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황보연의 초고령사회의 질문들]
⑦ 내 집에서 늙어갈 순 없을까 (하)

전북 고창 노인복지주택 가보니
간호사 연결 응급벨·동작 감지기
고창타워 내 휴게공간에서 입주민이 신문을 보고 있다. 황보연 기자

노년기의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다. 잠을 자고 식사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생활의 대부분이 이뤄지기도 한다. 취미·관심사가 비슷한 이들과 교류를 하는 곳이자, 돌봄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도 있어야 한다. 2023년 기준 고령인구 대비 시니어 레지던스 세대 비중이 미국과 일본은 각각 4.8%와 2.0%이지만 우리는 0.12%로 저조하다. 우리는 아직 노후를 보낼 주거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것이다. 소득 수준과 돌봄 필요도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집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응급벨을 누르면 24시간 상주하는 간호팀과 연결이 된다는 점이 든든했어요.”

박은애(가명·71)씨는 캐나다에서 30년간 살다가 지난해 1월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로 ‘역이민’을 왔다. 고창타워는 흔히 ‘실버타운’으로 불리는 노인복지주택이다. 지난달 14일 오후, 고창타워에서 만난 그는 또래보다 건강한 모습이었다. 인근 요양병원에서 자원봉사를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아직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가 응급벨부터 거론한 점이 의아했다. 은애씨는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니냐”고 했다. 우문현답이었다.

전북 고창군 고창읍에 자리한 고창타워는 2017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현재 517세대(47~109㎡)가 입주해 있다. 인근에 온천과 자연휴양림, 골프장, 찜질방, 황톳길, 병원 등이 한데 모여 있다. 단기 임대로 미리 실버타운을 체험하는 ‘은퇴자 마을’도 조성되는 중이었다.

고창타워 인근에는 은퇴자 마을이 조성되고 있다. 단기간 머무르며 실버타운을 체험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황보연 기자

은애씨의 집 내부를 함께 둘러봤다. 그가 말한 응급벨은 화장실과 안방 벽면에 부착돼 있었다. 간단한 처치로 안 될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간호팀이 병원 이송을 돕는다. 준종합병원이 아파트 정문에서 차도만 건너면 되는 거리에 있었다. 천장에 달린 동작 감지 센서도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집 안에 들어와 카드키를 꽂아둔 상태에서 3시간 이상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관리팀에서 연락이 온다”고 했다.

집 안에는 휠체어 사용이 가능하도록 단차(높낮이)를 없앴다. 화장실엔 미끄럼 방지 바닥재가 사용됐다. 변기 옆에는 안전손잡이가 설치돼 있었고 샤워부스 안에는 안전의자가 보였다. 나이가 들수록 집에서 다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고려된 설계였다.

지난 1월14일 박은애씨가 고창타워 내 입주민 전용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황보연 기자

실버타운 입주 자격은 60살 이상 건강한 고령자

실버타운은 민간 사업자가 공급하는 주택이지만 노인복지법상 주거시설이다. 그래서 입주 자격 요건을 따진다. 부부 중 한명이 60살 이상이고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어야 한다. 주로 식사와 가사 지원, 운동 및 건강 관리 등의 서비스가 제공된다. 고령자복지주택(공공임대)이 돌봄을 필요로 하는 저소득층 중심인 데 비해, 실버타운은 비교적 건강 상태가 양호한 중산층 이상 가구가 대상이다.

재가요양서비스는 노인복지법에 의거해 설치된 재가노인복지시설 기준임. 2023 노인장기요양보험통계 연보에 따르면 2만2097곳.

간호사·간호조무사 5~6명이 교대근무를 한다는 간호팀 사무실로 가봤다. 벽면 한쪽의 책장에는 입주민 이름과 동·호수가 적힌 건강 관리 파일이 빼곡히 꽂혀 있다. 간호사는 좀 전에 다녀간 입주민에 대한 간호일지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그는 “하루 최소 10여건 응급벨이 울린다”고 했다.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져 있는 내부 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일자별 기록을 볼 수 있었다. 혈압과 체온 측정부터 각종 예방접종, 골절 부상에 따른 진료 안내 등으로 다양했다. 수술을 위해 병원을 알아보고 있다거나 치매 인지검사를 실시했다는 등 입주민과 나눈 대화 내용도 정리돼 있었다. 김은미 고창타워 본부장은 “입주민의 병력이나 건강 상태를 사전에 파악하고 있으면 응급 시에도 대처가 용이하다”고 했다.

박은애씨와 함께 둘러본 집안 내부 구조.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화장실의 안전손잡이, 현관 부근의 카드키 꽂는 곳, 안방의 응급벨, 부엌 천장의 동작감지 센서. 황보연 기자

입주민들은 동호회 활동과 재능기부 등을 통해 서로 교류하는 시간이 많다. 커뮤니티센터 게시판에는 바둑과 포켓볼, 라인댄스 등 32개 동호회의 활동 시간표와 각종 프로그램 참여자를 모집하는 공지문이 걸려 있었다. 서예교실에서 만난 김아무개(63)씨는 경북 구미에 살다가 지난해 10월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은퇴한 지 7년 정도 됐는데 삶에 변화를 주고 싶어” 실버타운을 찾았다. 이웃과의 교류는 그에게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지난 1월14일 김아무개(63)씨 부부가 고창타워 커뮤니티센터 내 서예교실에서 붓글씨를 써내려가고 있다. 황보연 기자

지역과 시설에 따라 실버타운 생활비는 천차만별이다. 고창타워는 얼마나 들까? 은애씨 부부가 사는 전용면적 92㎡(27평. 임대형 전세보증금 2억원대)의 경우, 기본 관리비는 월 32만원이다. 여기에다 부부가 하루 한끼 의무식(30식)을 먹는 비용(2인 54만원)과 전기·가스 등 공과금을 더하면 매달 100만원 정도가 든다. 다른 지역 실버타운 거주 경험이 있는 김아무개(83)씨 부부는 이곳으로 온 이유를 “가성비 때문”이라고 했다. 수도권 고가 실버타운에 견주면 3분의 1 수준이라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선호도가 낮은 ‘하루 세끼 의무식’(90식)을 책정하지 않았고 수영장처럼 입주민 모두가 이용하는 것은 아닌데 운영비가 많이 드는 시설을 줄여 관리비 단가를 낮췄다”고 했다.

지난 1월14일, 전북 고창군 고창읍에 있는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 입주민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고창/황보연 기자

공급 부족·비싼 관리비로 중산층 접근 제약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독립적 일상생활이 가능한 노인 가운데 ‘거주 환경이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고 싶다는 비중은 8.1%, ‘식사, 생활 편의 서비스가 제공되는 노인전용주택’으로 이사하고 싶다는 이들은 4.7%였다. 조사 시점의 전체 노인 973만명 중 약 125만명(12.8%)이 노후를 보내기 적합한 곳으로 이사할 의향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공급 물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실버타운은 전국적으로 40곳(9006세대, 2023년 말 기준)뿐이다. 일반적으로 주택은 수요와 공급 간 시차가 5~7년 이상 걸린다. 정부는 최근에야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2015년 불법 전매에 따른 투기 논란으로 분양형이 폐지되면서 공급이 정체된 측면도 있다. 고창타워 내 상담실에는 이날도 멀리서 찾아온 부부가 보였다. 강원도 원주에서 왔다는 60대 부부는 “당장은 빈집이 없어 일단 체험용 주거 시설(힐링카운티)에 머무를 생각”이라고 했다.

중산층 접근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도 한계다. 정부는 실버타운 보증금은 2억~10억원, 월 관리비는 230만~460만원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다. 고창타워의 경우, 의료기관을 모기업으로 하는 본사가 1998년부터 실버타운을 운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관리비를 어느 정도 낮췄지만 보편적인 사례로 보긴 어렵다. 종전까지는 민간에만 맡겨두면서 정확한 실태 파악이나 관리비 책정 근거 등에 대한 관리·감독도 없었다. 유애정 국민건강보험공단 통합지원정책개발센터장은 “아직 고소득층 중심이고 중산층으로 확장되고 있지 않다”며 “연금으로 생활비를 부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선택이 가능해야 한다”고 했다. 향후 노인 가구의 국민연금 수령액 등을 고려해, 불필요한 건축 비용을 줄이고 적정한 가격대를 맞춰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중산층 대상의 ‘실버스테이’ 도입으로 돌파구를 찾을 방침이다. 민간 건설사에 공공택지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해 관리비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다만 아직은 경기도 구리 갈매역세권 한곳(300세대 이상)만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정부는 또 인구감소지역(89곳)에 한정해 분양형을 다시 허용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주서령 경희대 교수(주거환경학)는 “노인들이 살던 곳에 계속 머무르고 싶어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수도권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도심 내 적정 부지를 확보하도록 지원하고 재건축이나 신도시 공급에서도 고령자 주택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만일 관리비가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되더라도 연금소득이 넉넉지 않은 노인에겐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 주 교수는 “일본에선 노인이 ‘이주·주거 지원기구’(JTI)에 집을 위탁하면 임차 수익을 돌려주고, 그 돈으로 노인전용주택 생활비를 충당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며 “이 경우 우리의 주택연금과 달리 주택을 자녀에게 상속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집을 처분하고 싶어 하지 않는 노인들까지 고려해 다각도로 자산 유동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다.

실버타운 거주→웰다잉으로 연결돼야

은애씨 부부는 고창타워를 ‘생의 마지막 터전’으로 최종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앞으로 20년 이상 살 곳을 정하는 것이어서 신중하고 싶다는 것이다. 고창타워 입주민의 평균 연령은 약 75살이다. 입주할 때는 건강한 상태로 들어왔지만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돌봄 수요가 많아질 수 있다. 실버타운은 거동이 불편해지는 때가 오더라도 살기 적합한 곳일까?

고창타워 바로 건너편에는 준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이 있다. 황보연 기자

관련법상 실버타운 입주 뒤 장기요양 등급을 받으면 퇴소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다만 업체에 따라 제각각이라 계속 거주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주기적으로 입주민에 대한 건강 평가를 해서 ‘부적격 판정’이 나면 재계약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곳들이 있다. 또 건강한 노인만 받으려고 입주 상한 연령을 종전보다 낮추기도 한다. 독립적 일상생활이 가능한 ‘타워동’과 24시간 전문 간호를 받아야 하는 ‘요양센터’, 그리고 중간 단계인 ‘프리미엄 세대’를 두루 갖춘 곳(삼성노블카운티)도 있지만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김정근 강남대 교수(실버산업학)는 “우리는 실버타운에서 임종을 맞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거주하던 실버타운에서 웰다잉으로까지 연결되려면 지역사회 의료·돌봄 서비스가 적극 연계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리의 실버타운과 유사한 점이 많은 일본의 서비스 제공형 고령자주택은 입주자의 돌봄 필요도에 따라 일반형과 개호형으로 구분돼 있다. 개호형은 상대적으로 돌봄이 좀더 필요한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며, 치매노인도 입주가 가능하다. 실버타운이 노년기의 집으로 매력적 선택지가 되려면 ‘계속거주’가 신규 물량 공급 이상으로 중요한 과제인 셈이다.

김아무개(83)씨 부부가 지난 1월14일 점심식사를 마치고 주변을 산책하고 있다. 황보연 기자

(☞⑥내 집에서 늙어갈 순 없을까 (상) 보러가기)

(☞초고령사회의 질문들 연재 구독하기)

황보연의 ‘초고령사회의 질문들’은?

지난 연말 우리는 65살 이상 노인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로 들어섰습니다. 한때 폭발적 인구 증가가 걱정거리였던 나라가 지금은 빠르게, 그것도 전속력으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인구 국가비상사태’의 본질은 인구 감소보다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동에 있습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초고령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 사회에 던져진 질문을 격주로 하나씩 톺아봅니다.

한겨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6951 민주당, '명태균 특검법' 단독 처리...與 "대선용 악법" 반발 new 랭크뉴스 2025.02.24
46950 경찰, 김성훈·이광우 구속영장 세차례 기각에 ‘영장심의’ 신청 new 랭크뉴스 2025.02.24
46949 박성재 법무장관 “국회 탄핵 소추권 남용이 대통령 계엄 선포 원인” new 랭크뉴스 2025.02.24
46948 ‘삐끼삐끼 송’ 대박 났는데… 원곡자 토니안, 저작권 수입은 26만원 new 랭크뉴스 2025.02.24
46947 탄핵 심판 '불복' 선동 최고조‥"한강이 피로 물드는 내전 분위기 돼야" new 랭크뉴스 2025.02.24
46946 "물가 싸고 맛있는 것 많아서"…혐오 딛고 잘나가는 '이 나라' new 랭크뉴스 2025.02.24
46945 카카오, 직원들에 성과급으로 연봉 최대 8% 이상 지급 new 랭크뉴스 2025.02.24
46944 도 넘는 위협에 경찰 '갑호비상령' 추진‥난동 모의글 60건 수사 new 랭크뉴스 2025.02.24
46943 김부겸, 이재명 만나 “韓 사실상 내전 상태… 국민 대통합 비전 필요” new 랭크뉴스 2025.02.24
46942 '윤석열 참수' 적힌 모형칼 들고 미소…김병주 민주당 최고위원 논란 new 랭크뉴스 2025.02.24
46941 이재명 "다주택자 못 막아... 세금만 열심히 내면 된다" new 랭크뉴스 2025.02.24
46940 ‘이재명 상속세 개편안’ 국힘 강세지역 아파트 55만채 수혜 new 랭크뉴스 2025.02.24
46939 [단독] ‘토스 대리’+‘코빗 과장’ 사칭까지…더 독해진 신종 보이스피싱 new 랭크뉴스 2025.02.24
46938 김부겸 “정서적 내전 상태…대통합 이뤄야” 이재명 “저도 책임 있다” new 랭크뉴스 2025.02.24
46937 ‘이재명 상속세 개편안’ 국힘 강세지역 아파트 55만세대 수혜 new 랭크뉴스 2025.02.24
46936 "이혼하자고? 열받네"…'스타 강사' 남편, 아내가 휘두른 양주병에 사망 new 랭크뉴스 2025.02.24
46935 인천서 1t 트럭·사설 구급차 충돌…2명 병원 이송 new 랭크뉴스 2025.02.24
46934 “인생이 사기” 국힘, 선 넘는 ‘이재명 때리기’가 중도공략책? new 랭크뉴스 2025.02.24
46933 학생들이 먼저 "등록금 더 낼게요"…확 바뀐 이 대학 무슨 일이 new 랭크뉴스 2025.02.24
46932 신축 대단지 물량 폭탄에 전셋값 뚝뚝…서울 '이곳' 어디 new 랭크뉴스 2025.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