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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알래스카 북부 노스슬로프와 남부 발데즈 항구를 잇는 길이 약 1287㎞의 원유 송유관. 게티이미지뱅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부과를 무기 삼아 주요국과 무역 협상에 나선 가운데, 미국 정부가 알래스카 지역에서 추진하고 있는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에 한국의 투자를 요구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사업성이 불투명한 프로젝트임에도 자동차 등 핵심 산업을 겨냥한 미국의 고율 관세를 무마할 유력한 카드인 탓에 정부는 대응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3일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안팎의 얘기를 종합하면, 정부는 미국 정부가 알래스카 천연가스 프로젝트 참여를 협상 안건에 올릴 것이 확실하다고 보고 대응을 준비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북극해와 접한 알래스카 북부의 노스슬로프 지역에 매장된 천연가스를 수출하기 위한 개발 사업이다. 혹한의 날씨를 뚫고 알래스카 남부 부동항인 니키스키까지 1300㎞에 이르는 가스관 등을 깔아야 하는 총 개발비 387억달러(약 57조원)의 초대형 프로젝트다.

개발 비용이 막대한 데다가 사업성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엑손모빌 등 민간 기업들은 일찍이 발을 뺐다. 이후 알래스카 주정부가 주도해 2020년 미국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로부터 사업 승인을 받았지만, 5년 가까이 돈을 대겠다는 투자자를 찾지 못했다.

이 사업을 되살린 게 트럼프다. 트럼프는 취임 첫날 행정명령을 통해 알래스카 개발 사업을 “최우선에 두겠다”고 선언했다. 지난달 이시루 시게바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에서는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알래스카 프로젝트 투자를 요청했다. 미국산 천연가스를 살 거라면 기왕지사 알래스카산 가스를 직접 개발해 사가라는 것이다. 해외 자본을 유치해 지지부진한 사업을 진척시키겠다는 심산이다.

막대한 개발 비용을 고려하면 한국에도 같은 요구가 날아들 가능성이 크다. 한국과 일본은 액화천연가스의 주요 수입국이자 알래스카와 가까운 수요처다. 지난달 중순 미국을 방문한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 등 여야 의원단이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댄 설리반 상원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이미 이 프로젝트에 한국이 참여해달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알래스카 프로젝트는 미국의 숙원 사업이다.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천연가스 매장량이 두번째로 많은 주다. 북부 노스슬로프에만 약 35조입방피트(9911억㎥)가 매장돼있다. 그럼에도 수출이나 내수용으로 쓰지 못하고 대부분 원유 추출에 투입하는 등 산업용으로 쓸 뿐이다. 노스슬로프에 매장된 막대한 천연가스를 수요지로 운반할 가스관이 없어서다.

한때 미국 내 최대 천연가스 수출기지였던 알래스카의 수출이 2015년 완전 중단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과거 대부분 일본으로 향하던 수출 물량은 주 남부의 쿡만 가스전에서 추출됐다. 케나이 수출 터미널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가스관을 놓는 데 문제가 없는 거리였다. 그러나 1969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쿡만 가스전의 생산량이 2010년대 들어 감소하기 시작했고, 알래스카는 경제성 면에서 이를 대체할 가스전을 찾지 못했다. 이에 일본이 장기 공급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면서 수출이 끊긴 것이다.

트럼프로서는 알래스카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면 무역적자 폭을 줄일 수 있고 미국 내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가스관이 건설되면 미국 내 수요지로의 운반도 용이해진다. 미국의 풍부한 석탄 에너지를 십분 활용해 자국민에게 값싼 에너지를 제공하겠다는 트럼프의 에너지 정책과도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한국 입장에서도 알래스카산 천연가스의 짧은 운송 거리는 매력적이다. 알래스카 남부 터미널에서 한국까지는 대략 8일이 걸리는 반면 중동이나 미국의 다른 터미널에서 운송하는 데는 수주가 소요된다. 가격이 저렴한 데다가 가격이 유가와 연동되어 있지 않아 유가 변동 위험을 헷지할 수 있는 것도 이점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프로젝트 참여엔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태식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알래스카 엘엔지가 이미 수출되는 상황에서 가져오는 거라면 도입 가격이 정해져 있어 큰 문제가 아니지만, 투자를 해야 되는 상황이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며 “환경성 논란과 정권 교체 가능성 등으로 수출이 예정대로 2031년에 시작될지 알 수 없고, 미래에는 국제 가스 가격이 지금보다 떨어질 걸로 예상되기 때문에 사업의 경제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칫 큰 돈을 들여 비싼 가스를 장기 구매하는 계약에 발이 묶일 수 있다는 얘기다. 장상식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국의 통상압박 완화를 위해서는 알래스카 개발 참여는 필요하다”면서 “투자에 따른 장기 구매 혜택 등 인센티브도 같이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사업 참여 여부를 “매우 신중하게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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