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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창민 논설위원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심판은 기본적으로 정치재판이다. 국회와 대통령 간 권력 투쟁의 산물이다. 탄핵 사유가 객관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돼야 하고, 소추위원(검사 격)과 피청구인(피고인 격) 간 대결이라는 점에서는 형사재판의 모습을 띤다. 탄핵심판에 임하는 윤석열의 전략도 ‘투 트랙’이었다.

지난 25일 마지막 11차 변론에서 윤석열은 12·3 비상계엄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국회를 공격했다. 탄핵소추를 의결한 거대 야당 등을 적으로 규정하고, 간첩이 활개 치는 세상이라며 색깔론도 꺼냈다. 윤석열은 부상당한 군인들은 있었지만 일반 시민은 단 한 명의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치인 체포 시도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불법 압수수색, 언론사 단전·단수에도 사과나 반성은 일절 없었다. 적반하장 격으로 대통령 직무에 복귀하면 개헌과 정치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다분히 탄핵심판의 정치적 성격을 염두에 둔 전략적 발언이었다. 세력을 규합해 33.3% 이상 지지율을 만들어 헌재의 산술적인 탄핵 가결선(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 찬성)을 무너뜨리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앞서 진행된 10차례 변론은 형사재판처럼 진행됐다. 이 분야는 윤석열이 전문가다. 형사재판은 혐의 입증이 완벽해야 한다. 판사의 합리적 의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물증과 심증이 있어도 무죄가 선고된다. 참고인 진술 ‘아’와 ‘어’의 뉘앙스 차이가 유무죄를 가른다. 진술 조서가 어떤 상황에서 작성됐는지도 중요하다. 유능한 변호사는 이런 허점을 파고들어 사건을 원점으로 되돌린다.

윤석열은 암 투병 중인 조지호 경찰청장을 증인으로 신청해 지난 21일 헌재에 세웠다. 조 청장은 12·3 당시 윤석열이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라’고 총 6차례 지시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윤석열은 조 청장을 상대로 심문했다. 그러나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자 “섬망(의식 혼란 등 뇌기능 장애) 증세가 없었냐”고 모욕적인 질문까지 던졌다. 검찰 조서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조 청장을 ‘비정상’으로 몰아간 것이다.

지난 6일 변론에선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을 저격했다. 국회의원 끌어내라는 지시를 윤석열로부터 받았다고 밝힌 곽 전 사령관 진술이 ‘의원’에서 ‘인원’으로 달라진 부분을 물고 늘어졌다.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에게도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정치인 체포 명단 메모를 쓴 장소와 시간을 번복하고 보좌관에게 내용을 정서하게 한 경위 등을 집요하게 따졌다.

민사든, 형사든 재판은 여론의 향배가 중요하다. 이번 탄핵심판은 5000만명이 목격자이자 배심원으로 참가하는 국민참여재판이나 다름없다. 온 국민이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을 보며 걱정과 불안 속에 밤을 새웠다. 윤석열과 내란 사태의 공범들은 법원 영장이 발부돼 구속됐다. 탄핵심판의 전 과정은 실시간으로 언론에 중계됐다. 그런데도 윤석열은 혐의 자체를 전면 부인하고, 지엽적인 내용을 침소봉대해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했다. 막상 헌재가 구체적인 사실 확인을 위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이진우·여인형 전 사령관 등 관련자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증거로 채택한 것은 강하게 반발했다. 행정부 수반이나 군 통수권자로서의 위엄은 찾아볼 수 없고 ‘법 미꾸라지’ 그 자체였다.

윤석열에게 충성했던 부하는 반기를 들었다. 조 청장은 “섬망 증상이 있다거나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윤석열은 곽 전 사령관을 향해 ‘인원’이라는 말을 안 쓴다고 다그쳤지만, 8명의 헌법재판관 앞에서 ‘인원’이라는 말을 1분 새 3차례나 해 스스로 거짓말쟁이임을 증명했다. 홍 전 차장을 공격하기 위해 조태용 국정원장을 증인으로 부른 것도 작전 실패였다. 김건희 여사와 조 원장이 계엄 전날 문자를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김건희 계엄 관여설이 퍼졌다.

윤석열의 일거수일투족이 술자리 안줏거리가 된 지 오래다. 정치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그는 명예롭게 퇴직해 끼니마다 반주를 곁들이며 나름대로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민들은 최후진술에서 윤석열이 사과하고 당당하게 책임지는 모습을 기대했다. 최소한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발언은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윤석열은 민심과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헌법을 짓이겨 놓고 개헌 운운하며 대한민국을 능멸했다. 탄핵심판 변론이 끝나고 최종 선고만 남았다. 법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했지만 헌재 심판정에서도, 여론 법정에서도 윤석열은 완패했다. 헌재가 그를 구해줄 논리와 명분이 없다.

오창민 논설위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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