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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력 잃은 한국 해상풍력]
국내 업체들 도전하지만 인허가에 10년
인허가 과제 수행에 쓰는 돈만 '수천억 원'
국내 자본 조달 어려운 군소업체들 포기
사업권 팔아 탈출...그 자리를 외국계가
이런 외국계마저 "이젠 사업권 안 산다...
현재 프로젝트 상업 운전까지도 구만리"
그나마 운전 중인 '네 곳'은 정부가 주도
"속도 너무 더뎌 수익성 의심" 목소리도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 단지. 한국일보 자료사진


부동산 개발업체를 운영 중인 정동식(58)씨는 전남에서 2년 전까지만 해도 '해상풍력개발업체' 대표였다.
약 4년 전 '해상풍력 발전사업허가'까지 따냈지만 이후 이어지는 30여 개 인허가 단계에서 들어갈 돈을 국내 금융기관으로부터 조달하지 못해 사업을 접었다
. '풍력의 날(2월 27일)'을 하루 앞둔 26일 본보와 만난 정씨는 "크진 않아도 해상풍력단지를 만들어보려 했지만 인허가 과정에만 수백억 원이 필요해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개발업체에 발전사업허가권(사업권)을 넘겼다
"고 당시를 떠올렸다.

정씨는 자신의 상황을 두고 "그래도 운이 좋았다"고 자조했다.
2, 3년 전까지만 해도 작은 개발업체가 사업권을 따면 이걸 중견 개발업체나 외국계 에너지 기업들이 '웃돈(프리미엄)'을 얹어 사들이는 사업권 시장이 돌아갔다
.
정씨는 이런 시장의 덕을 본 경우
라는 거다.

이제는 이런 시장조차 돌아가지 않는다
고 한다.
외국계 기업들의 사업권 매입도 사실상 멈췄다
. 정씨는 "
사업권을 산다 해도 실제 국내에서 해상풍력단지를 조성하기까지 구만리
"라며 "이런 현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개발업체들은 웃돈을 줘가며 사업권을 사지 않고 외국계 기업들도 한국 해상풍력시장을 불안하게 바라보기 시작
했다"고 했다. 그는 끝으로 "
국내 개발업체들이 해상풍력단지 개발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경로는 현재로서는 없다
"고 잘라 말했다.

외국계 기업마저 물음표 단 한국 해상풍력 시장

게티이미지뱅크


한동안 국내 해상풍력개발 시장을 두고 '외국계 자본이 잠식했다'는 지적이 나올 만큼 해외의 영향력이 커졌지만 이런 외국계 자본도 한국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덩달아
국내 개발업체들의 설 땅은 좁아지고
있다.
사업허가권을 팔아 수익을 올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국내 금융기관의 도움으로 사업을 이어나갈 수도 없어 진퇴양난
에 빠졌다. 돈이 돌지 않고 사업은 속도를 내지 못하니 국내 해상풍력개발 시장이 활력을 잃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외국계 자본이 들어왔다는 결과만 돋보이게 할 게 아니라 해상풍력개발 시장이 선순환하기 위해 외국계 자본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현실론도 나온다. 일부 업계 관계자는
왜 국내 개발업체들이 나가떨어졌는지 정확한 원인을 찾고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고 목소리를 높인다.

30개 인허가 통과하는데 10년...쓰는 돈 최대 2,000억 원

해상풍력발전 개발 프로세스. 그래픽=김대훈 기자


해상풍력개발은 ①초기 개발 ②개별 인허가 ③건설 ④운영 네 단계로
나뉜다. 초기 개발 단계에서는 풍량 계측기를 1, 2년 동안 운영해 해상풍력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따져본다. 이를 바탕으로 기본적 인허가인 '발전사업허가'를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받아낸다.

②단계에서는 세부 인허가가 줄을 잇는다. △개발행위 허가(지방자치단체, 해양수산부) △해역이용협의(해수부) △환경영향평가(환경부) △군사작전 영향평가(국방부) △항로 및 항만 영향평가(해수부, 해양경찰청) △전력 계통 연계 허가(한국전력, 전력거래소) △건설 인허가(지자체, 해수부) 등
이다. 30개에 가까운 인허가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건설, 운영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주목할 건 '돈'이다. ①단계에서는 국내 군소 개발업체들이 어떻게든 자기자본으로 발전사업허가를 따지만 ②단계부터는 들어가는 돈의 규모가 달라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
풍량계측기를 설치하고 운영해 발전사업허가를 따는 데 10억~20억 원이 든다면 세부 인허가 단계로 들어가면 수백억 원부터 많게는 2,000억 원도 필요하다
"고 말했다. 그는 "관련 부처 및 기관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모두 충족하기 위한 조사, 설계, 엔지니어링 과제를 수행하는 데 길게는 10년도 걸린다"며 "이 사이 인건비, 시설, 용역 비용만 따져도 저 정도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굳게 닫힌 은행...1MW당 5,000만 원에 허가권 판 국내 업체들

국내 운영 중인 해상풍력발전단지 및 외국계 비중. 그래픽=박구원 기자


상당수 국내 개발업체들이 나가떨어지는 건 ②단계
다. 자기자본 규모가 크지 않으니 수많은 인허가를 통과하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서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쉽사리 대출 지갑을 열지 않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
작은 개발업체들은 대부분 해상풍력개발을 성공시킨 이력이 없다
"며 "
국내에서 해상풍력 인허가를 끝내기까지 상당히 오래 걸려 성공 경험도 없는 업체에 장기간 수백억 원, 수천억 원을 빌려줄 수 없다
"고 말했다.

결국 국내 개발업체들은 사업권을 따내는데 들어간 비용에 프리미엄을 얹어 팔고 빠지는 방법을 선택했다. 구역에 따라 가격은 달랐지만
최근까지 거래된 통상 가격은 1메가와트(MW)당 5,000만 원(비용+프리미엄)인 것으로 알려졌다
. 만약 발전사업허가 용량이 100MW면 50억 원에 사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시장이 형성되자 아예 사업권을 팔기 위해 초기 개발까지만 진행하는 업체들이 생겼고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외국계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 빠르게 진출하는 계기가 됐다.

그 결과
2024년 12월까지 발전사업허가를 받은 90개 해상풍력 사업 중에 48개를 외국계 기업이 차지하고 있고 전체 허가 설비용량 30.69기가와트(GW) 중에 외국계 비중이 19.41GW로 63%에 달하는 상황
이 연출됐다. 현재
한국 해상풍력시장에 나선 외국계 기업으로는 코리오 제너레이션(영국계), 오스테드(덴마크계), 에퀴노르(노르웨이계), 퍼시피코 에너지(미국계) 등
이 있다.

문제는
외국계 기업들도 현재 한국의 해상풍력발전 시장 상황을 보고 답답해한다는 점
이다.
넘어야 할 인허가가 많은 탓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도 실제 상업 운전에 들어간 외국계 기업은 아직 없다
. 그나마
상업 운전 중인 해상풍력단지도 △제주 탐라단지(30MW) △영광단지(34.5MW) △서남해실증단지(60MW) △제주 한림단지(100MW) 등 정부가 주도한 '네 곳' 뿐
이다. 한 외국계 에너지 기업 관계자는 "
한국이 해상풍력 잠재력이 큰 시장이긴 하지만 사업 진행 속도가 더뎌 수익성에 대한 의심이 생기고
있다"며 "최근 사업권을 사려는 외국계 기업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미 진출한 외국계 기업과 '윈윈'하는 모델 등장

게티이미지뱅크


이런 탓에
국내 해상풍력개발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시장에 들어온 외국계 기업과 적극적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는 현실론이 우선 제기
된다. 해상풍력발전 사업은 해상풍력단지를 완공한 뒤 20년 장기 공급 계약을 맺고 전력을 판매해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다. 다만
외국계 기업들은 해상풍력단지를 완공해도 20년 동안 운영할 여력이 모자란다
.
수시로 배를 타고 나가 발전소를 점검하고 개·보수를 해야 하는데 외국계 기업에는 장기간 관련 인력을 고용하고 운영하는 게 부담인 것
이다.

건설 이후 운영 단계에서 대주주 지분과 운영권을 국내 발전 공기업에 넘기는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부산 사하구 해상 일대의 96MW급 '다대포해상풍력단지'가 대표적이다.
해당 단지를 개발하고 있는 영국계 해상풍력개발기업 코리오는 완공 후 대주주와 운영 주체로 한국남부발전을 고려
하고 있다. 남부발전도 내부적으로 이를 검토하고 있다. 최우진 코리오 대표는 "이 모델이 성사되면 코리오는 소수주주가 된다"며 "
남부발전 같은 공기업이 국내 해상풍력단지를 운영하고 수익을 가져가면 외국계 기업과 한국 정부가 윈윈(Win-Win) 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제안했다.

2030년까지 풍력발전에 필요한 대출 자금만 '105조 원'

게티이미지뱅크


해상풍력업계에서는 국내 자본의 적극 투입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
한다. 과거 사업허가권을 따낸 국내 개발 업체들에 투자가 제때 이뤄졌다면 지금처럼 꽉 막힌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주장이다. 이상일 한국풍력에너지학회장(군산대 교수)은 "국내 자본이 꼭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지금까지 쉽게 꺼내지 못했던 문제"라며 "
어떤 기관이나 기업에도 위험을 감수하고 오랫동안 투자하라고 요구하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정책 자금으로라도 자본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
"라고 말했다.

앞으로 필요한 자금은 상당하다. 산업은행은
지난해부터 2030년까지 신재생발전 개발 업체들이 증설을 위해 금융기관에서 빌려야 할 자금 규모를 161조 원으로 예상
했다. 이 중
약 75%(105조 원)는 풍력발전이 차지
했다. 산업은행은 "특히 초장기 투자가 필요한 해상풍력 발전은 금융기관들이 대출에 소극적이어서 총 사업비 30% 수준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할 수 있는 모험 자본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이상일 회장은 "정부는 지난해 9조 원 규모의 미래에너지펀드를 만들었다"며 "이를 마중물로 내놓고 시중은행 등의 투자를 이끌어내겠다는 계획인데 정부 구상이 제대로 실천될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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