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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소셜미디어 알고리즘
트럼프 미국 대통령, 모디 인도 총리 등 정치 경험 없는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이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최고 권력을 거머쥐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트럼프 미국 대통령, 모디 인도 총리 등 정치 경험 없는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이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최고 권력을 거머쥐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2023년 세계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완전한 민주주의로 분류된 나라가 14.4%인 데 비해 권위주의 체제는 35.3%에 이른다. 2006년 지수 작성 이래 최악이다. 미국, 유럽 그리고 한국에서도 극우세력이 부상하며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세계적 석학들은 민주주의 위기의 배후에 소셜미디어가 있다고 공통으로 지적한다.

극단주의 공급 송유관

내전과 테러리즘 전문가 바바라 월터 캘리포니아주립대(UCSD) 교수는 저서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에서 소셜미디어가 확산하는 곳에서 종족 파벌이 늘어나고 사회적 분열과 폭력이 확대되어 혐오를 노골화한 포퓰리스트가 당선되었다고 말한다. “규제받지 않는 개방된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내전으로 이어지는 조건을 부추기는 완벽한 촉매”인데, 사람들은 고요함보다 공포, 진실보다 거짓, 공감보다 분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셜미디어가 ‘급진화를 야기하는 송유관’으로 작용하면서 “과거에는 독재가 군부 쿠테타를 통해 발생했으나, 지금은 유권자들이 독재를 탄생시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월터 교수는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이 소수의 극단주의자들을 순식간에 연결하고 분노와 폭력에 대한 열망을 건드려 ‘시민 폭력’의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분노·혐오·공포와 같은 감정적 반응을 촉발하는 우파 포퓰리즘이 소셜미디어에서 득세하는 이유다.

세계적인 민주주의 연구자로 ‘위험한 민주주의’를 쓴 야스차 뭉크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소셜미디어를 가장 잘 활용한 이들로 포퓰리스트를 꼽는다. 소셜미디어는 같은 의견을 지닌 사람들하고만 소통하게 해 극단화를 부추긴다. 극단주의자들이 대중을 찾고 조직하는 일이 훨씬 쉬워져 정치 입문 비용도 낮아졌다. 이미 트럼프 미국 대통령,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 모디 인도 총리 등 세계 곳곳에서 정치 경험 없는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이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최고 권력에 오른 바 있다.

민주주의 제도 흔들기

소셜미디어는 언론, 의회, 사법제도 등 전통적 민주주의 기구들이 범한 사소한 실수나 결함을 들춰내는 데도 동원된다. 시민 감시와 견제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민주주의 제도를 무력화하는 데도 활용된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기관들은 복잡한 관료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포퓰리스트들은 이 틈새를 파고들어 대중 불만을 일으키고 민주주의를 흔드는 데 능숙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을 앞두고 극우 온라인커뮤니티와 유튜브가 노골적으로 헌법재판소를 공격하는 상황은 단적인 사례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도덕 원칙은 분열을 조장하고 분노에 찬 메시지를 퍼나른 행동에 보상을 주는 동시에 혐오 공동체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 사회를 더 잔인하게 만든다.”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 세계번영연구소 명예교수도 저서 ‘고립의 시대’에서 세계가 점점 극단주의로 향하는 배경에 소셜미디어가 있다고 강조한다. 혐오는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소셜미디어는 이러한 행동에 보상을 제공하기 때문에 “새롭고 유례없이 불온한 방식으로 우리 삶에 퍼트리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2021년 예일대 연구 등에 따르면 ‘좋아요’, ‘공유’ 같은 보상장치가 분노를 자극해 온건주의자를 극단주의자로 만든다.

공론장 붕괴

스티븐 레비츠키 미국 하버드대 교수도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에서 극단주의자들은 늘 있었지만 소수파에 그쳤던 반면, 최근에는 이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결되고 목소리를 키우면서 온건한 다수를 위협한다고 말한다. 소셜미디어는 정치인들의 과격한 행동도 조장한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면 온라인에서 외면당하기 쉽기 때문에 타협을 거부하고 강경한 입장을 취하도록 유혹한다. 정치인이 소셜미디어에 의존할수록 협상과 타협의 공간이 사라진다.

소셜미디어가 전통 매체를 대체하면서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공통의 현실을 공유하기 어려워졌다는 점도 민주주의를 흔드는 요인이다. 같은 생각을 지닌 집단의 의견, 뉴스만을 보게 하는 ‘필터 버블’로 인해 객관적 사실은 사라지고 저마다의 조각난 작은 현실들만 남는다. ‘포스트트루스’를 쓴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는 ‘탈진실 현상’(post-thruth)이 확산해 명백한 사실조차 거짓으로 치부하게 될 때 사회적 합의가 어려워지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공론장이 붕괴한다고 우려한다.

알고리즘 규제

소셜미디어로부터 민주주의를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핵심은 알고리즘 규제로 모인다. 노리나 허츠 교수는 “혐오 표현, 폭력물 공유 등 악질적 행위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면서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분노가 아닌 친절을 보상하거나 긍정적 태도가 담긴 게시글이 더 빨리 올라가도록 알고리즘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해한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기업이 광고하지 않도록 압박하는 방안도 제안한다.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는 저서 ‘넥서스’에서 사회가 점점 더 많은 결정을 컴퓨터에 맡길수록 민주주의의 자정기능, 투명성, 책임성이 약화하기 때문에 ‘설명을 요구할 권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문가로 구성된 팀이 인공지능 조수들의 도움을 받아 알고리즘의 공정성을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컴퓨터가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인식하도록 훈련해, 탐욕이나 증오 같은 익숙한 인간의 약점외에 인간이 모르는 오류까지도 점검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드는 방안도 제안한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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