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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8일 워싱턴 디시(D.C.) 백악관 집무실에서 회담 중 공개 설전을 벌이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격렬한 공개 설전을 벌인 끝에 예정된 공동 기자회견과 광물 협정 서명을 취소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예정보다 일찍 백악관을 떠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직후 소셜미디어에 “그는 미국을 존중하지 않았다. 평화를 원할 때 다시 오라”고 글을 남겼다.

회담 초반 분위기는 여느 정상회담처럼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문이 영광이라면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매우 용감하게 싸웠다고 평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감사하다며 화답했다.

그러나 모두발언에서부터 이견은 숨길 수 없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과 관련해 “푸틴은 25번이나 자신의 서명을 어겼다. 단순한 휴전 협상은 수용할 수 없다. 안전보장이 없으면 그것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젤레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2014년 자국 크림반도를 병합한 뒤 체결된 협정에도 불구하고 2022년 전면전을 일으켰다는 점을 재차 지적하면서 “우리는 휴전 협정에서 서명했고 모두 우리에게 ‘그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협정을 어겼다”며 “(광물협정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실질적으로 안전을 보장해주는 첫 문서가 되길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전쟁범죄 관련 사진을 준비해와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설전은 공개 회담 50여분 중 마지막 10여분 동안 벌어졌다. ‘푸틴 대통령에게 너무 동조하는 것 아니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에 대한 그(젤렌스키)의 혐오 때문에 내가 협상을 타결하는 게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배석한 제이디 밴스 미국 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를 위해 러시아와 외교를 하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그러자 젤렌스키 대통령이 발끈했다. 그는 ‘부통령에게 질문해도 되느냐’며 트럼프 대통령의 승낙을 구한 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불법 병합한 뒤 체결된 민스크 평화협정을 위반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사실을 재차 지적하면서 “제이디, 도대체 무슨 외교를 말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밴스 부통령이 발끈하면서 설전이 시작됐다.

밴스 부통령은 “당신 나라의 파괴를 끝낼 종류의 외교에 대해 말하고 있다”면서 “백악관 집무실에 와서 미국 언론 앞에서 이걸 따지는 게 무례하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당신은 이 분쟁을 끝내려고 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여러분은 좋은 바다(대서양)가 있고 지금 (위험을) 느끼지 못하지만, 미래에 (위험을) 느낄 것”이라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참전했다. 그는 “우리가 뭘 느낄지 우리한테 지시하지 말라. 당신은 그런 위치에 있지 않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때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으며 격렬한 감정을 표출했다. 그는 “미국의 군사 지원이 없었다면, 우크라이나는 몇 주 만에 전쟁에서 졌을 것이다. 감사해야 한다”며 “당신은 수백만 명과 3차 세계 대전을 놓고 도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거듭 “미국 국민에게 수차례 감사를 표했다”고 반박했지만 그의 말이 잘 전달되지 않을 정도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정은) 당신이 그것(전쟁)에서 나올 좋은 기회”라면서 “우리가 없으면 당신에게는 (전쟁을 끝낼) 아무 카드도 없다. 협상하거나 아니면 우리는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논쟁이 더욱 거칠어지자 그는 “미국 국민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 보는 건 좋은 것이다. 훌륭한 텔레비전 쇼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제이디 밴스 부통령은 지난해 9월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 대선을 앞두고 포탄 생산 공장이 있는 도시이자 민주당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고향인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을 방문한 점까지 거론하며 “당신은 야당(민주당) 선거 운동을 위해 펜실베이니아에도 가지 않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설전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발언할 기회를 달라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거듭 무시했으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난 휴전을 원치 않는다. 난 휴전을 원치 않는다”라고 비꼬기까지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8일 미국 워싱턴 디시(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협상이 결렬되고 예정된 공동 기자회견이 취소된 뒤 떠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기자들이 퇴장하면서 비공개로 전환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1시16분께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나는 젤렌스키가 평화를 위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본다”라며 “그는 백악관에서 미국에 대해 무례하게 행동했다. 평화를 위한 준비가 되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라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예정보다 이른 이날 오후 1시 40분께 백악관을 떠났다. 굳은 표정이었으며 언론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을 떠난 뒤 소셜미디어 엑스에 올린 글에서 “우크라이나는 정의롭고 항구적인 평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정확히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대해 미국 대통령과 의회, 미국 국민에게 감사하다”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의 중대 고비였던 이날 회담이 광물협정도 체결하지 못한 채 마무리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 시나리오는 안갯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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