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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테크’가 100만명 환자에 손내민다 경제+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주인공 정다은(박보영)은 정신병동 간호사지만 우울증을 겪는 환자기도 하다. 다은은 우울증이 알려지면 사회생활이 어려워질까 두려워 병원에서 진단도 치료도 받지 않는다. 그러다 증상은 갈수록 심각해져 침대 밖을 나오기도 힘들어한다. 그런데 집에서도 우울증을 진단받을 수 있다면? 침만 뱉으면 AI가 인간 의사처럼 정확하게 우울증 여부를 알려주고, 집에서 전자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면? 현실의 수많은 ‘다은’들도 침대 밖에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국내 1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우울증 환자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우울 테크’의 현재와 미래를 짚었다.
◆당신의 우울을 아는 ‘사소한 것들’=의사 앞에서 솔직한 사람, 얼마나 될까. 문제는 고통을 숨기면 숨길수록 진단이 늦어져 치료는 더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우울 테크 스타트업이 먼저 주목한 페인 포인트(pain point·고객이 불편을 느끼는 지점)는 이 지점이다. 신체의 사소한 반응만 보고 우울증을 알아차리는 기술에 집중하는 것. 정신건강 스타트업 ‘마인즈에이아이’는 하루 네 번 침을 뱉으면 우울증인지 아닌지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용자가 마인즈에이아이에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4개의 타액 수집 용기를 택배로 보내준다. 취침 전과 후, 기상 후 30분, 1시간에 적정 용량의 침을 뱉고 다시 택배로 보내면 끝이다. 일주일 뒤 ‘정상, 관심, 경계, 위험’ 등 네 가지 우울증 세부 지표가 담긴 결과지를 받아볼 수 있다. 코르티솔은 주로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비량이 증가하는데, 우울증 환자들은 이 호르몬이 잘 분비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 회사 석정호(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대표는 “진단 정확도는 95% 이상이다”라며 “보통 학계에선 의사의 우울증 진단 정확도를 85% 정도로 보고 있는데, 이보다 높다”고 말했다. 현재 식약처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차준홍 기자
하루 24시간, 스마트워치를 착용하면 우울증을 예측할 수 있는 기술도 나왔다. KAIST 뇌인지과학과 김대욱 교수는 미국 미시간대 수학과 연구진과 협업해 스마트워치로 심박수와 활동량을 측정해 우울증을 진단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인간의 평균 일(24시간)주기 리듬(하루 동안의 신체 변화)과 생체시계를 비교해 얼마 정도 차이가 나는지 알려주는 식. 그 차이가 크면 우울증 증상을 경고하는 알람을 보낸다. 목소리로 우울증을 진단하는 기술도 막 개발을 시작했다. SKT는 지난해 9월부터 통화 음성과 영상 속 표정을 분석해 우울증 징후를 탐지하는 AI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아직은 개발 초기 단계라 진단 정확도 등 기술 완성도를 논하긴 어렵다. SKT 관계자는 “티맵에서도 음성 인식 기능을 사용하는 등 관련 기술은 충분히 연구해 왔다. 우울증 진단 등 근로자지원프로그램(EAP) 시장도 커지면서 뛰어들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기술이 마음도 치료할 수 있을까?=우울 테크의 영역은 우리 몸 곳곳의 신호를 포착해 진단하는 기술에서 아픈 마음을 치료하는 기술로 확장하고 있다. 우울증을 치료하려면 현재 두 가지 방법을 환자에게 맞게 처방한다. 항우울제 복용 등 약물치료와 인지행동교정 등 정신치료다. 가상현실(VR) 기기를 이용한 치료는 후자에 속한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가 창업한 메디트릭스는 VR 치료 기기 ‘마인드체어’를 개발했고 지난달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 안마의자처럼 생긴 의자에 앉아 VR 기기를 착용하면 실시간으로 심박수와 뇌파 등 생체 신호를 측정해 증상에 알맞은 VR 치료 영상을 볼 수 있다. 총 15분 길이 영상을 보면서 긴장과 불안, 우울감을 완화하는 훈련을 하는 식이다. 20년 넘게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전 교수는 “우울 장애를 겪는 환자의 기억과 감정을 좋은 기억으로 덮어 자연스럽게 망각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전자약’은 우울증 치료 ‘게임 체인저’로 불린다. 와이브레인이 개발한 전자약 마인드스팀은 우울증 환자 대다수가 전두엽 활동이 저하된다는 점에 착안했다. 헤어밴드를 착용하면 미세 전류를 두피에 흘려 우울증 증상을 완화한다. 국내 재택 임상 결과 6주 동안 마인드스팀을 매일 30분씩 사용할 때 우울증 관해율(증상이 감소된 비율)은 62.8%로 기존 항우울제의 관해율보다 12.8%포인트 높았다. 항우울제 복용 시 우려되는 위장 장애, 성 기능 장애 등 부작용도 피할 수 있다. 한국에선 아직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의약품 시장인 OTC(Over-the-Counter), 약사와 상담을 거쳐 조제할 수 있는 BTC(Behind-the-counter) 시장에 나오지 않아 생소하다. 하지만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 시장에선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이기원 와이브레인 대표는 “4년 전, 세계 최초 우울증 전자약 ‘마인드스팀’을 출시한 이후 올해 1월까지 14만 건 이상 처방했고, 삼성서울병원 등 상급종합병원 12곳을 포함해 149곳 병의원에서 처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울할수록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정신건강의학계 정설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비대면만 장점이던 챗봇이 AI를 만나 ‘사람처럼’ 대화가 가능해지면서다. 휴마트컴퍼니의 자연어처리(NLP) 기반 AI 챗봇 ‘티티’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 김동현 대표는 “2019년 국내 최초의 ‘멘털케어’ 챗봇으로 출시한 후 6년 동안 가장 많은 심리, 감정 데이터를 학습해 기초 상담도 가능할 정도로 성능을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티티는 딥러닝과 자연어처리 기술을 적용해 사람처럼 대화할 수 있다.

◆우울 테크가 성장하려면=우울 테크 성장의 걸림돌은 새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다. 업계에선 항우울제 복용 등 전통적 치료법과는 다른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거부감을 ‘디지털 순응도 문제’라 부른다. 환자뿐만 아니다. 디지털 치료제를 처방하는 의사들도 마찬가지. 아직 안전성에 대한 의심도 있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의사들은 치료 효과보다 치료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디지털 순응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시장 확장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환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 모델은 어떨까. 집에서 간편하게 우울증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다고 하면 조금만 우울해도 활용하지 않을까. 관련 법률상 직접 환자에게 판매해도 문제는 없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B2C 진출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이기원 대표는 “마인드스팀은 ‘내 손 안의 반창고’로 홍보할 만큼 재택 치료 용도에 맞게 개발했다. 하지만 전자약 치료에 대한 인식이 아직 보수적이라고 판단해 병원 시장부터 먼저 접근했다”고 말했다. 아직까진 환자들이 처음 사용하는 의료기기보다 의사들을 더 믿을 것이란 판단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그럼에도 정신건강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우울 테크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본다. 항우울제 부작용(소화, 성기능 장애)은 최소화하고, 인지행동치료보다 효과가 빠르다는 장점이 큰데다, 갈수록 우울증 환자 수도 늘고 있어서다.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최윤범 DHP 대표는 “우울증은 선진국형 질환이다. 숨어 있는 환자가 밖으로 나오든, 유병률이 높아지든 구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어 시장 자체는 계속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마켓어스(Market.us)에 따르면 AI 정신건강 시장 규모는 2023년 9억 2000만 달러에서 10년 뒤인 2033년엔 약 148억9000만 달러(약 21조6000억원) 규모로 16배 성장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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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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