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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을 엄청 좋아해서 커서 수의사가 되고 싶어 했어요. 6개월 전부터 ‘비누’라는 고양이도 키웠는데, 비누를 데리고 나오려다가 더 다친 건 아닐지…. "
지난 26일 인천 서구 심곡동 집에서 혼자 있다가 화재를 당해 중태에 빠진 A양(12)의 부모는 눈물을 삼키며 이렇게 말했다. 사고 이튿날 만난 A양의 부모는 딸과 집에 함께 있지 못했던 것에 괴로워했다. 당시 아버지(47)는 병원에서 신장 투석을 받고 있었고, 어머니(46)는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A양은 얼굴에 2도 화상을 입고 일산화탄소 중독 증세를 보이며 병원에 이송됐지만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상태다.

A양이 6개월 전 입양한 고양이 '비누'를 안고 있는 사진(왼쪽). A양의 아버지가 지난해 찍은 사진. 사진 A양 부모 제공

A양의 아버지는 지난 2023년 11월 신부전증 말기 판정을 받았다. 통증을 버텨가며 공장에서 전기 설비 일을 계속 했지만 증세가 심해져 걷는 것도 여의치 않게 됐다. 지난해 9월 회사에서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고, 집에서 쉬며 치료를 받아 왔다. 오래 서 있는 것이 힘들었던 그는 부엌의 가스레인지 대신 휴대용 버너를 방에 두고 사용하면서 A양과 함께 식사하곤 했다.

소방은 A양이 이 버너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불이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A양의 아버지는 병원에서 신장 투석을 받고 있었다. 사실상 가장 역할을 해야 했던 어머니는 일하느라 연락도 받지 못했다. 그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집 근처 식당에서 일했다.

A양이 어머니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 A양의 어머니는 ″항상 밝고 애교도 많은 아이였다″며 ″평소 '우리 강아지, 내새끼'하고 부르면 와서 안겨 애교도 부리는 착한 아이였다″고 했다. A양 어머니 제공

A양은 지난해 9월 보건복지부의 ‘e아동행복지원사업’에 따라 위기아동관리 대상에 포함됐지만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다. 위기아동관리 대상이 되면, 읍·면·동 등 지방자치단체 직원이 직접 아동을 방문해 양육에 필요한 지원 제도를 찾아준다. A양의 아버지는 “전년도 기준 소득이 지원 범위에 해당하지 않아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했다. 부모 모두 A양을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 됐지만 국가 지원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던 셈이다.

A양의 가정 역시 복지 사각지대 위기 가구 대상에 올랐지만 지원은 받지 못했다. 복지부는 두 달마다 건강보험료 체납, 단전, 단수 등 39가지 위기 징후 지표를 확인해 이 중 3가지 이상에 해당할 경우 지자체에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도록 통보한다. 지난해 A양의 가정은 의료·주거 위기 세대로 분류됐고 다섯 차례 안내를 받았다. 실제로 A양의 집에는 전기·수도 요금 미납 고지서가 날아왔다. 하지만 이 역시 A양의 어머니가 일을 해 소득 기준을 초과하면서 금전적인 지원을 받진 못했다.

27일 발생한 화재로 타버린 A양의 집 모습. 사진 인천소방본부 제공

올해 5학년이 되면서 A양은 학교 돌봄 교실도 이용할 수 없었다. 교육부 등에 따르면, 초등학교 돌봄 교실은 학부모 수요와 학교 여건에 따라 1~4학년을 우선 수용하고, 5학년 이상은 추가로 받을 수 있을 경우 기존에 돌봄 교실을 이용했던 학생에 한해 신청할 수 있다. A양의 아버지는 “아이가 혼자 있어야 하는 것이 걱정돼 주민센터와 복지센터, 학교 등에 돌봄 관련 문의를 했지만 도와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인천서구청은 “주민센터에 공식적으로 문의가 들어온 기록은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돌봄 복지 사각지대 지적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은 18세 미만을 구분 없이 아동으로 규정한다”며 “나이와 상관없이 국가가 돌봄 등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정현 협성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득을 산정하는 기준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기초생활보호대상자보다 차상위계층 선정이 더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며 “복지 공백이 없도록 소득 산정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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