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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그룹. 연합뉴스


자질 부족으로 나쁜 성과를 낸 직원이라면 이듬해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거나 연봉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는 게 상식이다. 이 상식은 ‘K-기업’에선 다르게 적용된다. 총수 중심의 소유경영 시스템에서 이사회는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지배주주인 총수일가는 주가 부진에도 지배력과 보수 모두 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가 추락에 ‘참다못한’ 소액 주주들이 잇따라 문제를 제기하면서 총수의 보수가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선 미국 유럽 등 선진 증시처럼 보수와 성과가 연동되는 보수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액 주주와 전문가들은 총수 견제를 위해 보수를 주주가 심의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7년간 주가 80% 추락했지만···총수 연봉은 그대로

최근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는 이마트와 롯데쇼핑을 대상으로 정관에 주주총회에서 임원의 보수를 심의하도록 하는 보수심의제를 담은 주주 제안을 발송했다. 주가가 추락하고 경영실적이 좋지 않았음에도 총수 일가가 막대한 연봉을 받으면서 주가 저평가에 일조한 만큼 실적과 보수를 연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마트 주가는 지난 2018년 2월 주당 31만원을 넘기기도 했으나 이후 7년간 가파른 내리막을 걸었다. 지난해 6월 말엔 주당 5만5500원까지 내려가며 역대 최저 종가를 기록했다. 이 기간 낙폭은 82.7%에 달했다. 약 9조원에 육박했던 시가총액은 1조원 후반까지 떨어졌다. 그나마 올해 들어선 실적 기대감이 커지면서 주가가 급반등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마트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18배로 코스피 상장사 중 최저 수준에 머물 정도로 주식 가치가 추락했다.

주가엔 외부적인 요인도 작용하지만, 이마트의 경우엔 그동안 온라인 쇼핑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규모 인수합병 등의 부진한 성과가 주가 하락에 일조했다. 연결기준 영업이익도 2021년부터 점차 감소해 지난 2023년엔 469억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등 영업환경도 좋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마트 미등기임원인 총수일가는 매년 일정한 수준의 보수를 챙겼다. 정용진 신세계 회장과 정 회장의 직계가족인 이명희 신세계 총괄회장,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이 수령한 보수는 2020년 약 88억원, 2021년 약 105억, 2022년 100억, 2023년 약 98억원으로 100억원 안팎을 유지했다. 대대적 구조조정에 착수한 지난해엔 반기 기준 약 35억원으로 그나마 보수 규모가 줄었지만, 미등기임원으로서 경영상 의사결정에 따른 법적 책임도 지지 않는 총수일가가 경영·주가 부진에도 막대한 보수를 챙긴 것이다.

롯데월드타워. 롯데물산 제공


롯데쇼핑도 마찬가지다. 롯데쇼핑의 주가도 2018년부터 본격적인 내리막을 걸으며 주가가 이후 80% 가량 추락했다. 그렇지만, 미등기임원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등기임원보다 많은 매년 15억원이 넘는 보수를 꾸준히 받았다.

주주의 자금을 받아 운영하는 주식회사의 실질적인 경영진으로서 주가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보수 수준은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주주들이 견제할 방법도 없다. 통상 기업들은 정관에서 이사의 보수 총액 한도만 정한다. 주주가 자세한 보수 산정 기준을 알기 어려울뿐더러, 미등기임원의 경우 보수 한도도 정관에 포함되지 않는다. 소액주주들은 무력하게 주가가 떨어지는 것을 바라만 봐야 한다.

주가 오른 만큼 연봉을 받거나 주주의 동의를 받거나

미국 등 외국 기업은 한국과는 정반대의 보수 체계를 갖추고 있다. 기본적으로 성과 보상체계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은 최고경영자(CEO)의 연봉을 주가와 연동하거나 고정급 없이 주식이나 스톡옵션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 성과와 보수가 연동된 만큼 주가를 올릴 유인이 충분한 것이다. 또, 임원의 보수와 산정기준을 투명하게 공시하도록 해 보수가 성과대비 과도한 것이 아닌지 투자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성과 대비 과도한 보상을 챙기면 주주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유럽연합(EU)에선 이사 보수를 주총에서 심의하도록 하는 ‘세이온페이(say-on-pay·보수심의제)’가 의무화된 상태다. 세부적인 시행방식은 국가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보수 수준과 보수정책을 주총 표결에 부쳐 보수안이 주주들의 심의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이마트, 롯데쇼핑 등에 대해 소액주주들도 오는 정기주총에서 세이온페이를 정관에 반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실적과 보상을 연계하고 보상 과정을 명확하게 공시해 주주들의 견제를 받도록 하고 보상안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한 자본시장전문가는 “상법 개정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어려운 만큼 기업이 자율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정관에 세이온페이 도입이 필요하다”며 “총수가 여러 계열사에서 복수로 임금을 받는 CJ, 롯데, 현대차그룹 등에 대해서도 세이온페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 갈무리


일각에서는 총수일가를 견제하기 위해선 보다 구속력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경영진에 소프트한 압력을 주는 세이온페이는 전문경영인에겐 작동이 되지만 한국처럼 총수가 ‘버티기’에 나서면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소수주주 다수결(MoM) 제도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지배주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주들 과반이 동의해야 총수의 보수안이 승인되는 제도다. 실제로 한국처럼 기업의 소유집중이 강한 이스라엘은 세이온페이 대신 상법 개정을 통해 총수의 보수안에 MoM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박 교수는 “이스라엘에선 MoM 제도로 총수 일가가 과도하게 보수를 올렸던 것이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실증연구도 보고됐다”며 “총수의 보수, 겸직 보상, 퇴직금 문제 등에 대해 소수주주의 동의를 받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한국 실정에 맞는 제도”라고 조언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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