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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월1일 시행된 개정 국가정보원법에 따라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했다. 앞서 국내정보 담당관(IO) 제도를 폐지하는 등 국내정보 수집도 금지했다. 국내 정치 개입과 민간인 사찰 사건 등 국정원의 과오를 바로잡아 순수 정보기관으로 개혁하겠다는 의도였다.

국정원 직원 이모씨(47)는 지난해 3월22일 오전 서울 강남구에서 주지은씨(46)를 사찰하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소속 학생들에게 발각됐다. 이씨의 휴대전화에서는 주씨의 사진과 영상이 다수 나왔고, 이는 다른 직원들이 있는 카카오톡 대화방에도 올라갔다. 국가안보와 상관없어 보이는 자료도 많았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이씨의 휴대전화 자료를 보면 국정원은 대치팀·춘천팀·대전팀 등을 꾸려 ‘국내 민간인’ 정보수집을 이어갔다. 집회 내용, 정당 사무실의 주소도 공유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당시 정보사 체포 명단에 올랐던 ‘김민웅 촛불행동 대표’ 관련 정보도 이씨의 휴대전화에서 나왔다.

국정원은 “(사찰대상과)북한 대남공작기관과의 연계가 의심된다”고 주장한다. ‘북 연계’를 의심하면 정보수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이 ‘반정부인사’를 대상으로 제한 없이 확장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정원 사찰에 이어 체포조 명단 포함…우연일까

국정원 직원 이모씨가 지난해 1월27일 소속이 확인되지 않은 A와 나눈 문자 메시지. 김민웅 촛불행동 대표의 집회 현장 참석 여부와 입국사실 등이 담겨있다. 국정원 직원 대화 갈무리


이씨의 휴대전화 자료를 보면 그는 지난해 1월27일 오후 5시8분 신원을 알 수 없는 A에게 사진 한장을 문자메시지로 보냈다. 이날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 행진 사진이었다. 사진 전면에는 김민웅 대표가 있었다. A는 이씨에게 사진을 받고 2분 뒤 “1.27.(토) 제74차 ‘촛불대행진’(시청역-숭례문 앞대로, 16:10~18: ) 진행(김민웅, OOO 현장 참석 확인)”이라고 답했다.

이들은 김 대표의 행적을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김 대표의 출입국 사실을 확인하고 화장실도 따라갔다. 지난해 1월27일 A는 이씨에게 문자로 “※김민웅은 1.25.(목) 17:25경 OZ△△△편명으로 미국에서 국내입국”이라고 보냈다. 지난해 2월17일 오후 3시7분에는 A가 “김민웅 ○○○(카페 이름) 화장실 갔습니다.ㅋ”라고 보내자 이씨가 “(김민웅 대표) 찾았는데 그리로 갔구나”라며 집회장소로 향하는 김 대표의 사진을 공유했다.

집회 내용도 보고했다. “주요내용으로는 대통령의 서천시장 화재 현장 방문을 정치쇼라고 폄하”(1월27일), “주요내용으로는 22대 총선 승리로 탄핵 국회 건설에 집중하여 윤ㅇㅇ(윤석열)을 탄핵하자고 언급”(2월17일)이라는 식이었다.

김 대표는 지난달 28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2019년부터 검찰 개혁 투쟁을 해왔다”며 “이런 활동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 사찰 대상으로 삼고, 종북 간첩으로 엮는 공작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국정원 대치팀방에서 보인 또 다른 사찰 팀의 흔적…어디까지 확장됐나

국정원 대치팀은 지난해 3월5~22일까지 카카오톡방을 운영해 주지은씨(47)의 일상을 사찰하고 공유했다. 위는 당시 국정원이 주씨의 거주지 안에 들어가 촬영한 주씨 가족의 자전거. 국정원 대치팀방 대화내용 갈무리국정원


지난해 1월1일 시행된 개정 국정원법의 핵심은 “대공 수사과정의 인권 침해 등 권한 남용과 정치적 일탈 행위의 우려”로 “국내 정보 수집 활동을 금지한다”였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와 관련되고 반국가단체와 연계되거나 연계가 의심되는 안보침해 행위에 관한 정보”는 수집·작성·배포가 가능하다. “필요한 경우 현장 조사·문서열람·시료채취·자료제출 요구 및 진술요청 등의 방식으로 조사할 수 있다”는 내용도 있다.

김 대표와 주씨 등은 지난해 3월24일 국정원 직원 이씨 등을 국가정보원법·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은 이씨 등의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 불송치했다. 경찰은 이씨의 수사결과 통지서에서 “국정원이 수사하여 송치한 사건에서 국정원이 고발인 김민웅에 대하여 북한 대남공직기관과의 연계를 의심하게 된 근거가 확인된다”고 밝혔다. “(김 대표와 주씨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이 국정원 내부 위원회의 심사·의결 절차를 거쳐 승인”을 얻은 것으로 “절차적 하자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명확한 연계 근거 등 심사·의결의 적절성은 따지지 않았다.

‘안보 침해 행위’와 ‘반국가단체와 연계한 행위 또는 연계가 의심되는 행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법률로 정하고 있지 않다. 판단은 국정원의 몫이다. 국정원이 ‘의심’하면 누구든 정보수집 대상자가 될 수 있다.

국정원의 정보수집 활동은 주씨만을 겨냥하지 않았다. 지난해 3월12일 오전 8시19분 국정원 직원 B는 ‘TF회의’의 내용을 국정원 직원 단톡방에 전달하며 “지금 현장은 춘천 2팀(○○○, ○○○), 우리팀(주○○) 대전팀(○○ 사무실) 운영 중”이라고 했다.

국가보안법 사건을 다뤄온 장경욱 변호사는 “(개정 국정원법 시행 이후에도)북 연계 혐의로 벌이는 정보수집은 과거 국정원 수사와 다를 것이 없다”고 말했다. 수사권이 없어 입건·송치하지 못할 뿐, 보안법 위반 혐의자를 대상으로 장기간 조사를 이어가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국정원 정보수집 활동은 ‘인디언 기우제’?

국정원 대치팀은 지난해 3월5~22일까지 카카오톡방을 운영해 주지은씨(47)의 일상을 사찰하고 공유했다. 위는 당시 국정원이 촬영한 주씨의 모습. 국정원 대치팀방 대화내용 갈무리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 간사는 이런 국정원의 이른바 ‘안보위해자’에 대한 정보수집 방식을 “인디언 기우제”에 비유했다. 대상자의 일상을 장기간 따라다니며 혐의를 그릴 수 있을 때까지 미행·감시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방식에는 ‘과장’과 ‘비약’이 개입된다고도 했다. 실제 주씨를 사찰한 국정원 ‘대치팀’은 주씨가 지난해 3월6일 산책 중 멈춰 서서 휴대전화를 보자 “지령 수수 중”이라고 보고했다. 같은 달 8일 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학생을 만나 대화를 나누자 “사상학습일 수 있겠다”고도 했다.

“명확한 통제와 투명한 관리가 핵심”

서보학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북과의 연결점에 대한 명확한 근거 없이 사실상 정부 비판 활동을 하는 사람을 감시하고 동향을 파악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명백하게 국정원법 위반”이라며 “이런 활동은 권한을 넘어서기 때문에 허용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국정원은 국내정보 수집 활동을 못하지만, 대북 관련 정보 수집을 할 수 있으니 연결된 것처럼 설정하고 활동을 한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며 “(국정원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면 북한과 접점이 있다는 것을 직접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김면기 경찰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정보기관의 정보수집 행위를 아예 못하게 할 수는 없을 테지만, 언제까지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내·외부적 통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상급자의 승인, 기간의 명시, 정보수집 필요성에 대한 정기적 평가’ 등 내적 통제와 ‘정기적인 국회보고 시스템’ 등 외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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