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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균 보고서]
<5>여론조사 불신 시대
여론조사심의위원 박원호 교수 인터뷰
품질보다 비용 줄이기에 초점 '부실 조사'
"여론조사가 공천 결정하는 구조 개선을"
여론 전문가 방송·유튜브 출연 신중해야
"사전 규제 신중하되, 적극적 사후 규제를"
"스토리텔링 능한 정치 브로커 경계해야"

편집자주

명태균은 정치 컨설턴트인가 정치 브로커인가. 서울중앙지검이 본격 수사에 착수하면서 명태균 사건은 '태풍의 눈'이 될 조짐이다. 한국일보는 명태균 통화 녹취록과 메시지 내역 등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입수해 그를 둘러싼 불편한 얘기를 가감 없이 공개한다. 파편적이고 편향적으로 제기됐던 각종 의혹들을 검증하고 향후 어떤 의혹을 규명해야 하는지도 살펴봤다. 여론조사와 선거 캠프 등 정치권의 고질적인 문제점도 분석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2월 26일 서울대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여론조사 불신 시대다. 12·3 불법계엄과 '서부지법 난입 폭력 사태'가 보여주듯, 정치 양극화로 인한 국론 분열은 극단적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 특히 민심의 풍향계로 불렸던 여론조사마저 '조작 가능한 대상'으로 인식되며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정치브로커 명태균씨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여권 정치인들에게 '맞춤형' 조사 결과를 제공하며 환심을 샀지만, 미공표 여론조사에서 조작 정황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여론조사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것일까. "여론을 조사하기 위한 여론조사가 아닌, 여론을 움직이기 위한 여론조사를 걸러내야 한다." 한국정당학회장을 지냈고 2021년부터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 위원으로 재임 중인 박원호(54)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진단이다. 박 교수는 지난달 26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여심위원이 아닌 학자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여론조사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여론조사, 선거와 선거 사이 공백 메워



-명태균씨 사건으로 여론조사의 맹점이 한꺼번에 수면 위로 드러났다. 여론조사가 갖고 있는 한계가 부각되면서 불신도 커진 것 같다.

"여론조사는 선거와 선거 사이에 시민들 의견을 정치 시스템에 반영할 수 있는 민주적 함의를 갖고 있었는데, 최근 전례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여론조사는 말 그대로 여론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참고 잣대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걸 정당에서 후보를 결정하는 수단으로 쓰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명태균씨 관련 사건들을 보면, 여론조사를 이용한 선거운동까지 벌어지지 않았나. 비유하자면
사람의 체온을 측정하는 도구가 칼이 돼 사람을 찌르는 용도로 쓰이는 격이다.
"

-정치권에서 여론조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각 정당의 공천 과정에서 여론조사 비중을 줄일 필요는 없나.

"여론조사를 당내 후보 결정 과정에 활용하기 시작한 게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과정이었다. 이후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단일화 작업을 하고, 각 당의 공천 과정에서도 여론조사를 적극 활용해왔다. 정당 내 밀실에서 보스들이 의사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시민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는 게 본래 취지였다. 문제는 여론조사라는 게 표본 등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특히 오차범위 내 근소한 차이로 결과가 나왔다면, 사실은 '주사위 던지기'나 마찬가지로 우연히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국회의원 후보가 되고 안 되고가 여론조사를 통해 좌우되는 게 현실이다. 정당 내에서 민주적으로 결정해야 할 일을 여론조사라는 이름으로 외주를 주면서 책임을 회피한 셈이다.
여론조사에 그런 무거운 임무를 맡기면 안 되는데, 우리 정치권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한국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최근 여론조사를 둘러싼 불신과 그 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국내 여론조사, '질 대신 양'으로 변화



-명태균씨 사건에서는 '표본 부풀리기' 같은 다양한 방식의 미공표 여론조사 조작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당에서 진행하는 공식 여론조사를 무력화하는 '방해 조사'(공식 조사와 별도로 선행 조사를 통해 응답자를 가로채는 수법) 정황이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유출된 당원 명부 등이 동원됐다는 주장도 있다. 유권자들의 지지 성향 정보가 담긴 로데이터(Raw Data·원자료)를 생성해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며 수집한 개인정보들을 연결해놓으니 정치권을 쥐고 흔드는 힘이 생긴 것 같다. 여론조사 조작은 제도상 허점을 파고든 '해킹'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많은 규제가 따르는 공표 조사와 달리 미공표 조사는 감시가 허술한 편이다."

-공표용 여론조사들은 문제가 없나

"공표용 조사에선 심각한 부정의 증거가 명확하게 나온 게 없고, 조작 자체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조작을 하지 않더라도, 정치적으로 편향된 설문 문항으로 구성된 여론조사는 제대로 된 조사로 부르기 어렵다. 지지 후보를 물으면서 현안에 대해 특정 정치 세력에 편향된 질문을 함께 던지는 방식이 최근 나타나고 있다. 반대편 성향 응답자들이 전화를 끊어버리면 나머지 응답만 갖고 편향된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다."

-여론조사의 질이 떨어지면서 민의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도 커졌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굉장히 여론조사를 많이 한다. 이유는 조사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1,000~1,500명 이상 제대로 된 랜덤 샘플을 갖추고 실제 조사원이 전화면접 조사하는 방식은 수천 만원이 들어간다. 직접 대면조사 방식은 수억 원까지 들어간다. 그런데 ARS(자동응답시스템) 방식으로는 수백만 원이면 된다.
우리나라에선 질적 담보보다는 가격을 낮추고 많이 조사하는 쪽으로 변화해왔다.
"

사전 규제는 표현 자유 침해… 사후 규제로



-여론조사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 조사기관의 사전 신고 의무 확대 등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론조사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사전 규제는 신중해야 한다. 전 세계에서 한국과 프랑스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대다수 국가들이 여심위 같은 기관을 두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고 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 조사 기관의 적격 여부를 미리 따져서 규제하게 되면, 결국 자본을 갖춘 소수의 기관만 남게 된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공표가 가능한 응답률 기준을 강화하는 규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응답률은 그 자체로 유권자들의 온도이고 측정 대상이다.


-그렇다면 여론조사 규제는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나.

"개인적 의견으로는, 여론을 고의적으로 한쪽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조사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사후 규제에 나서야 한다고 본다. 이런 조사는
여론조사가 아니라 일종의 선거운동이나 정치 활동으로 봐야 한다.
특히 교묘하게 문항을 작성해 특정 방향으로 답을 유도하는 방식은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 '아무개 후보는 이런이런 활동을 했습니다'라고 설명한 뒤 '누구를 지지하시나요'라고 묻는 경우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일부 여론조사 기관의 문항들이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여심위는 선거 관련 조사 문항이 아닌 일반 정치 현안을 묻는 문항에 대해선 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노골적으로 응답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있다면 심의해야 한다. 현행 선거여론조사기준 2장 4조(신뢰성과 객관성)에는 '누구든지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표본추출틀을 사용해선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이 조항을 표본추출틀뿐만 아니라 개별 문항에도 적용해 규제할 수 있다고 본다."

여론조사 기관 스스로 중립성 훼손도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여론조사를 가장한 여론 왜곡 움직임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왕태석 선임기자


-'여론조사 전문가' 또는 '정치 컨설턴트' 이름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없나.

"여론조사 전문가가 정치 컨설팅을 잘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무기로 삼아 선거운동이나 정치 활동에 직접 뛰어들어 플레이어가 되는 건 여론조사 기관과 조사 결과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행위다. 지금도 특정 정치 성향을 띤 기관으로 인식돼버리는 조사들이 있는데, 응답자들이 제대로 된 답변을 하겠나. 특정 성향 응답자들만 남아 답변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여론조사 기관의 대표가 방송이나 라디오 팟캐스트에 출연해 회사 광고하듯 얼굴을 비치는 행위는 매우 나쁜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본다. '하우스이펙트'(여론조사 기관의 성향이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언론이 자본과 권력에서 독립적이어야 하듯, 여론조사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을 보면, 의혹이 제기된 정치권 인사들은 공식적으로 이뤄지는 당내 자체 조사보다 명씨의 조언에 더 의존했던 모습이 보인다.

"여론조사 수치만으로는 정치권에 '셀링'이 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1, 2위 후보자가 0.2%포인트 차로 뒤집혔다고 가정하자. 오차범위 내에서 일어난 역전이라면 같은 샘플로 조사해도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자료를 가져가서 '어제 후보님께서 빨간 모자를 쓴 덕에 확 뒤집혔습니다'라는 식으로 드라마틱한 의미를 부여하는 게 정치 브로커의 방식이다. 정치권이 전문가의 언어가 아닌 스토리텔링 잘하는 사람을 선택한 결과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1. ① 여론조사와 공천개입의 진실
    1. • 尹 부부·당대표·공관위 모두 포섭 정황… 명태균의 공천 청탁 전모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22310410002198)
    2. • "잘못 짜깁기해" "빼주세요"… 김건희, '尹 맞춤 조사' 받고 '김영선 공천' 보답했나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22222280001535)
    3. • "판세 잘 짠다" 평판에 명태균 '스카우트'... 갈등 빚다 尹 부부 뇌관으로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22114100002742)
    4. • "김건희 여사가 경선 나가라더라" 김영선 당대표 여론조사도 돌린 명태균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22314020004490)
  2. ② 명태균을 키운 여권 지도부
    1. • '명태균-여권' 부당거래… "김종인에 불리" 문항 '슬쩍', '이준석 열세' 공표 연기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22322180000786)
    2. • '무명' 명태균, 김종인 만난 뒤 중앙 무대로... '가덕도 신공항'도 논의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22416070002789)
  3. ③ 명태균에 얽힌 정치인들
    1. • '洪캠프 봉사방' 당원 명부가 명태균에게… 홍준표 "무관한 일, 明 사기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22520440000536)
    2. • 명태균, 손댄 여론조사로 '필승 전략' 과시했지만... 오세훈 신뢰 못 얻어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22511240001349)
    3. • 명태균, 김진태 공천 밀어주고 '지사 보좌역' 알선 시도 정황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22518170002768)
  4. ④ 검찰이 가려할 할 내용은
    1. • 명태균에 공공기관장 유임 청탁도… 국정·인사 실세였나, 숟가락만 얹었나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22713180004840)
    2. • 첫 단추 잘못 끼운 '명태균 사건'... 尹 부부 수사 지연되며 의혹 '눈덩이'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22420520005749)
  5. ⑤ 여론조사 불신 시대
    1. • "여론조사 가장한 선거운동 극성... 판 깔아준 정치권 자성해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2271348000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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