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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첫 번째 키스' 리뷰

영화 '첫 번째 키스'는 남편 카케루(마츠무라 호쿠토, 왼쪽)를 사고로 잃은 칸나(마츠 다카코)가 우연히 15년 전의 그와 다시 만나게 된 후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미디어캐슬
영화 '첫 번째 키스'(26일 개봉, 츠카하라 아유코 감독)는 결혼 생활에 위기를 맞은 중년 부부가 주인공인 타임슬립 로맨스다.
40대 직장인 스즈리 카케루(마츠무라 호쿠토)는 전철 선로 위에 추락한 아이를 구한 뒤 열차 사고로 죽음을 맞는다. "어차피 인생은 '째깍'하는 순간"이라는 씁쓸한 독백과 함께.

그는 의인으로 칭송받지만, 무대 디자이너인 아내 스즈리 칸나(마츠 다카코)에겐 타인을 위해 가족을 내팽개친 이기적인 남편일 뿐이다. 사고 전 둘의 관계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이혼 서류를 내기 직전이었다.
슬픔에 빠져 있을 틈도 없이 업무에 열중하던 칸나에게 어느 날 시간 여행의 문이 열린다. 늦은 밤 업무 때문에 운전하던 중 공사 중인 이상한 터널을 통과하자, 남편을 처음 만났던 15년 전의 출장지에 도착하게 된 것.

그 곳에서 자신과 만나기 전의 20대 청년 카케루를 만난 칸나는 15년 후 벌어질 그의 사고사를 막기로 결심한다. 남편을 만난 첫날의 8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만 반복할 수 있는 과거 속에서 칸나는 사고 당일 남편의 행적을 바꾸기 위해 온갖 묘수를 짜낸다. 과거의 언행이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정 하에 여러 가능성을 시험해 보지만, 미래의 남편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화 '첫 번째 키스'에서 사고로 남편을 잃은 칸나(마츠 다카코)는 우연히 시작된 시간여행 속에서 15년 전 20대 남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미래에 죽게 될 그를 살리기 위해 온갖 묘수를 짜낸다. 사진 미디어캐슬
고군분투하는 칸나의 마음 속에선 남편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중년 여성이 15년 전 젊은 남편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가슴 설레게 하는 둘 간의 애틋한 감정은 점점 악화돼가는 미래의 부부 관계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칸나는 15년 후 죽게 될 남편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파탄 직전이던 부부의 사랑은 되살아날 수 있을까?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2023)로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의 작품이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2021)에서 권태에 빠져 결국 헤어지는 커플의 아픔을 묘사했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파국으로 치닫는 중년 부부의 위기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사카모토 유지가 이번 작품에서 결혼을 소재로 삼은 이유는 뭘까. 그는 국내 매체들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원래 타인이었던 두 사람이 함께 산다는 형태가 인간 관계를 그려냄에 있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부부 문제는 보편적이면서, 쉽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의 말마따나 결혼이란 위태롭기 짝이 없는 제도다. 함께 살다 보면 '내 눈에 콩깍지'는 금세 벗겨지고, 연애 시절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상대방의 단점은 4K 화질처럼 선명하게 드러난다. 서로에 대한 오해와 무신경 속에 권태에 빠지기 쉬운 결혼 생활에 정답은 없다. 공감과 노력만이 결혼을 유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영화는 칸나의 반복되는 과거 여행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일깨워준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남편의 순수한 매력과 인간미에 다시금 매료된 칸나는 남편과의 거듭된 만남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 본다. 부부 관계가 틀어진 데는 자신의 잘못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칸나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인연을 끊어내려는 희생도 감수한다.

이처럼 칸나의 과거 여행은 자신의 상처 받은 내면을 치유하고 스스로 성장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카모토 유지의 섬세하면서도 유려한 스토리텔링이 삶의 씁쓸함과 달콤함, 행복과 불행 사이를 오가며 관객의 감성을 촉촉하게 적신다.

사카모토 유지는 "따뜻한 마음과 쓸쓸한 마음은 진자(振子)와 같아서 두 개 다 있는 것이 중요하다. 웃음과 눈물은 마음 속의 같은 장소에 있다. 똑같이 소중한 감정으로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인생의 가장 큰 불행은 죽음이나 이별 그 자체가 아니다. 한번 뿐인 인생에서 후회할 선택을 하고,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 15년 후 자신의 죽음을 알게 된 카케루의 선택을 통해 영화가 관객에 전하는 메시지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을 통해 후회 없이 현재를 살아가는 태도의 중요성을 설파한 영국 영화 '어바웃 타임'(2013)의 일본판 느낌이 나는 이유다.

마츠 다카코의 연기는 여전히 원숙하고, 마츠무라 호쿠토는 순수한 29세 청년과 삶에 찌든 44세 중년남을 능란하게 오간다. 권태기에 빠진 부부, 설렘의 감정이 점점 옅어져 가는 커플,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로 가슴 아파하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영화다.

영화 후반부에는 칸나가 남편이 쓴 편지를 읽는 장면이 나온다. 편지는 사카모토 유지가 영화에서 즐겨 쓰는 소품이다. 어쩌면 그 편지는 사카모토 유지가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부치는 '행복으로의 초대장'일지도 모르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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