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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독립 언론기관이라고 주장하는 '아스트라' (ASTRA) 는 지난해 10월 텔레그램 채널에 북한군으로 보이는 군인들이 건물 외부에 서 있는 모습을 촬영해 게시했다. 아스트라 텔레그램 채널 캡처, 연합뉴스
북한이 올해 1~2월 사이 최대 3000여 명에 이르는 병력을 러시아에 추가 파병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에 이은 2차 대규모 파병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이 점령 중인 자국 영토 쿠르스크 탈환을 위해 대규모 병력을 쏟아붓는 이른바 '고기 분쇄기(meat grinder)'식 인해전술을 이어간다면 3차 파병 여부도 곧 결정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6일 관련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은 "올 1~2월 사이 1000~3000여명 규모의 북한군이 러시아 측의 화물선과 군용기 편으로 쿠르스크 전선에 신규 배치됐다"고 말했다. 한 소식통은 "지난해 1차 파병 때는 없었던 기계화 보병·공병·전자정찰 병과도 포함됐다"고도 전했다.

실제로 해당 기간 북한 전문 매체 등은 민간 상업 위성의 위성 사진 등을 근거로 북·러 간에 항공기와 선박이 오갔다고 보도했고, 정보당국 역시 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앞서 우크라이나 측은 북한군이 1월 중순부터 3주 정도 전선에서 사라졌다가 2월 7일쯤부터 다시 쿠르스크 전장에서 교전에 나섰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측이 병력 보충 등을 통해 전열을 가다듬은 뒤 이 때쯤 2차 파병 북한군을 전투에 투입했다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달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지역에서 북한 군인 2명을 생포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키이우로 이송됐으며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의 심문을 받았다. 사진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공개한 생포된 북한 군인. 젤렌스키 대통령 X 캡처, 뉴스1
우크라이나 국방부 정보총국(HUR)에 따르면 지난해 쿠르스크 전장에 배치된 북한군 1차 파병 병력의 규모는 약 1만 1000명이었고, 이 중 4000여 명이 숨지거나 다쳤다.(21일 HUR 대변인 언론 인터뷰) 통상적 군사교리(military doctrine) 상으로 전체 병력의 20~30%가 손실됐을 때는 더 이상 전투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북한 역시 병력 보충 없이 1차 파병 인력으로만 전투를 이어가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으로 2차 파병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종전 협상이 속도를 내면서 러시아 측의 요구 역시 커졌을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종전 협상이 타결되기 전 최대한 쿠르스크를 탈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추가 파병을 통해 종전 국면에서 '지분'을 늘리고, 러시아로부터 보다 큰 반대급부를 받아낼 수 있다고 봤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적잖은 규모의 병력 충원과 재편이 고작 3주 정도 만에 마무리됐다는 점에서 실제로 어느 정도의 파병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북·러는 지난해 1차 파병 당시에는 8월 초부터 준비를 시작해 10월 러시아 극동지역으로 북한군 병력을 수송한 뒤 현지에서 수 주 간 적응 훈련을 진행했다. 이후 11월부터 쿠르스크 전장에 북한군을 투입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런 최소한의 준비도 없이 바로 실전에 병력을 투입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정보원이 포착한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북한군의 모습. 국정원은 해당 북한군 추정 인물 사진을 자체 AI 안면인식 기술에 적용한 결과, 지난해 8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술미사일 생산공장을 방문했을 당시 김정은을 수행한 북한군 미사일 기술자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국정원 제공

이는 북한군의 전장 적응이나 러시아군과의 연합작전에 대한 이해도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실제 지난 7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쿠르스크 작전 지역에 다시 북한군을 배치했다"며 "러시아와 북한 군인 수백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또다른 대북 소식통은 "해당 발표 시점이 북한군 투입을 재개한 뒤 불과 며칠 뒤"라고 귀띔했다.

러시아는 이처럼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북한군을 진군을 위한 소모품처럼 활용하는 전술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번에 추가 파병부대를 꾸리면서 기계화 보병과 전자정찰군을 포함한 건 그간 사상자가 크게 발생한 개활지 기동전과 드론전에 각기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특화 병력을 보낸다 해도 러시아가 이들에게 현대전에 필요한 장비나 화력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고 계속 총알받이로 활용하는 이상 대규모 사상자 발생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북·러 양측 병력의 불협화음은 전장 안팎에서 지속적으로 포착되고 있다. 러시아군이 북한군을 조롱하는 영상은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고, 러시아 측이 자신들에게 충분한 포병 화력을 지원하지 않아서 피해가 커져 북한군이 불만을 품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16일 러시아 극동연해주 우수리스크 소재 군사시설에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400여명의 병력이 운집해 있는 모습. 국정원 제공
문제는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장병들의 희생에는 아랑곳 않고 '러시아의 선물'을 받는 데만 전념하고 있다는 점이다. 3차 파병도 곧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경제·군사적 반대급부를 얻기 위해 전황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소모전에 병력을 쏟아붓는 모습"이라며 "김정은이 3차 파병 결정서에 결재하는 날이 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김정은은 25일 군 초급 지휘관을 양성하는 군사교육기관을 찾아 현대전에 맞는 지휘 능력을 갖추고 실전 경험을 '우리식으로' 습득할 것을 지시했다. 러시아 파병을 통해 얻은 실전 경험을 군 교육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노동신문은 이날 김정은이 창설 80주년을 맞은 강건명칭종합군관학교를 방문했다고 전했다. 그는 "군사교육 전선은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영원한 군력 강화의 제1제대, 최전방"이라면서 "현대전장들에서 이루어지는 실전 경험들을 우리식으로 소화 습득하며 급속도로 선진화되는 무기와 전투기술 기재들에 정통하고 현대전에 상응한 지휘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동신문은 김정은 총비서가 지난 25일 강건명칭종합군관학교를 현지지도하고 "군사교육부문에서 군사실천 위주의 교육을 강화하고 모든 학생이 현대전장들에서 이루어지는 실전 경험들을 우리식으로 소화 습득하며 급속도로 선진화되는 무기와 전투기술 기재들에 정통하고 현대전에 상응한 지휘 능력을 갖춰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26일 보도했다. 뉴스1
김정은은 지난 24일 군 정치장교를 양성하는 김일성정치대학을 찾은 데 이어 연이틀 군사학교를 방문했다. 표면적으로는 해당 학교의 창설 80주년 기념하기 위한 공개활동이지만,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의 열악한 상황을 의식한 측면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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