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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다 후보작 '에밀리아 페레즈'
'에밀리아 페레즈'(12일 개봉)는 여자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소원인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보스 마니타스가 에밀리아(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왼쪽)가 되며 변호사 리타(조 샐다나)와 마니타스의 아내 제시(셀레나 고메즈)를 포함한 세 사람에게 펼쳐지는 2막을 다룬 영화다. 사진 그린나래 미디어
" 난 여자가 되고 싶어.” " 허스키한 저음, 백금으로 뒤덮인 치아, 얼굴에 새긴 문신, 위압적 체구.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두목 마니타스(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납치하고 죽이는 일도 서슴없이 하던 ‘마초’가 변호사 리타(조 샐다나)에게 털어놓는다. 강자만 살아남는 이곳에서 성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왔다고. 마니타스는 자신을 여성으로 바꾸는 수술을 해줄 의사를 찾고, 새로운 이름과 신분을 만들어 달라고 리타에게 요구한다.

“(원하는 것이) 삶을 바꾸는 건가? 성을 바꾸는 건가?”라고 묻는 리타에게 마니타스는 “뭐가 다르지?” 반문한다. 후안 마니타스 델 몬테는 이렇게 에밀리아 페레즈가 된다. 성 소수자가 자아를 찾는 이야기, 그것뿐이었다면 ‘에밀리아 페레즈’(감독 자크 오디아르)는 이토록 화제작이 되지 못했을 거다.

'에밀리아 페레즈'의 주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사진)은 트랜스젠더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됐다. 사진 그린나래 미디어

지난해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첫 공개 후 9분간 기립박수를 받았고, 심사위원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거장 자크 오디아르의 첫 뮤지컬 영화로, 스페인어로 진행된다. 올들어 골든글로브 4관왕, 영국 아카데미 2관왕을 기록했고, 3일(한국시간) 열리는 제97회 아카데미상에서는 작품상ㆍ감독상을 비롯해 13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 영어로 만들지 않은 영화가 아카데미 최다 후보로 선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작품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몇 개의 트로피를 챙길지도 관심이다.

‘디판’(2015) 등을 통해 이민자ㆍ난민 등 사회 주변부의 삶을 그려온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누아르ㆍ멜로ㆍ코미디 등 장르적 요소를 다채롭게 버무렸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경쾌한 뮤지컬로 살렸다. 빨간 정장 차림으로 부패한 멕시코 상류층 앞에서 춤추는 리타의 노래 ‘엘 말(악마)’, 마니타스의 아내 제시(설리나 고메즈)의 ‘미 카미노(나의 방식)’ 모두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

'아바타' 시리즈의 네이티리로 유명한 조 샐다나(사진)는 멕시코에서 근무하는 젊은 여성 변호사 리타로 등장해 극을 이끈다. 사진 그린나래 미디어

오디아르 감독은 배급사 공식 인터뷰에서 “구원에 관한 이야기”라며 “에밀리아가 폭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정은 그 자체로 미덕”이라고 소개했다. ‘정신과 육체의 불일치’로 고통받아온 마니타스가, 에밀리아로 다시 태어나면 밝은 삶을 누릴 수 있을까. 폭력으로 가득한 삶이 성별을 바꾼다고 달라질까. 악인이 과오를 씻고 성인이 될 수 있을까. 영화는 마니타스와 그의 아내 제시, 그리고 변호사 리타에게 생기는 삶의 변화를 그렸다.

리타는 수술한 에밀리아가 4년 뒤 두 아들과 만나도록 돕는다. 마니타스의 친척이라 속인 에밀리아는 옛 가족과 함께 살게 된다. 아내 제시도 에밀리아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다. 에밀리아는 마약 범죄에 연루돼 실종된 사람들을 돕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하고 실종자 가족과 만난다. 그러나 리타와 제시는 여전히 에밀리아와의 관계에서 폭력성을 느낀다. 성별을 바꾼다고 삶을 바꿀 수는 없었던 것이다.

셀레나 고메즈(사진)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 보스 마니타스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등장한다. 극 중반부 부터 펼쳐지는 그의 서사는 후반부까지 휘몰아친다. 사진 그린나래 미디어

‘마초’ 마니타스와 자애로운 중년 여성 에밀리아 두 캐릭터를 모두 소화한 배우 가스콘은 2018년 실제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10대 때 만난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과 수술 후에도 함께 살고 있다. 칸영화제에서 트랜스젠더로는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데 이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같은 부문 후보로 올랐다.

자크 오디아르(사진)은 공식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본질적으로 구원에 관한 이야기"라며 "에밀리아가 폭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정은 그 자체로 미덕"이라고 밝혔다. 사진 그린나래 미디어

한편 가스콘이 과거 소셜미디어에 썼던 글들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무슬림은 인류의 혐오”“(배우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받은 2021년의 오스카는) 흑인ㆍ한국인 축제, 흉한 시상식” 등 인종과 종교를 차별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지난 1월 개봉한 남미에서는 멕시코를 범죄 소굴로 묘사하고, 스페인어 대사가 어색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마약 카르텔을 다룬 영화지만 마약을 하는 장면은 없다. 가정 폭력에 대한 직접적 묘사는 주의가 필요하다. 한국 개봉은 오는 12일이다. 133분. 15세 이상 관람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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