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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곤 편집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가장 큰 논란은 말이 자주 바뀐다는 점이다. 종종 행동이 말을 따라가지 못한다. 본인은 억울하겠지만, ‘거짓말을 잘한다’ ‘믿을 수 없다’는 치명적 이미지가 각인됐다. 그는 맨땅에서 잡초처럼 버티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머리가 좋고 순발력이 뛰어나다. 절묘한 언변으로 위기를 모면한 경우가 많았던 듯하다. 그런 생존 방식이 몸에 뱄다. 성공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여길지 모르겠다. 진실하지 않으면 좋은 머리를 잘못 쓰는 것이다.

2심이 진행 중인 선거법 위반 사건의 핵심도 ‘거짓말을 했느냐’ 여부다.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습관처럼 하는 바람에 발목이 잡혔다. 이 대표는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해 “전 세계에서 한국만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틀린 말이다. 영국·일본도 관련 처벌 규정이 있다. 이쯤 되면 말할 때마다 팩트체크를 해봐야 할 판이다. 야당에 별다른 경쟁자가 없는데도 이 대표 지지율이 30% 언저리에 묶여 있는 원인이기도 하다. ‘정권 교체’를 원하는 응답(53%, 지난주 한국갤럽)과 큰 차이가 있다. 진보 진영에선 별종이다. 탐탁지 않은 시선이 적지 않다. “그동안 지은 죄가 크다. 워낙 신뢰를 잃어 비호감이 큰 정치인이다.”(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중도층 겨냥 정략적 계산의 우클릭
양다리 걸쳤다가 ‘말 바꾸기’ 반복
연일 논의 무성, 실제 되는 건 없어
지금 필요한 건 신뢰, 회복할지 의문

이 대표는 박스권 지지율을 돌파하기 위해 정책의 ‘우클릭’을 택했다. 계엄 사태 이후 덩치가 커진 중도층을 겨냥했다. 극우·극좌의 무분별한 행태에 실망한 많은 이가 중도에 머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클릭은 현명한 선택이다. 그는 “경제를 살리는 데 이념이 무슨 소용이며 민생을 살리는 데 색깔이 무슨 의미인가”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탈이념, 탈진영의 현실적 실용주의’는 매력적인 카드다. 잘만 하면 경쟁자들이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대표 스스로 절호의 기회를 차버리고 있다. 기존 정책을 포기하지 않은 채 우클릭하는 바람에 뒤죽박죽이 됐다. 지난달만 해도 “지금은 나누는 문제보다 만들어 가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며 기본소득을 재검토할 뜻을 내비쳤다. 얼마 후 “신문명이 불러올 사회적 위기를 기본사회로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본사회를 다시 꺼내든 것이다. 국회 대표연설 42분간 성장을 29번 외쳤다. “기업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한편에선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노란봉투법, 줄소송을 초래하는 상법 개정안 같은 반기업 법안을 밀어붙였다. 반도체 주 52시간제를 완화할 듯하다가 느닷없이 유턴했다. 전 국민 지원금은 소비쿠폰으로 이름만 바꿔 추가경정예산에 끼워 넣었다. 어느 쪽이 본심인가.

우클릭 이후 혼선이 커지고, 실제 되는 건 없다. 진정성 없이 정략적 계산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대선에 도움이 되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식이다. 기업 앞에선 기업 편, 노조 앞에선 노조 편을 든다. 연일 말을 쏟아낸다. 지지층이 반발하면 별 설명 없이 거둬들인다. 지나치게 가볍고 진폭이 크다. 책임은 지지 않는다. 하도 자주 바뀌어 현안별로 가장 최근 입장이 뭔지 헷갈릴 정도다. 국민은 피곤하다. 이건 유연한 게 아니다. 실용주의도 아니다. 외연을 넓히기보다 ‘말 바꾸기 이미지’만 굳힌 꼴이다.

우클릭 과정에서 대통령 놀이하듯 은행장을 집합시키고, 대기업 CEO를 불러 모은다. 완장 차고 시혜를 베풀 듯 한다. 이럴 때 주변에서 조언을 잘해야 하는데, 기대하기 어렵다. 친명계 정치인은 아부하기에 바쁘다. 성남시장 때부터 인연을 맺은 지역 공무원과 학자들 머릿속은 기본소득, 민생지원금, 지역화폐로 꽉 차 있다. 나라 전체를 조망하며 이끌 정도의 국정 철학과 경험, 통찰력을 갖춘 일류 집단은 아닌 것 같다.

안팎에서 비난이 일자 이 대표는 “우클릭했다고 저를 자꾸 모는데, 우클릭하지 않았다. 원래 제 자리에 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매번 놀랍다. 우클릭이라고 의미를 부여해 열심히 보도한 언론만 바보가 됐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국민만 바보가 됐다. 그는 “민주당은 원래 중도보수”라고 말해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여당을 극우로 몰고, 중도를 차지하려는 발언이다. 속이 훤히 보인다. 당의 정체성을 대표 마음대로 바꾸는 건 선을 넘었다. 굳이 말하고 싶다면 ‘나는 원래 중도보수’라고 해야 했다. 그 말도 믿기지 않지만.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 결론을 내는 순간 모든 게 멈춘다. 어떻게 결론 나든 대립과 혼란이 극심해질 것이다. 어떤 합의도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부터 헌재 심판까지 짧은 기간이 그나마 개혁의 골든타임이다. 칼자루를 쥔 이 대표가 결심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적지 않다. 연금, 주 52시간제, 상속세…. 개헌에 대해 그는 “논란이 생기면 좋아할 집단이 있다”고 말했다. 당위성은 제쳐두고, 유불리만 따져선 안 된다. 새 비전으로 함께 잘사는 ‘잘사니즘’을 제시했다. 억지스러운 구호는 감동을 주지 않는다. 필요한 건 진솔하고 일관된 메시지다. 단시일 내에 신뢰와 안정감을 회복할지 모르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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