8.3% 오른 1조5천192억원으로 정해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백지화하고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배척은 한국이 직면한 한반도 안보지형에도 상당한 리스크를 드리우고 있다.

독재자 선망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브로맨스'(남녀의 사랑을 방불케 하는 남성들간의 깊은 교감)가 다시 불붙을 가능성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권위주의 지도자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두둔하며 친러시아 대외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쳐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바람대로 외면당하며 종전협상 의제 설정에 사실상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사정이 우크라이나와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비슷한 여건에 말려들 최악의 시나리오를 무시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게 현실이다.

북미대화 재개 때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밀착관계와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이 맞물려 한국이 한반도의 미래 논의에서 배제될 위험까지 존재하는 것이다.

웨이저자 TSMC 회장(좌)과 트럼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중국의 상시적 군사 위협에 노출된 대만 역시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대만 반도체업체 TSMC가 이날 미국에 1천억 달러(약 145조9천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한 배경이 주목되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배제하고 러시아 측과 일방적으로 종전 협상을 진행하려는 모습에 대만 내에서는 미국이 중국과도 '더티 딜'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제기돼 왔다.

중국은 대만을 영토 일부로 보고 통일을 위해 무력사용을 불사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대만으로서는 중국이 미국의 묵인하에 자신들을 침공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상존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TSMC의 이번 투자로 중국의 대만 고립화 내지 점령 시도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중국 견제 메시지를 발신했다.

그는 "그것은 분명히 매우 재앙적인 사건일 터"라며 "(TSMC의 투자로) 적어도 매우 중요한 사업의 일부가 미국에 있도록 하는 위치에 우리를 두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통적으로 미국 정부는 중국의 대만 침공시 방어 여부에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방식으로 중국을 억제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다.

조 바이든 전임 대통령은 비교적 선명하게 대만 방어 의지를 드러냈으나 그 때마다 입장 변화가 아니라고 정정하기를 되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TSMC의 대규모 투자가 발표되기 전인 지난 26일에는 방어 여부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보다 앞서 재선에 도전하던 시기에는 속내를 더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3년 9월 NBC 인터뷰에서 대만이 중국의 침공을 받을 경우 대만을 방어할 것이냐는 질문에 "말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것을 말하면 거저 주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변화에 대해 TSMC의 웨이저자(魏哲家) 회장은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전과 지지에 사의를 표한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주요 시장으로 삼는 캐나다와 멕시코를 향해선 관세 25% 부과를 내세워 대규모 국경 강화 방안을 약속받는 '성과'를 도출한 뒤 시행을 한 달 유예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유예 시한이 도래하는 4일부터 이들 두 나라에 대한 25% 관세를 시행한다며 이와 관련한 협상 여지는 더 이상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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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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