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전문가’ 김양희 교수가 진단한 관세전쟁
“트럼프식 중국 봉쇄엔 한국이 중요한 역할…어필해야”
“트럼프식 중국 봉쇄엔 한국이 중요한 역할…어필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 16일 미국 팜 비치 국제공항에 착륙한 뒤 기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관세 전쟁’에 세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기존 무역 질서를 뿌리부터 흔드는 트럼프의 근본 의도는 무엇이고, 관세 전쟁의 방향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정책을 심층적으로 연구해온 김양희 대구대 교수(경제금융통상학과)는 “관세-감세 혼합 정책”이라는 구도와 “전반적 세계 질서를 전복하려는 차원”으로 상황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25일 한겨레 사옥에서 김 교수를 만나 트럼프 정책의 본질과 한국의 대응 방안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김양희 대구대 교수가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email protected]
― 트럼프의 통상 정책을 ‘관세-감세 혼합 정책’으로 규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정책이 통상적 보호무역주의 차원에서 무역적자 축소에 매달리는 것을 뛰어넘는 야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어떻게 봐야 할까?
“지금의 관세 전쟁은 통상 정책의 틀에만 가둬놓고 보면 답이 안 보인다. 미국 국내의 감세와 이것을 메꾸기 위한 새로운 재원으로서 관세를 바라본다는 점을 함께 놓고 봐야 우리의 대응도 방향이 명확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트럼프의 지상 목표가 무역적자 축소를 뛰어넘어 개인소득세를 관세로 대체하면서 미국 세금 제도의 근간을 바꾸는 것이라면 고율 관세 부과 의지가 더욱 강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미국 국내적으로는 어떤 효과가 예상되나?
“근린궁핍화 정책(다른 나라 경제를 희생시켜 자국 이익을 도모하는 정책)일 뿐만 아니라 빈자궁핍화 정책이다. 관세를 인상해서 감세를 메꾸려고 두 개를 갖고 저글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관세를 인상하면 물가가 오르고, 감세는 기본적으로 세금 낼 여력이 있는 부자들이 이익을 본다. 관세율 50%에 같은 규모의 감세를 가정한 예측 모델을 보면, 소득 상위 20%인 5분위만 소득이 관세 인상으로 3.8% 감소하는 한편 감세를 통해서는 6% 늘어 이익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놀라운 것은 상위 1%만을 따지면 소득이 관세 인상으로 1.9% 줄지만 감세를 통해 13.5% 증가한다는 것이다. 1~4분위는 모두 소득 감소분이 더 크다.”
― 미국 경제 전체로는 어떤 효과가 예상되나?
“그 효과를 추산한 17개 기관의 분석 결과를 보니 경제 효과가 모두 마이너스, 즉 국내총생산(GDP)이 줄어든다. 상대국들이 보복한다고 가정하면 감소폭이 최대 3.61%에 이른다.”
― 미국 전체 세수에서 개인소득세 비중이 50% 안팎이고 관세는 2% 미만인데 세수 관점에서 관세가 소득세를 대체할 수 있는 건가?
“관세를 10%나 20%로 올려도 세수 비중이 4~7%밖에 안 된다. 소득세만큼 비중을 차지하려면 관세를 70%는 내야 한다. 불가능한 얘기다.”
― 일단 수치상으로도 트럼프 등의 호언대로 실현되기 어려운 정책으로 보이고, 인플레이션이나 무역 축소로 인한 미국 안팎의 경기 하강 우려도 있지 않나? 트럼프가 롤모델로 내세우는 19세기 말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의 경우 미국을 부유하게 만든다며 대부분의 관세율을 50%까지 올렸다가 경기침체를 불러왔다는 지적을 받지 않았나?
“(관세율을 크게 올렸다가 대공황을 악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1930년대의 ‘스무트-홀리법’의 재판이 될 것이다. 미국 내에서의 공급망 교란도 심해질 수 있다. 길게 볼 때 관세를 올리면 국내총생산은 축소된다. 그래서 결국 관세를 다시 내리게 된다. 매킨리 때도 그렇고 ‘포드니-매컴버 관세’(1922년) 때도 마찬가지였다.”
― 인플레이션 유발 효과는 어떻게 예상하나?
“이미 지난 1월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연방준비제도의 목표치인 2%를 넘어 전년 대비 3% 올랐는데 이는 2024년 6월 이후 가장 빠른 속도다. 관세를 본격적으로 부과하면 더 오를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주로 중국 상품에 관세를 부과해 미국 가구당 연평균 800~1200달러(약 172만원)의 부담을 졌다는 분석이 있다. 이번에는 전방위로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라 차원이 다르다. 비용 상승 효과는 더 크고, 외국에서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 2018~2019년 미·중 무역 전쟁 때 중국이 보복관세를 부과하니까 미국 농민들이 부담을 지게 됐다. 그걸 미국 정부가 92%를 보전해줬다.”
―트럼프나 측근들이 관세 만능론의 한계를 알 텐데도 그런 주장을 펴는 것은 결국 정치적 의도로 봐야 하나?
“수출 통제라든가 투자 통제는 복잡하고 즉각 눈에 안 들어온다. 관세는 대중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노동자들을 위해 일한다는 노동자 정당 이미지 구축에 용이하다. 관세는 대통령이 의회를 거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쓸 수 있는 근거 법도 많다. 또 트럼프는 캐나다, 멕시코, 콜롬비아, 중국한테 비경제적 이슈를 근거로 관세를 들이대면서 효능감을 봤다. 여기에 하나 더, 관세를 국내 감세를 위한 세원으로 본 것이다. 이게 가장 위험한 패착이다.”
―최근 미국 언론 여론조사를 보면 관세 부과를 놓고 미국인들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트럼프를 설득할 때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 고관세가 작동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하나가 있고, 더 중요하게는 트럼프의 특성을 고려해 ‘미국 경제가 안 좋다’가 아니라 ‘당신한테 안 좋다’는 걸 얘기를 해야 되는 거다. ‘트럼프의 시간’은 4년이 아니라 내년 11월 중간선거까지다. ‘당신한테 표를 준 사람들이 대부분 저소득층인데 이거는 저소득층한테 도저히 표를 받을 일이 아니다’라는 점을 얘기해야 한다. 한국 쪽이 만나야 할 사람들은 미국 관료 등 우아한 사람들만이 아니다. 관세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 노조, 소비자 단체, 수입업자들을 만나야 한다. 정부한테만 맡겨놓고 손놓고 있으면 안 된다. 지금은 전방위로 뛰어야 한다. 일론 머스크도 중국에서 테슬라를 만들기 때문에 관세 부과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김양희 대구대 교수가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email protected]
―실패가 뻔히 예견되는 정책일지라도 트럼프가 그것을 시행하면 한국처럼 수출 비중이 큰 나라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는데, 다른 대응 방안은 또 없을까?
“한국에 카드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우리는 통상을 넘어서 세계를 조감하는 시야가 필요하다. 예컨대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봉합하려는 중요한 이유는 ‘역키신저 전략’ 때문이라고 본다. 헨리 키신저가 미·중 수교로 중·러 사이를 떼어낸 것처럼 지금은 중국을 고립시키려고 러시아를 끌어들이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는 데 있어 한국이나 일본의 역할이 너무 중요하다. 아무리 트럼프가 동맹이 필요 없다고 해도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여전하다는 점을 강하게 어필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한국이 지닌 반도체, 조선, 방위산업 등의 제조 역량이 트럼프에게 필요하다는 점이다. 우리와 중국을 같이 때렸다가 우리가 죽으면 미국에도 결코 좋지 않음을 설득해야 한다.”
― 트럼프의 무역 질서 파괴나 러시아에 대한 태도 변화 등을 종합하면 극단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경제 안보’ 전략도 그에 따라 달라져야 할까?
“트럼프는 협소하게 경제 영역에서 안보를 얘기해온 세계 질서를 아예 전복시키고 있다. 놀라운 것은 2월12일에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이 통화에서 어떤 의제를 다뤘는가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전쟁 책임을 묻기는커녕 종전 논의를 벗어나 중동 정세, 달러의 역할, 글로벌 에너지시장, 인공지능(AI) 등을 논하고 미·러 경제 협력까지 합의했다. 지금 트럼프가 하는 것은 방어적, 보호적으로 공급망 회복 정도를 추구하는 경제 안보(economic security)를 넘어서는 경제 방략(economic statecraft)의 차원이다. 아니, 제국주의다. 이런 기조 변화에 정신 바짝 차리고 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