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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대표 오락가락 우클릭 ‘1석3조’
“집권시 실천 않을 것” 진정성 의문
여당, 巨野 프레임 갇혀 李 때리기
선제적 이슈 제기해야 정치적 생존

[서울경제]

“본인 부고(訃告)가 아니라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자신과 관련된 기사들이 자주 나오는 게 좋다.” 정치권에서 종종 회자되는 얘기다. 인기를 먹고사는 정치인들에게는 언론 노출이 많을수록 좋다는 뜻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 달여 동안 ‘실용’ ‘성장’ 등을 외치며 우클릭을 시도하자 이 말이 다시 소환됐다.

좌우를 넘나드는 이 대표의 오락가락 화법은 눈길을 끌었으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연쇄적인 화두 선점으로 중도 외연 확장 등의 ‘1석 3조’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우선 ‘탈(脫)이념’ 주장을 반복함으로써 유연한 리더로 포장하고 ‘이재명 포비아(공포증)’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게 됐다. 연일 새로운 논쟁거리를 만들어 시선을 분산함으로써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덮는 역할도 했다. ‘중도 보수’ 깃발을 들고나와 전통적 보수인 국민의힘을 ‘극우’라고 공격할 수 있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 대표의 우회전 기점은 신년 기자회견이었다. 그는 지난달 23일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면서 ‘흑묘백묘론’을 꺼냈다. 계엄·탄핵 정국이 길어지면서 야당의 지지율이 주춤거리자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지난해 ‘먹사니즘(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외쳤던 이 대표는 이달 10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잘사니즘(모두 함께 잘사는 세상)’ 슬로건을 새로 꺼냈다. 그사이에 “민주당은 경제 중심 정당” “성장해야 분배가 있다” 등의 말도 했다.

이 대표가 최근 “민주당은 중도 보수 정당”이라며 당의 노선을 새롭게 규정하자 당 안팎에서 논란이 확산됐다. 우선 ‘말의 성찬’에도 진정성이 없어서 집권할 경우 실천을 보장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간 주도 성장’을 주장하는 게 진심이라면 경제 살리기 입법으로 실천해야 하는데 실제 행동은 반(反)기업법 강행으로 역주행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거대 야당은 ‘노란봉투법’ 등 반시장적 법안들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 대표는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의 주52시간 근로제 예외 적용을 시사하더니 결국 노동계의 반발을 의식해 없던 일로 만들어버렸다. 또 산업 현장을 찾아서 친기업 발언을 쏟아내고 노동계를 만나서는 노조 눈치 보기식 언급을 하니 믿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 대표가 지난 대선 당시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고 말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이 대표는 정치 용어의 혼란도 초래했다.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잣대는 경제, 외교안보, 정치, 사회 문화 등 여러 차원에서 거론된다. 경제 분야에서 보수는 ‘성장 우선’을, 진보는 ‘분배 우선’을 각각 강조한다. 외교안보에서는 미국에 우호적이고 북한·중국·러시아에 비판적이면 보수, 북중러에 우호적이고 미국에 비판적이면 진보로 분류된다. 민주당 등 야 6당은 윤석열 대통령 1차 탄핵소추 추진 당시 탄핵 사유에 대해 ‘가치 외교라는 미명하에 북한과 중국·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고집했다’고 주장했다. 북중러와의 협력을 중시하고 한미일 공조를 비판적으로 보는 발상은 ‘보수’와는 거리가 멀다.

이 대표는 말 바꾸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선제적으로 이슈를 던지며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정작 국정을 책임져야 할 집권당은 경제 활성화 등을 위한 비전과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제·안보 복합 위기가 증폭되고 있는데도 국민의힘은 계엄·탄핵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대 야당이 밀어붙이는 주52시간제, 연금 개혁, 상법 개정안, 상속세 완화 등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제동을 걸고 있을 뿐이다. 이러니 ‘반(反)이재명’만 외치면서 ‘이재명 때리기’만 하는 국민의힘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여당은 미국의 선거 전략가 조지 레이코프가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 민주당이 2004년 대선에서 패배한 것은 ‘코끼리’로 상징되는 공화당이 제기한 프레임과 이슈에 끌려갔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성장·안보·공정·통합 등 시대정신을 읽고 어젠다를 선제적으로 제기하는 세력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정당이나 리더가 ‘정치적 운명’을 끝내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새 브랜드와 질 좋은 상품을 내놓고 유권자들의 마음에 다가가야 한다. 그래야 ‘정치적 부고’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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