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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표-투자전략 연계성 입증 첫 논문
국민연금공단 전경. 김정효 기자

2022년 3월 카카오 주주총회. 임원 퇴직금과 관련된 안건을 두고 표 대결이 붙었다. 카카오는 앞으로 이사 퇴직 때 이사회 내 보상위원회의 결의만 있으면 임금 기반으로 산정한 퇴직금에 ‘특별공로금’까지 얹어주겠다고 했고, 국민연금은 “정당한 사유 없는 과도한 퇴직금 지급이 우려된다”며 반대했다. 지분율 7% 안팎이었던 국민연금의 반대는 최대주주인 김범수 창업자 쪽 표에 가로막혀 묵살됐다.

주목할 만한 변화는 다른 데서 나타났다. 2022년 한 해 동안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포트폴리오에서 카카오가 차지하는 비중은 2.36%에서 1.15%로 반토막 났다. 국민연금이 들고 있던 카카오 주식을 일부 팔고 카카오 주가도 덩달아 하락하면서 평가액이 크게 줄어든 결과다. 그 해 카카오 주가는 핵심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의 외면과 거시경제적 요인 등이 한 데 덮쳐 53% 폭락했다.

국민연금이 반대한 안건을 강행한 기업들에 이처럼 ‘조용한 경고’를 보내온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 안건의 부결률이 낮아 실질적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그간의 인식을 뒤집는 결과다. 국민연금의 투자 비중 축소는 해당 기업의 주가 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함의가 가볍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음달 주총을 앞둔 기업들의 행보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반대표 던진 뒤에 ‘투자 외면’…첫 실증분석

26일 조성욱 전 공정거래위원장(서울대 경영대 교수) 연구팀이 쓴 논문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와 투자전략’을 보면,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행사한 반대 의결권과 향후 국민연금의 자산 배분 양상 사이에 이런 연계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비금융회사가 2019~2023년 진행한 주주총회 1476건을 들여다본 결과다. 논문은 이달 말 국내 학술지 ‘금융정보연구’에 실린다.


연구진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포트폴리오에서 특정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에 어떤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지 점검했다. 국민연금이 어떤 기업의 투자금 할당 비중을 높이거나 낮추는지 본 것이다. 분석 결과 국민연금이 의안에 반대한 기업일수록, 그리고 국민연금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직전 연도에 클수록 해당 비중이 더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급이 높은 기업은 국민연금이 안건에 반대한 경우에도 비중 감소폭이 작은 것으로 확인됐다.

포트폴리오 내 특정 기업의 비중이 축소됐다는 것은 두 가지 가능성을 내포한다. 일단 국민연금이 추가로 생긴 투자 여력을 해당 기업에 할당하지 않아 생긴 결과일 수 있다. 아울러 해당 기업의 주가가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져 포트폴리오 내 평가액 비중이 줄었는데도 국민연금이 투자금을 재배분하지 않은 결과일 가능성도 있다. 국민연금은 주기적으로 투자자금의 종목별 할당 비중을 조정한다. 이때 ‘조용한 외면’을 했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의 반대표와 투자전략 간 연계성을 입증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뒤 지분율을 낮추는 경향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지적해왔다. 조 교수의 연구는 국민연금이 반드시 지분을 적극적으로 팔지 않더라도, 신규 투자금을 투입하지 않는 등의 방식으로 기업에 경고를 보내왔을 가능성이 처음 확인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국민연금 반대 묵살하면…주가 부진 가능성”

이번 연구는 국민연금의 기업 감시 기능이 제한적이라는 그간의 인식을 뒤집는 것이어서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국민연금은 2018년 주주가치 훼손에 적극 대응하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뒤에도 실질적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민연금이 반대한 안건이 실제로 부결되는 사례가 드문 탓이다. 실제로 국민연금 반대 안건의 부결률은 2020년 5.9%에서 2022년 1.9%까지 떨어지는 등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 교수의 연구는 국민연금의 기업 감시가 부결이 아닌 다른 경로로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국민연금의 움직임이 주가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약 6%를 차지하는 핵심 기관투자자다. 그간 여러 연구에서 국민연금의 투자 움직임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한 바 있다. 국민연금이 반대한 안건을 기업이 강행할 경우, 향후 국민연금이 투자 비중을 줄이면서 주가 부진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다음달 주총을 앞둔 기업들의 행보에 눈길이 쏠린다. 국민연금은 최근 수년간 주총에 제출된 안건 가운데 10% 이상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해왔다. 조 교수는 “(국민연금이 반대한 안건이 가결되는 경우) 경영진은 이에 안도하기보다 향후 기업가치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며 “기관투자자의 경영감시를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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