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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봉산 ‘끈끈이 롤트랩’ 피해 현장 가보니
서울 은평구 봉산 등산로 주변 벚나무에 철심(동그라미)과 칼집(화살표)이 남아있다. 대벌레를 잡기 위해 끈끈이 롤트랩을 붙이고 떼어내는 과정에 생긴 것이다. 오른쪽은 끈끈이 롤트랩이 감긴 뒤 고사한 벚나무. 오경민 기자


2020년 대벌레 ‘대발생’ 후

친환경 방제 명목 대량 설치


절지동물류 무차별 포획에

나무 변색·훼손 ‘균에 취약’


똑똑똑또로로로. 지난 2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 구현초등학교 앞 마을마당에 모인 이들이 딱따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를 들으며 근처 봉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은평민들레당·생명다양성재단·서울환경연합의 활동가·연구원과 시민들 19명이 줄지어 걸었다. 이들은 봉산의 나무들에 봄마다 설치되는 ‘끈끈이 롤트랩’으로 인한 나무 피해를 조사하기 위해 모였다.

2020년 서울 은평구를 비롯한 수도권과 제주도 일대에서 대벌레가 ‘대발생’했다. 대벌레는 나무줄기 모양으로 생긴 곤충이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진 않지만 개체 수가 급증하며 등산로 인근 나무와 벤치, 사람에게까지 달라붙었다. 산림청은 과실이나 수목에 피해를 주기도 하는 해충으로 보고 있다. 여름마다 대벌레가 숲 곳곳에 뒤엉킬 정도로 증식한 데는 따뜻해진 겨울 날씨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민원이 늘자 은평구는 대벌레를 포획하기 위해 양면에 끈적끈적한 접착 성분이 묻어 있는 20~30㎝ 폭의 테이프인 끈끈이 롤트랩을 설치했다. 나무 기둥에 둘둘 만 뒤 철심으로 고정하는 방식이다. 은평구는 2021년부터 대벌레가 부화하기 전 3~4월 봉산 일대 나무에 끈끈이 롤트랩을 감았다. 지난해에만 630롤을 썼다.

대벌레를 잡기 위해 끈끈이 롤트랩을 설치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지역정당’인 은평민들레당의 나영(활동명)은 끈끈이 롤트랩으로 봉산 생태계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했다. 나영은 “대벌레뿐 아니라 애벌레나 나무를 기어오르는 여러 곤충이 무작위로 끈끈이 롤트랩에 붙어 죽는다”며 “롤트랩을 칼로 제거하는 과정에서 칼자국이 깊이 나 나무껍질은 물론 그 안의 형성층까지 훼손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날 등산로 가까이 있는 나무의 피해 정도를 살펴본 결과, 끈끈이 롤트랩이 감긴 적 있는 나무는 멀리서도 식별할 수 있었다. 끈끈이 롤트랩이 감겼던 자리는 유난히 색이 진하거나 연했다. 가까이 가면 곳곳에 박힌 철심과 칼자국이 보였다. 이날 조사한 22그루 중 20그루에서 철심이 확인됐다.

느티나무, 벚나무, 팥배나무, 떡갈나무, 참나무 등 다양한 나무가 끈끈이 롤트랩의 영향으로 변색되거나 껍질이 벗겨지고 뒤틀렸다. 상처가 벌어져 그 사이로 부후균이 퍼진 나무도 많았다. 나무를 분해하는 곰팡이인 부후균은 그 자체로 나무에 위협이 되지는 않지만 나무가 건강하지 않을 땐 생명을 갉아먹기도 한다. 껍질이 얇은 벚나무의 피해가 특히 심각했다.

끈끈이 롤트랩은 꼭 필요할까. 곤충을 포획하는 끈끈이 롤트랩은 나무를 모두 베어내거나 화학 살충제를 뿌리는 방식보다 주변 생태계에 영향을 덜 미치는 ‘친환경 방제’로 알려져 있다. 은평구 관계자는 “산림청 훈령에서도 ‘친환경 방제 방법’으로 분류하는 방식”이라며 “서울시 다른 자치구, 고양·수원·의왕·대전·원주 등 전국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끈끈이 롤트랩의 방제 효과에 회의적이다. 정종국 강원대 산림환경보호학과 교수는 한국산림과학회지에 실린 논문에서 “끈끈이 롤트랩에는 대벌레 외에도 다양한 절지동물과 먼지가 붙어 방제 효과가 감소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양한 거미류, 벌류, 파리류 등 산림에서 중요한 생태적 기능을 담당하는 절지동물류가 포획되면서 장기적으로는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지자체들은 끈끈이 롤트랩 등의 처치로 대벌레가 줄었다고 자평했지만 환경단체는 대발생 기간이 지나면 저절로 대벌레 개체 수가 조절되고 밀집도가 낮아질 거라고 예상했다. 나영은 “올해는 끈끈이 롤트랩을 좀 더 조심히 제거하라거나 롤트랩 설치를 재고하라는 단체 민원을 제기하려 한다”고 했다. 은평구 관계자는 “지난해 대벌레 발생률이 감소해 올해는 축소 방제할 계획”이라고 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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