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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고물가로 이중고
도장수 8년 만에 최저치
코로나 이후 2차 고비
초등생 '국룰 코스' 옛말
"원생들 밥까지 해줘야"

[서울경제]

“도장 경영난이요? 그냥 삶 그 자체입니다. 아이들이 너무 없어서 매일같이 자금난을 느끼고 있어요”

서울 강서구에서 20년 넘게 태권도장을 운영해온 관장 박 모(50)씨는 최근 경기 악화로 직격탄을 맞았다. 가뜩이나 저출산 여파로 원생들이 줄어드는 마당에 학부모들이 사교육비 부담으로 인해 점점 재등록을 하지 않아서다. 코로나19 이전에 120명을 넘던 원생 수는 이제 70명 남짓이다. 박씨는 “경기가 안 좋을 때 학부모들이 가장 먼저 쳐내는 게 음미체(예체능 교육)”이라면서 주변 관장들도 줄줄이 폐업 중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초등학생 수 급감과 함께 경기 악화·인건비 인상 등으로 학부모들이 사교육비를 절감하며 과거 초등학생의 ‘기본 코스’였던 태권도장이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코로나19 시기 단체시설 방역지침 여파로 1차 타격을 입은 뒤 이를 미처 회복하지 못한 채 두 번째 고비를 마주한 모습이다.

2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태권도장 수는 2016년 이후 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대한태권도협회(KTA) 통계 자료(2024년 12월 31일 집계) 기준으로 현재 국내 등록 도장 수는 총 9488곳이다. 그동안 9000 후반대~1만 명 대를 유지해왔지만 2022년부터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9929곳)보다 적은 것은 물론, 최고치를 찍은 2018년(1만 78곳)과 비교하면 590여곳이 사라졌다.

도장 수는 지역 별로 살펴봐도 대부분 하락세를 보였다. 서울의 경우 9년 내내 1300곳 이상을 유지해왔지만 지난해 처음 1200대(1267곳)로 떨어졌다. 눈에 띄게 도장이 늘어난 곳은 신혼부부가 많이 거주하는 세종(55곳→85곳)이 유일했다.

지난 2020년 9월 14일 사회적 거리 두기 방역 수위를 2단계로 전환된 뒤 광주시 남구의 한 태권도 도장에서 어린이가 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장 ‘멸종 위기’의 구조적인 원인은 저출산에 따른 초등학생 수 급감이다. 교육부 ‘2024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초등학교 학생수는 249만 5005명이다. 전년도보다 10만 8924명 줄어들며 유·초·중등 학생 수 가운데 가장 큰 감소폭(4.2%)을 보였다. 박씨 역시 “도장 근처의 초등학교가 원래 학년 당 14반까지 있었는데, 10년 사이에 8개 반으로 줄었다”면서 “코로나가 끝난 뒤 결혼이 늘었다지만, 이제 태어난 아이가 도장에 올 만큼 클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물가·불경기까지 오며 도장 폐업 주기는 더욱 짧아지고 있다. 김동성 전국태권도장연합회 대표는 “간판은 그대로 두고 관장만 계속 바뀌는 식”이라며 실제 폐업 상황은 통계 상 수치보다 심각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예 새로운 도장을 차리기에는 비용 부담이 있다 보니, 장사를 접는 도장을 그대로 인수하는 경우가 많아 통계에는 반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태권도장은 생존 전략으로 맞벌이 부부의 ‘돌봄 공백’을 채워주는 역할까지 도맡고 있다. 이날 취재진이 방문한 한 도장 간판에는 ‘직장맘 퇴근시까지 케어·하교와 돌봄교실 픽업'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써 있었다. 관장 A씨는 “오후 4시 반에 돌봄교실이 끝나면 아이들을 픽업한 뒤 부모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데리고 있다가 집까지 또 차로 태워준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 역시 “요즘엔 아이들 밥까지 해 주는 도장도 많다”며 사범들이 물가 대비 낮은 월급과 자질구레한 돌봄 업무에 불만을 갖고 자주 관둬서 직원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저출생에 따른 학생 급감은 예견된 위기인만큼, 태권도장을 넘어 아동을 주고객으로 하는 모든 업계가 새로운 경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BC카드에 따르면 최근 3년 사이 연간 카드 매출 분석 결과 지난해 교육 업종(예체능 및 보습학원·어린이집·독서실 등) 소비가 지속적으로 줄며 총 매출이 2022년보다 21.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인구절벽은 이미 시작된 문제고 유소년층은 앞으로 더욱 빨리 줄어들 것"이라면서 “사실상 (아동 관련 업계를) 사양 산업이라고 봐야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줄어드는 고객 파이 속에서 자신만의 차별화·세분화된 먹거리를 찾아 매출 방어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정부는 이 과정에서 업종별 경영 위기를 잘 살피고, 업계 종사자들이 ‘페이드 아웃’하는 과정에서 연착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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