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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명령 자기 생각과 달라도
목숨 바쳐 복종하는 것이 군

계엄 계기로 부당한 명령은
거부하는 문제 과제로 떠올라

정당·부당 명령 분별하고
식견과 철학 갖춘 군 돼야

12·3 비상계엄을 계기로 군의 상명하복 지휘체계에 대한 논란이 생겼다. 한마디로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 vs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명령은 불복종’ 논란이다. 이 둘을 가르는 기준도 논쟁적이어서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군사 전문가들에게 이 문제를 물어봤지만 상당수가 너무 어려운 주제여서 쉽게 답변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성향이 분명한 사람만 한쪽으로 용감하게 얘기했을 뿐이다.

①상명하복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25조에는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명령에 따랐는데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상관이 책임지면 된다는 것이다. 계엄 직후 김용현 당시 국방장관은 이 조항을 근거로 전군 주요 지휘관들에게 항명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군형법 44조는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사람은 처벌한다’고 규정돼 있다.

군은 전쟁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조직이다. 총탄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돌격하면 죽을 수 있는 일이지만 상관이 돌격하라면 돌격하는 것이다. 지금은 위험하니 나중에 돌격하겠다거나 집에 처자식과 노부모도 있는데 내가 죽으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고 따지면 총살감이다. 6·25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에서 그랬듯 민간인 다수가 죽을 위험이 있지만 도시에 폭탄을 투하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폭격하는 것이 전쟁이다. 조종사가 폭격하는 게 과연 옳은지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면 평양과 원산 폭격도 이뤄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속된 말로 까라면 까는 것이 우리 군의 지휘체계였고 문화였다.

②명령도 명령 나름

명령에는 정당한 명령과 부당한 명령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부당한 명령이다. 대법원은 12·12 군사반란에 대해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따라 범죄 행위를 한 경우에는 명령에 따랐다고 해서 부하가 한 행위의 위법성이 없어질 수 없다고 판결한 적이 있다. 이번 계엄도 마찬가지다. 군의 국회 진입을 지시한 대통령과 국방장관, 사령관은 물론이고 명령에 따라 국회에 진입한 현장 지휘관들 모두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처지다. 물론 경중은 가려질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진우 당시 수방사령관이 국회 본청 안으로 들어가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했지만 조성현 수방사 1경비단장은 따르지 않았다. 조 단장은 국회 증언에서 “법은 모르지만 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분명히 들었다”고 말했다.

우리보다 군 체계가 앞서 있는 미국에서도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한 사례가 있다. 지난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 밀리 합참의장에게 백악관으로 향하는 시위대에 발포할 것을 명령했지만 밀리 의장은 응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 군인들은 특정 개인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에 충성한다”고 말했다.

③한 손엔 총, 한 손엔 법전?

이번 계엄 사태로 군인들은 헷갈리게 됐다. 대통령과 국방장관, 사령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인데 처벌받게 생겼으니 말이다. 상부의 명령에 따라 국회에 왔더라도 국회의원을 끌어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생각을 당연히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항명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어느 3성 장군은 국회 증언에서 “군인이 대통령과 장관의 명령이 위법이라고 생각해 반기를 들면 그게 바로 쿠데타”라고 말했다. 판단이 어려운 복잡한 상황에서 항명하기도 어렵고 옳지도 않다. 이제 군인들은 정당한 명령인지, 부당한 명령인지 매번 법전을 찾아보거나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계엄이 낳은 심각한 부작용이다.

④참군인 육성 방안 모색해야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5·18의 트라우마에 이어 이번 계엄으로 군은 큰 상처를 입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군을 어떻게 육성할지가 과제로 떠올랐다.

생명을 잃더라도 상명하복하는 군, 동시에 밀리 의장처럼 양민을 학살하라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줄 아는 군을 육성해야 한다. 그리고 명령에 복종할 때와 거부할 때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 안목도 길러줘야 한다. 세계적 군사학 권위자인 영국의 로렌스 프리드먼은 훌륭한 군 지휘관이 되려면 국제 관계와 국내 정치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민감성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총만 잘 쏘거나 승진만 노리는 군인이 아니라 세상과 인간, 역사에 대한 이해와 식견, 그리고 양심과 철학을 갖춘 군인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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