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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사전 > 세계한잔 ※[세계한잔]은 우리 삶과 맞닿은 세계 곳곳의 뉴스를 에스프레소 한잔처럼, 진하게 우려내 한잔에 담는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2024년 9월 촬영된 이투루프의 모습. 이투루프는 러시아와 일본 양국 간 영유권 분쟁이 지속되고 있는 북방영토(남쿠릴열도 4개 섬) 중 하나다. 사진 엑스(X) 캡처
약 80년째 러시아와 일본 양국 간 영유권 분쟁이 지속되고 있는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가 최근 몇 년새 러시아의 손길이 미치면서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쿠릴열도를 실효 지배 중인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을 이유로 이 곳을 군사기지화하면서 동시에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NHK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는 쿠릴열도 섬들을 ▶관광 ▶어업 ▶군사기지 등 목적으로 개발 중이다. NHK가 소셜미디어(SNS)와 위성사진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온천호텔·카페·슈퍼마켓·학교·병원까지 생겼다.

2023년 10월 촬영된 쿠릴열도 이투루프 섬. 항구와 건물 등이 잘 정돈된 모습이다. 사진 엑스(X) 캡처
러시아 텔레그램에는 러시아인들에게 "깨끗한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섬"이라며 관광 상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화산 근처 하이킹과 온천욕·온천에 삶은달걀 등이 2박 3일 패키지 상품으로 팔린다. 지난해에만 쿠릴열도 중 하나인 쿠나시르(일본명 구나시리)섬에만 5년 전의 3배 이상인 5000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일본의 패전 이후부터 80년 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상전벽해다.

이와 관련, 일본에선 러시아의 군사기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시코탄, 하보마이 군도, 이투루프(일본명 에토로후), 구나시리 등 북방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확보했다. 그러나 1945년 일본이 패전하면서 당시 소련이 자국 영토로 선언했고 지금까지 실효 지배하고 있다. 2차 대전 전에는 일본인 1만 7000명이 살았지만, 일본의 패전 이후 고향을 떠나 실향민 신세가 됐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러 최남단 방위선…대공미사일 영구 배치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이곳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해 군사기지화됐다는 점이다. 러시아 군 사정에 정통한 고이즈미 유 교수(도쿄대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에토로후와 구나시리에 군 지상부대와 지대함 미사일 부대가 배치되면서 쿠릴열도의 군사기지화가 본격화했다.

미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가 위성사진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지난 2020년 에토로후섬에 대공미사일 ‘S-300V4’ 발사대를 영구 배치하는 등 쿠릴열도에 대규모의 군사 시설을 갖췄다.

또한 최근 러시아군은 미국에 대한 억제력 확보 차원에서 쿠릴열도의 북쪽 오호츠크해에서 잠수함 순찰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이와 관련, 고이즈미 교수는 NHK에 "오호츠크해와 북태평양 사이에 있는 쿠릴열도가 러시아의 최남방 방위선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 외교안보 싱크탱크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에 따르면 러시아는 2021년 8월 에토로후와 구나시리에 7개의 새로운 막사를 포함해 쿠릴열도에 총 50개 이상의 새로운 군사 인프라를 건설하는 방대한 건설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사진 CSIS 캡처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가 북방영토 기지에 있던 병력이나 장비 일부를 이동시키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고이즈미 교수에 따르면 2022년 7월에 촬영된 에토로후섬 덴닝 군사시설 위성사진에서 미사일 탑재 방공 시스템으로 추정되는 상자 모양의 물체가 여러 개 포착됐는데 같은 장소를 촬영한 지난해 11월 위성사진을 보면 상자가 몇 개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이즈미 교수는 “이 장비들은 우크라이나 전장으로 보내진 것으로 보인다”며 “방위선 최남단에 있는 북방영토는 러시아군에게 군사적 요충지로서 의미가 깊어 일·러 간 영유권 분쟁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 일본 네티즌이 촬영한 홋카이도 네무로시의 노삿푸곶의 모습. 네무로시 노삿푸곶은 일반인이 접근 가능한 홋카이도 최동단 지점으로 이투루프 섬을 그나마 가깝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일본인들은 이곳에서 망원경 등으로 이투루프 섬의 모습을 보곤 한다. 사진 엑스(X) 캡처



일본인 원주민 고령화…해결은 요원

한편 평균 연령 89세가 된 북방영토 원주민들은 고향에 가지 못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에토로후섬 출신인 일본인 실향민 마쓰모토 유조(83)는 NHK에 "죽는 날까지 고향으로 돌아가리란 희망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마쓰모토에게 관광지가 된 쿠릴열도 영상을 보여주자, 그는 "자연 그대로였던 곳이 러시아에 의해 개발됐다"며 표정을 흐렸다. 본래 실향민들은 성묘 등을 위해 고향에 갈 수 있었다. 한 때 무비자 방문도 가능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엔 이마저 중단됐다고 NHK는 덧붙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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