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의 글로벌 파파고는?
파파고는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어로 앵무새라는 뜻입니다. 예리한 통찰과 풍부한 역사적 사례로 무장한 정의길 선임기자가 에스페란토어로 지저귀는 여러분의 앵무새가 되어 국제뉴스의 행간을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동시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재차 비판했다 (…)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주지사 회의에서 “푸틴과는 아주 좋은 대화를 나눴지만, 우크라이나와의 대화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협상에서 아무런 카드도 없으면서도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이 전쟁은 끔찍하다.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전쟁”이라고 주장했다.(한겨레 2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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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트럼프가 러시아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저렇게 우호적인 것은 뭐야?
A. 국가 정상 사이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국가 차원의 문제이지. 우선 역사를 살펴봐야겠네.
2차대전 뒤 국제 질서는 승전국인 미국과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의 양극 체제였어. 이 양극 체제는 1970년대 초 미국이 중국과 화해해 반소 미-중 협력체제를 구성하며 와해되기 시작했어.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국제질서는 미국의 일극 체제로 재편됐어. 하지만, 이 일극 체제는 2008년부터 균열이 시작됐어. 그해 8월 미국 일극 체제에서 계속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확장이 소련의 공화국이었던 조지아까지 확장되자, 이에 반발한 러시아가 조지아 전쟁을 감행했어. 당시 조지아 전쟁으로 ‘열강의 지정학적 대결 귀환’이라는 평가가 나왔어. 한달 뒤인 9월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로 미국 일극 체제에서 진행된 신자유주의 경제이념에 기초한 세계화가 타격을 받았어. 미국 일극 체제가 지정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균열이 생긴 거지.
이때부터 미-중 양강체제라는 지(G)2 시대가 거론됐어. 이때부터 미국은 중국과의 대결에 집중하고자, 중동에서 철수하고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려고 했지. 버락 오바마 정부의 ‘중동 수렁 탈출’과 ‘러시아 리셋’ 정책이고, ‘아시아태평양으로 귀환’ 혹은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 ‘리밸런싱’(재조정) 정책이지.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실패한 채 중국과의 대결에 본격적으로 들어갔어. 오바마에 이어 집권한 트럼프 역시 대중국 공급망 분리인 디커플링, 인도태평양 전략 채택으로 경제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대중 억제책을 강화했으나, 러시아와의 관계는 악화됐어. 트럼프는 집권 전부터 푸틴과 러시아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서,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으로 중국을 제압하는 이른바 ‘역키신저 전략’을 채택할 것이라고 추측됐지. 이번에 재집권한 트럼프가 1기 집권 때 못했던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우크라이나 종전을 고리로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우세해.
Q, 그런데, 트럼프는 왜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1기 집권 때는 못하고, 지금와서 밀어붙이는 거야?
A. 서방에서는 ‘러시아포비아’(러시아혐오증)라는 말이 있어. 땅도 넓고 인구도 많은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지. 유럽을 삼키려던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독일의 히틀러를 제압한 것도 러시아잖아. 전제적인 체제의 러시아가 자유롭고 민주적인 서방에 대한 위협이라는 것이 서유럽과 미국의 오랜 외교·안보적 사고야. 오바마 때부터 시작된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노력이 성과가 없던 근본적 이유야.
트럼프 1기 집권 때도 마찬가지야. 집권 전에 푸틴과 러시아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보였던 트럼프는 2018년 6월 헬싱키에서 푸틴과 첫 양자회담을 하고서, 러시아가 2016년 미국 대선 때 개입하지 않았다는 푸틴의 말을 믿는다고 말했어. 미국 정보 및 사법당국은 트럼프가 당선된 2016년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했다는 결론을 냈는데, 트럼프는 푸틴의 말을 더 신뢰한다고 한 거지. 미국에서 여당인 공화당 내에서조차 큰 비난이 일었어. 트럼프는 하루도 안 돼 자신의 발언을 얼버무리고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쪽으로 나갔어.
특히, 트럼프는 자신이 푸틴에게 발목이 잡히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이, 러시아와 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오바마 행정부 때에도 금지했던 견착용 미사일인 재블린 미사일 등 공격용 무기 제공을 결정했어. 이는 당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분쟁인 돈바스 내전을 격화시키는 중대한 요인이 되며,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어졌지. 이런 점에서, 트럼프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야.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러시아에 강경 대처해야 한다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안보보좌관 등 워싱턴 기존 외교·안보 세력 및 네오콘들이 포진하고 있었지. 트럼프는 이번 2기 집권에서 이런 워싱턴의 기성 외교·안보 인력들을 배제하는 외교 안보팀을 구성하고는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밀어붙이는 거지.
Q. 트럼프가 애초에는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를 제공했다니 흥미롭네. 트럼프의 개인적 이유 등 더 얽힌 사정은 없는 거야?
A. 우크라이나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악연도 있겠지. 트럼프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전국위를 해킹한 쪽은 러시아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서버라는 주장을 믿고 있었다고 하네. 트럼프 쪽은 2019년 대통령에 당선된 젤렌스키에게 우크라이나의 미 대선 개입과 조 바이든의 아들 헌터가 우크라이나 로비로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을 수사하라고 압박했어. 트럼프는 젤렌스키와 통화에서 이를 조건으로 한 미국의 지원을 밝혔어. 이 통화 때문에 트럼프는 의회에서 민주당이 주도한 탄핵 심판을 받는 곤욕을 치렀어.
젤렌스키도 지난해 미국 대선 막바지 때 미국을 방문해 격전지인 펜실베이니아를 찾은 것도 트럼프 쪽의 격분을 샀어.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지한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 쪽에 유리한 행보를 했다는 거지.
Q. 트럼프가 개인적으로도 러시아와 푸틴에게 우호적인 것도 있는 것이 아닌가?
A. 트럼프는 부동산 사업을 하던 1987년에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개혁개방을 추진한 러시아를 방문하고서 사업 기회뿐만 아니라 호감정을 가졌다 하네. 트럼프는 소련 붕괴 뒤에도 러시아의 정경유착 재벌들인 올리가르히들과 관계를 증진했고, 자신의 팜비치 부동산을 그들에게 팔기도 했어. 트럼프는 소련 붕괴 뒤 혼란을 수습한 푸틴의 강력한 지도력과 권력을 평소 칭찬하고 부러워했지.
푸틴에 대한 트럼프의 이런 개인적 우호에 더해 현 국제 질서에 대한 비슷한 견해가 양자의 브로맨스를 만든 것 같아. 트럼프는 미국이 이제 동맹보다는 자신의 국익에 충실해야 한다는 입장이잖아. 취임을 전후해 트럼프는 미국이 오지랖 넓게 전 세계 문제에 관여하기보다는 미국과 그 주변을 단단히 챙기자는 입장이야.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의 미국령화, 캐나다는 51번째 미국 주라는 주장들이 그거지. 열강들은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력권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지정학의 전통적 세력권 이론이지. 푸틴이 나토의 확장이나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반대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감행한 것도 같은 논리야. 우크라이나 등이 러시아의 세력권이니 서방은 인정하라는 거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트럼프의 미국은 러시아의 세력권을 인정해줄 테니, 미국의 대중국 경쟁에서 러시아가 중국 편을 들지 말라는 거지. 이런 기본적인 계산에 기반을 둔 트럼프와 푸틴의 브로맨스가 과연 결실을 볼지 두고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