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2022년 5월, 서울 시내 거리를 걷는 중년 남성들의 모습. 연합뉴스
한국 사회에서 남성성을 구성하는 암묵적 규범은 수없이 많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는 말을 신조로 어릴 적부터 감정 표현을 금기시한다.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남자답다'고 여겨진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남성은 연인이나 친구, 가족과 같은 친밀한 사이에서도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성인이 된다. 대신 내면의 불안과 고통을 폭음과 흡연, 과식 등 자기 파괴적으로 해소하려 한다.
신간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은 이 유해무익한 남성 문화의 대안으로 페미니즘을 제시한다. 저자는 책 제목과 동명인 페미니즘 단체의 공동운영위원장이자 성평등 교육 활동가인 이한 작가다. 그가 '남성 페미니스트'가 된 것도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맞닥뜨린 모순적 순간들을 설명하려면 "페미니즘의 언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입대를 앞두고 느낀 막막함이나 없는 형편에도 데이트할 때는 꼭 먼저 카드를 꺼내는 스스로를 이해하는데 페미니즘 공부가 도움이 됐다. 주변에서 '사람 고쳐쓰는 것 아니다'라고 냉소해도 교육의 필요성과,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 이유다.
책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의 저자이자 동명의 페미니즘 단체의 공동운영위원장인 이한 작가. 한국일보 연재 기획 '젠더살롱'에서 1년 6개월간 글을 쓰기도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요즘 주목하고 있는 집단은 중년 남성, 아저씨들이다. 저자는 최근 들어 성평등 교육 현장에서 만난 아저씨들에게서 가부장 사회의 미묘한 균열을 발견한다. 대개 딸을 둔 남성으로, 교육을 듣고 나서 "뭔 말만 하면 딸이 자꾸 화를 내는데, 어떻게 해야 딸과 싸우지 않고 대화할 수 있을까요?" 유의 질문을 던진다고 했다. 저자는 중년 남성들이 드디어 "'집에 돈벌어다 주는 기계'라고 자조하면서도 쉽사리 놓지 못했던 가부장 권력의 문제를 직감하고, 그 고독한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종의 생존 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음을 포착한다.
책은 페미니즘을 여성의 전유물로, 때때로 남성 혐오의 동의어로 오독하고 있는 한국 남성들에게 외친다. '사랑받는 아저씨'가 되고 싶은가? '행복한 아저씨'를 꿈꾸는가? 그렇다면 변해야 하고, 그 길은 페미니즘이라고.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한 지음·동아시아 발행·264쪽·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