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577
취임식 전에 야당부터 일일이 찾아가 협력 당부
통합형 발탁 인사로 인기 폭발…개그콘서트 소재
취임식 전에 야당부터 일일이 찾아가 협력 당부
통합형 발탁 인사로 인기 폭발…개그콘서트 소재
문재인 대통령(왼쪽 둘째)이 2017년 5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를 찾아 정우택 원내대표(오른쪽 둘째)와 악수하고 있다. 국회 사진 기자단
106주년 3·1절은 토요일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과 탄핵 반대 집회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열렸습니다.
1919년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기 위해 기미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선각자들은 먼 훗날 후손들이 비상계엄 외피를 둘러쓴 내란 우두머리 대통령을 쫓아낼 것인가 쫓아내지 말 것인가를 놓고 패가 갈려 싸움박질을 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요? 참으로 부끄럽고 한심한 일입니다. 이제부터 벌어질 일이 더 걱정입니다.
첫 번째 고비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입니다.
당장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선고일을 지정하면 헌법재판소 청사가 있는 안국동 일대에서 연일 집회와 시위가 벌어질 것입니다. 흥분한 군중이 무슨 일을 벌일지, 어떤 사고가 터질지 알 수 없습니다.
탄핵심판 결정 선고 당일이 가장 큰 걱정입니다. 경찰이 갑호 비상령을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파면 직후 집회와 시위 도중 사고로 2명이 숨졌습니다. 탄핵 반대 시위 참가자들은 기자들을 폭행했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극우 세력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무장 폭동을 일으키려 할 수도 있습니다.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고비는 조기 대선입니다.
국민의힘이 헌법재판소 결정에 불복하고 조기 대선을 거부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이나 권성동 원내대표는 여러 차례 “헌법재판소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열성 지지층은 국민의힘이 “정권 재창출을 해야 윤석열 대통령을 사면할 수 있다”는 논리로 설득할 것입니다.
문제는 대선 이후입니다. 조기 대선이 5월쯤이라고 치면 지금은 겨우 대선 2~3개월 전입니다. 최근 탄핵 찬반이나 정당 지지도 등 정치 관련 여론조사 응답자들은 모두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답변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지금까지 대선 2~3개월 전 여론조사에서 1위나 2위가 아니었던 제3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적은 없습니다.
2월 28일 발표한 한국갤럽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는 이재명 35%, 김문수 10%, 한동훈·홍준표 4%, 오세훈 3%, 안철수·유승민·이준석 1%였습니다.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누리집 참고)
5월 조기 대선에서는 이재명, 김문수 가운데 한 사람이 당선된다고 보는 게 상식적입니다. 문제는 결과보다 과정입니다. 이번 조기 대선은 2022년 3·9 대선보다 훨씬 더 격렬한 선거가 될 것입니다. 정치 양극화가 더 극심해졌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국민의힘 지지자 가운데 상당수는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광화문에서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 탄핵 집회를 시작할 것입니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해 온 극우 세력은 이재명 대통령 퇴진을 요구할 것입니다.
만약 김문수 노동부 장관이 당선되면 어떻게 될까요?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상당수는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광화문에서 김문수 대통령 탄핵 집회를 시작할 것입니다. 아니라고요? 2022년 3·9 대선 뒤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2017년과 달리 이번 대통령은 선거 바로 다음 날 국회에서 취임식을 하고 21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취임하게 됩니다. 이재명이든 김문수든 대통령 당선 및 취임과 동시에 탄핵 집회를 맞닥뜨리게 되는 셈입니다. 탄핵 집회에 자칫 잘못 대처하면, 대통령이 되자마자 레임덕에 빠지는 사상 초유의 대통령이 될 위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요?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이라는 혼돈의 강을 무사히 건넌 저력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 양극화가 극심하기 때문에 그때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는 있지만, 결국 우리는 위기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1960년 4·19 혁명, 1979년 부마항쟁, 1980년 광주항쟁, 1987년 6월 항쟁의 유전자가 있습니다.
여야 정당과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언론계, 학계 등 온 나라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선거 결과에 승복해야 합니다.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흐트러진 국정을 새 대통령이 바로잡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래도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새 대통령의 리더십입니다.
2017년 5·9 대선 다음 날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식 전에 야당부터 찾아갔습니다.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정우택 원내대표 겸 대표 권한대행을 만나 “안보를 위해 지혜를 모으자”고 했습니다. 국회에 있는 다른 야당 대표실도 일일이 찾아갔습니다. 박지원 국민의힘 대표,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 권한대행,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를 만나 협력을 당부했습니다.
2017년 5월 11일 치 한겨레신문 그래픽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통합과 공존’을 강조했습니다. 새 대통령의 ‘레토릭’이려니 생각했습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 패권주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내부 갈등이 심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문재인 표 파격 인사가 시작됐습니다. 노영민, 양정철, 최재성, 이호철 등 측근들을 배제했습니다.
비문재인 성향의 인물들을 요직에 발탁했습니다. 임종석 비서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통합형 인사를 민심은 높이 평가했습니다. 2017년 5월 19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향후 5년 직무 수행 전망’ 질문에 ‘잘할 것’이라는 응답은 무려 87%였습니다. 같은 시기 같은 질문 이명박 전 대통령 79%, 박근혜 대통령 71%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대통령 지지율 고공 행진은 죽 이어졌습니다. 2017년 12월 직무 평가는 긍정 72%, 부정 20%였습니다. 2018년에도 긍정이 부정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2019년에 들어서야 긍정과 부정이 비슷해졌고 2022년까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취임 초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나타났습니다. 2017년 7월부터 2018년 8월까지 ‘케이비에스 2 텔레비전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 코너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패러디한 ‘문 교장’이 등장했습니다.
송준근 씨가 문재인 대통령 역할을, 이수지 씨가 김정숙 여사 역할을 맡았습니다. 두 사람은 꼭 팔짱을 끼고 나왔고,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구호였던 “사람이 먼저다”라는 대사를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는 손가락으로 하트를 날려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정치인을 패러디한 코미디는 많았지만, 이 정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땠을까요? 2022년 3·9 대선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통합을 강조했습니다.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대통령 취임 6일 뒤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의회주의’를 네 차례, ‘초당적 협력’을 세 차례 언급하며 통합과 협치를 강조했습니다. ‘레토릭’이었습니다.
그해 10월 25일 민주당이 검찰의 전면 수사를 이유로 윤석열 대통령의 정기국회 시정연설을 보이콧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때부터 “생각이 너무 다르다”며 야당과의 대화를 아예 중단했습니다.
통합형 인사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윤석열 사단’의 핵심을 법무부 장관에, 충암고 후배를 행정안전부 장관에 임명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때의 구시대 인물들을 줄줄이 기용했습니다.
인사의 실패는 지지도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취임 한 달여만에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섰습니다. 그런데도 반성하고 성찰하지 않았습니다. 2024년 총선 승리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사례를 통해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대통령 취임 초기에 과감하게 야당을 끌어안고 파격적인 통합 인사를 해야 대통령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고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느냐, 실천하지 않느냐에 따라 집권 초 성패가 엇갈리는 것입니다.
오는 5월 조기 대선에 출마하는 여야의 대선 후보들이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대목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정면교사로, 윤석열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지금부터 각별히 명심하고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