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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잘못 끼워진 6공의 첫 단추



1회. ‘총선 승리용 희생양’ 전경환의 비밀출국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 중앙본부회장이 1991년 가석방돼 영등포교도소를 나서는 모습. 그는 7년형을 받았지만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감형으로 풀려났다. 중앙포토



동생 공천 거부당한 전두환의 분노

노태우 대통령 취임식(1988년 2월 25일)을 며칠 앞두고 청와대를 떠날 준비에 바쁘던 전두환 대통령이 김윤환 비서실장과 김용갑 민정수석을 아침 일찍 호출했다. 김용갑이 먼저 도착해 집무실에 들어섰다. 겨울이라 아직 어두컴컴한 방에 불도 켜지 않고 앉아 있던 전두환이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이봐, 민정수석, 민정당(5공화국 여당) 누가 만들었나?”
김용갑은 대통령의 엉뚱한 질문에 대답을 못 했다. 대통령이 스스로 답했다.
“내가 만들었지.”
김용갑이 “예 그렇습니다”고 하자 전두환이 곧바로 다시 질문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전부 몇 명이야?”
김용갑은 “대략 300명쯤 될 겁니다”라고 답했다. (정확하게는 299명) 전두환이 곧바로 말을 받았다.
“이봐, 국회의원 300명 중에 한 명쯤은 내 맘대로 시켜도 되는 것 아니야?”

1985년 6월 3일 전경환 새마을본부 회장(가운데)이 도쿄에서 나카소네 일본 수상(오른쪽)을 예방해 악수하고 있다. 왼쪽은 5공의 일본통 최경록 주일 대사. 주일대사를 데리고 일본 수상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전경환의 대단한 비중을 말해준다. 중앙포토
김용갑은 비로소 전두환이 동생 전경환의 국회의원 공천에 대해 얘기하는 것임을 알아챘다. 전경환은 1988년 4월 총선에 출마하길 원했다. 노태우와 6공 입장에선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전경환은 ‘5공과의 차별화’ 차원에서 기피 대상 1호였다.

전두환의 추궁이 이어졌다.
“난 그동안 민정수석 얘기 다 들어줬어.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확실히 얘기해봐. 경환이가 정치하고 싶어 하는데, 이번에 합천(전두환 고향인 경남 합천군)에 공천해도 되는 거 아니야?”
5공 충신이지만 동시에 6공 창업공신인 김용갑은 분명히 반대 입장을 밝혀야 했다.
“안 됩니다. 시중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새마을중앙본부 회장 당시 문제와 관련해 말이 많습니다.”
김용갑은 어둠 속에서도 전두환의 표정이 굳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두환이 “그래 좋다. 출마 안 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너희들, 나한테 이럴 수 있는 거야?”

김용갑은 여기서 ‘너희들’이란 말이 귀에 들어왔다. 민정수석인 자신만이 아니라 노태우 당선인을 비롯한 6공 세력 모두에 대한 분노였다. 5·6공 갈등이 시작됐다.



전경환의 비밀출국과 함정 의혹

전경환의 공천 탈락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지난 1988년 3월 18일, 청와대와 총리공관 사이 팔판동 골목길에 자리 잡은 전경환의 자택은 취재진에 에워싸여 있었다.
오전 11시쯤 전화가 왔다. 안기부 관계자가 ‘맞은편 안가로 잠깐 와달라’고 요청했다. 전경환은 “믿을 만한 사람 보낼 테니 할 얘기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전경환이 ‘김사장’이라 부르던 측근이 메신저로 다녀왔다.
“잠깐 나가 계시면 모든 일을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합니다.”
전경환은 곧바로 일본행 비행기편을 알아봤다. 가장 빠른 편이 오후 6시53분. 가명으로 1등석을 예약했다. 전경환의 측근은 “출국을 권한 안기부 사람은 박철언 청와대 정책보좌관의 측근이었다. 당연히 청와대의 뜻으로 알고 따랐다”고 말했다(박철언은 물론 측근으로 지목된 인물 역시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다).

전경환은 발권 마감시간 직전 경호원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출국 수속은 공항 관계자들이 대신해 주었다. 다른 승객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먼저 탑승했다.
비밀출국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한국일보가 ‘전경환 해외도피’라고 보도했다.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당국의 귀띔을 받아 기사를 썼다’고 밝혔다. 전경환이 ‘당국이 파놓은 함정’에 빠졌다는 의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침 신문을 보고 불같이 화를 냈다. 마침 다른 보고로 연희동 사저를 찾은 안무혁 안기부장은 전경환 출국 사실을 몰랐다. 전두환은 안무혁에게 “당장 찾아서 데려와”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안무혁은 안기부 국장급 고위간부를 일본에 특파했다. 수소문 결과 전경환을 찾았지만 귀국을 거부했다. 안무혁이 직접 통화하면서 ‘형님의 진노’를 설명하자 귀국에 동의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안무혁 안기부장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안기부 직원이 안기부 안가로 불러 출국을 권유했고, 김포공항 해외출국장엔 안기부 요원이 상주 감시하는데도 불구하고 안기부장이 전혀 몰랐다.
박철언 청와대 정책보좌관이 안기부 특보시절 별도팀을 운영했으며, 별도팀은 ‘안기부 내 안기부’처럼 따로 움직였기에 안기부 사람들도 몰랐다던 소문과 맞아떨어진다. 안무혁은 6공 창업공신이지만 5공 군 출신이었기에 6공 신실세 박철언과는 맞지 않았다.

(계속)
전경환은 20일 오후 김포가 아니라 김해공항으로 몰래 귀국했습니다.
다음날 측근이 “어떻게 된 일이냐”고 귓속말을 하자 “내가 당했다”고 중얼거렸습니다.
“나를 밟고 가는 한이 있더라도 선거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해.” 이랬던 전두환은 왜 동생 일에 분노했을까요.
자세한 내막은 아래 링크를 통해 이어집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3182


노태우, 절친 등에 칼 꽂았다…알고보니 배후는 가족회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6437

김옥숙 본심에 이순자 “소름”…전두환 권력 물려주자 생긴 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0309

술 약했던 전두환의 실수…“내 뒤처리 노태우가 다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2852

노태우 비자금 3250억 줬다…진짜 ‘발가벗고 도운’ 전두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850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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