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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칠 교수의 일기는 1993년 〈역사앞에서〉란 제목으로 창비에서 출간되었다. 이 일기는 1945년 11월 29일자 뒤쪽부터 남아있었는데, 그 앞의 일기가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유물을 보관하고 있던 필자의 아들 김기목(통계학·전 고려대) 교수가 사라진 줄 알았던 일기를 최근 찾아냈다. 1945년 8월 16일에서 11월 29일(앞쪽)까지 들어 있다. 중앙일보는 이 일기를 매주 토요일 원본 이미지를 곁들여 연재한다. 필자의 다른 아들 김기협(역사학) 박사가 필요한 곳에 간략한 설명을 붙인다.



9월 25일 개다.

철(哲)의 어머님에게 처음으로 인사드리다.

아침에 하(河)씨와 함께 연합회까지 도보(徒步).

회의는 하상용(河祥鏞)씨 의장으로 주재. [출석자]

[해설 : 명단을 적을 생각으로 ‘출석자’란 메모를 남긴 것으로 보이나 명단은 올리지 않았다.]

남북문제로 첫날부터 파란 중첩

시게마쓰 다카모토(重松鵿修)씨로부터 귀국 후 자기의 저서 수송에 관해서 간곡한 부탁이 있었다.

[해설 : 시게마쓰는 조선금융조합 초기부터 근무한 일본인으로 필자가 존경한 인물이다. 그의 〈朝鮮農村物語〉(1941)를 필자가 번역해 〈朝鮮農村譚〉(1942)으로 낸 일이 있다.]

저녁엔 도미나가(富永) 회장 이하 연합회 간부와 식사.

회장의 인사 – 그 요지

“이때까지는 일본 사람이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에 진정한 일선(日鮮) 친화는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서로 대등의 지위에 서서 정말 진심으로 손에 손을 잡고 동양인의 동양을 세우기 위하여 함께 일할 수 있을지니 그러한 의미로 보면 이번의 사태는 일-선 양 민족을 위하여 다행한 계기일 수 있다.”

“우리는 머잖아 제군에게 연합회를 맡기고 일본으로 가게 될 것이다. 교문(校門)에서 바로 조선으로 나와서 30년 혹은 40년 동안 직접간접으로 금융조합의 일을 보아 온 우리들로서는 감개무량한 바 있다. 몸은 고국에 가 있어도 마음은 항상 조선의 금융조합에 있을 것이며 조합이 앞으로도 순조로운 발전을 이루어 조선의 농촌과 농민을 위하여 많은 활약이 있기를 충심 기원한다.”

“제군은 누가 연합회와 조합의 중심이 되든지 일체의 사심을 버리고 그 중심을 잘 도와나가서 금융조합의 타일의 대성(大成)을 기하라.”

출석자 전원의 자기소개와 각 부장의 감상담이 있은 후 하씨의 답사로 마치다.

저녁에 박종홍(朴鍾鴻) 선생을 방문.



9월 26일 개다.

조선금융조합 중앙대책위원회의 규약 기초위원이 되어 별실에서 규약안을 만든다 하니 본회의에서 하상용씨가 분개해 퇴석했다고 해서 몇몇 사람이 가서 데려왔으나 설왕설래에 사단이 많았고 오후엔 38도 이북을 어찌하느냐 하는 문제로 하씨와 북선(北鮮) 대표(성진 제1, 통천, 길주)가 격앙하여 회의는 재차 결렬의 위기에 처했으므로 부득이 조정에 나서서 양편을 무마하여 회의의 속행에 성공. 일부에서 하씨의 협량(狹量)을 탄하는 이들이 있었다.

북선 대표들의 소련군의 만행에 대한 견해

1. 그들은 워낙 탈선 행동이 많고 또 머리 깎은 병정이 많으니 수인군(囚人軍)이라서 소질이 그처럼 나쁜지도 모른다.

2. 처음에는 하급 병졸들의 행패인가 했더니 식량과 공장의 기계를 자꾸 배에다 실어감으로 보아 물론 부대장의 지휘에 의함일 것이다.

3. 스탈린 원수는 포고(布告)하기를 일본 사람에게는 심하게 굴더라도 조선 사람에겐 그리 말라 했으나 좋은 물건과 고운 여자를 보면 비록 조선사람인 줄 알더라도 야폰스키-라고 한다.

4. 미군은 자기네의 생활수준이 높기 때문에 조선 사람의 것이 다 시시하게 보이나 소군은 그와 반대이므로 여기 와 보면 무엇이든지 탐이 나서 나쁜 행동을 하기에 이르는 것일 게다.

5. [나의 견해] 문명의 정도는 속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문명이 결정한다.



9월 27일 개다.

해전(海田) 선생을 찾았더니 손목을 잡고 눈물을 흘릴 듯 반기었다. 점심 대접을 받다. 촌놈이 생전 처음으로 브랜디 맛을 보다.

영보빌딩에 명제세(明濟世) 선생을 찾았더니 부재.

이근채(李根采)씨 이종인(李宗仁)씨를 만나다. 이종인씨는 서대문까지 따라와서 탕수육 대접을 하다.

연합회에선 건의안의 기초위원으로 선임되었으니 꼭 맡아주어야겠다고 우기었으나 그럴 여가가 없다고 언명을 회피하고 차 시간이 급하다고 나와버렸다.

조흥은 동대문지점에 신창현(申昌鉉)군을 방문, 그의 주선으로 차표를 사 가지고 6시15분발 차로 원주 내려와서 우산리 이중연씨 댁에 도달하기는 자정을 지난 후였다.

차중에서 자기는 청량리서부터 열차 지붕 위에 타고 왔노라고 득의연하게 말하는 친구가 있었으므로 전쟁 이래로 아무리 사람의 생명의 가치가 떨어졌기로니 목숨을 내걸고 차 탈 거야 있느냐 하고 웃었다. 이것은 경성의 전차에서도 보고 느끼는 광경이었다.

밤중길을 우산리로 가노라니 늙은 여인이 3~4인 역전에서 기다리다 한숨을 짓고 돌아가므로 대개 짐작은 가는 바이지만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아들들이 일본에 징용과 징병을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므로 벌써 한 달째 날마다 밤마다 차 시간을 대어서 행여나 하고 나온다고 하기에 그러지 말고 집에서 마음 놓고 기다리라고 누누이 일러주었다. 그러나 문득 내가 소년 시절에 감옥에 갔을 때 어머님께서 날마다 자동차 시간이 되면 행여나 하고 마음조이며 기다리시었다는 이야길 회상하고 눈물이 한두 방울.

달이 밝았다.



9월 28일 개다. [조회시간엔 전체(全體)와 개(個)의 이야기. 학교와 생도]

아침에 우산리서 원주읍까지 만야(滿野)의 황금물결 속을 헤치고 나오노라니 가을 전원 산책 기분이 매우 좋았다.

오전 중 신명여학교서 공민 한 시간, 역사 두 시간. 세 시간 계속은 고되었다.

전임(專任) 여교원 문제로 이 교장대리에게 강경한 의견을 개진하였다.

이 선생과 나 선생이 여학교에서의 선생 노릇은 어렵다는 것이며 누구는 천정을 보고 가르쳤다는 등 이야기하므로 일점 사심 없이 평심서기(平心舒氣)로 교실에 임한다면 아이들에게 그러한 심경이 반응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했더니 그건 이상론이고 실지는 그렇지 않다고 하기에 정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거리에 나가 구루마를 끌어서 호구(糊口)할망정 그러한 자신 없는 교원 노릇은 하지 않겠노라 했다. 두 사람이 모두 내 어기(語氣)에 눌리어 아무런 대꾸도 없었으나 내심으로 애숭이 네가 무얼 아느냐 하는 눈치였다. 나 또한 속으로 여학교 교육이란 과연 그러한 것일까. 그래도 좋은 것일까. 정말 고결한 인격을 가진 선생이라면, 아이들에게 그것이 똑바로 느껴지지 않을까. 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순화시킬 수 있는 교육자가 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끝없이 일어났다.

가을의 다사로운 햇빛을 등에 지고 고요한 교원실에 앉아서 책을 펼치니 그 하도 조용한 분위기가 조합 사무실과 대척적이어서 역시 내 천직은 이런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느끼었다.

두 시 반 차로 집에 오니 기봉이가 성치 않아서 걱정이었으나 인제 그만한 것이 다행이다.



9월 29일 (토) 개고 덥다.

조필환(曺必煥)씨와 학교 선생님 세 분이 찾아와서 지방에서 국사강습회를 열고 싶으니 맡아달라기 힘대로 해보마고 답해두었다.

권(權) 의생 댁과 조(曺) 의사를 방문.

경희(璟熙)군에게 쌀 두 말 지워서 고향 보내다.

강경셕(姜敬錫)군에게서 오랜만에 글월 왔다. 공곡공음(空谷跫音)이다.

[해설 : ‘공곡공음’은 지극히 반갑고 기쁜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의 “혼자 빈 골짜기에 도망쳐 살며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반가운데, 하물며 형제와 친척의 기침 소리가 옆에서 들려 온다면 어떠한가.[夫逃虛空者 聞人足音跫然而喜 又況乎昆弟親戚之謦欬其側者乎]”란 대목에서 나온 말이다.]


밤에는 자정까지 일기 쓰다.

[해설 : 이 일기 중에는 그날그날 적은 것이 아니라 시일이 좀 지난 후에 정리해 적은 것으로 보이는 곳이 많다. 이날은 집 떠난 동안의 며칠 일기를 정리한 것 같다. 9월 23일자 일기에도 “일기 정리하다” 하는 대목이 있는 것을 보면 집에 있을 때도 일기를 이 일기장이 아닌 다른 곳에 대충 적어 놓았다가 틈을 넉넉히 낼 수 있을 때 다시 정리해 적은 것으로 보인다.]



9월 30일 흐리다.

종일 앓아누웠다.

제천서 조(趙) 이사견습, 한(韓) 서기, 김하운(金河雲) 3인 내방.

보례 서군으로부터 야채류 보내어 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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