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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논설위원
‘지금도 어리둥절해 하시는 분들’ 중에 필자도 포함된다. 12·3 계엄 선포 때는 물론이고, 84일이 지나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69분짜리 최후진술을 들으면서도 어리둥절했으니까.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몇 시간 후 해제했을 때는 많은 분께서 이해하지 못하셨다. 지금도 어리둥절해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며 논리를 다졌다.

윤 대통령은 12·3 계엄이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고 개념지었다. 계엄 당일 “영화 ‘트루먼 쇼’ 같다”며 어이없어 한 시민 반응이 옳았다는 얘기다. 총 든 군인이 케이블타이까지 장착하고 국회를 장악하는 리얼리티 쇼였다고? 우리의 대통령이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킨 초대형 쇼의 PD였다니.

“계엄은 대국민 호소용” 개념 규정
리얼리티 쇼로 국회 짓밟았단 건가
‘민주적 정당성’ 박탈 여부 곧 결정

‘트루먼 쇼’에 나오는 크리스토프 감독이 섬마을에서 자란 트루먼 버뱅크의 30년 인생(부모와 아내까지 배우였다)을 꾸며낸 것과 같은, 전지적 작가 시점의 일을 벌였단 말인가. 수천만 명이 한 명을 속인 게 영화였고, 한 사람이 5000만 명을 속인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란 게 믿어지는가. 윤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계엄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소중한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불편을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그는 거대 야당과 내란 공작 세력들이 국민의 ‘계엄 트라우마’를 악용했다는 주장도 했다. 국민들이 왜 쇼를 알아채지 못하고 부정적 연상에 휘말렸느냐고 질타하는 듯하다. 이쯤 되면 우리가 짐 캐리(트루먼 역)에 버금가는 분노를 표출한 게 대통령의 연출력 덕분이라 생각해야 하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처단한다’는 포고령은 봉준호 감독급 디테일인가.

12·3 계엄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과 개념 규정은 한 편의 부조리극 같다. 환상과 몽상이 교차하는 현실, 맞는 건지 틀린 건지 모를 독백이 쏟아진다. 대통령이 응당 고민하고 정치로 풀었어야 할 일(외교와 안보, 예산과 경제 문제 등)에 줄줄이 야당 탓을 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리얼리티 쇼를 벌였으니 웃고 넘어가란 것인가. 윤 대통령에겐 “감사와 성찰의 시간”이었을지 모르지만, 트라우마가 까발려진 국민은 총 든 군인과 헬기 생각에 지금도 심장이 떨리고 자존감이 무너진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타락하고 오염된 반민주적·반헌법적 요설과 궤변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며 대통령의 파면을 주장했다.

보름쯤 뒤면 운명의 시간이다. 1988년 헌법재판소가 창립된 이후 37년간 세 번째 맞는 정치사적 장면이다. 지금까지는 쇼와 현실을 오가며 비유와 가정을 구사할 수 있었지만, 어느 쪽으로든 결정이 선고되면 ‘계엄 트루먼 쇼’는 막을 내리고 차갑고 엄중한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윤 대통령의 바람이 이뤄지려면 자기 변호인을 ‘계몽’시켰던 것처럼 헌재의 촘촘한 그물망을 통과해야 한다. 21년 전과 8년 전, 두 차례의 역사를 거치며 짜인 ‘대통령의 자격’이라는 그물망이다. 윤 대통령이 ‘민주화 운동의 산물’이라 칭한 직선제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로 위헌·위법한 행위가 있었는지, 그 행위가 국민의 신임을 배반했는지 등을 헌법재판관들이 판단하게 된다. 윤 대통령은 “민주적 정당성의 상징인 직선 대통령을 끌어내리려 한 거대 야당의 공작과 횡포가 국헌 문란”이라는 입장이다.

앞으로 헌재가 하게 될 고민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대통령 파면은 국민이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박탈하는 것이며 직무 수행의 단절로 인한 국가적 손실과 국정 공백, 국민의 분열과 반목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으로 이어질 정도로 중대하다. 파면을 정당화하는 사유도 이에 상응할 정도로 중대성을 갖는가.” “대통령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해 대통령 파면으로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큰가.” 중대한 결정과 승복의 시간이 다가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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