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전주]■ 2011년, 전북 ㅇㅇ교회
고등학교 1년이던 이수연(가명) 씨는 집 근처 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학생회 간부를 맡을 정도로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당시 김상철(가명) 씨는 교회 선생님이었습니다. 대학 졸업반이었던 그는, 목사와 인척인 데다 주위 평판도 좋았습니다. 수연 씨는 학교생활이나 집안 사정 등 각종 상담을 했고 교리 공부도 함께 하며 김 씨와 가까워졌습니다. 그럴수록 수연 씨는 김 씨에게 의지하게 됐습니다. 수연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상처나 이런 걸 많이 물어봐 주고 자기와 비슷하다고 말하면서 정서적 유대감을 많이 형성했던 거 같아요."
어느 날, 김 씨는 수연 씨에게 '사귀자'고 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수연 씨는, 이후 1년 가까이, 여러 차례에 걸쳐 7살 차이가 나는 김 씨와 성관계를 맺고 영상 촬영까지 해야 했다고 주장합니다. 수연 씨는 김 씨가 "교제를 제안하면서도 선생님과 제자 간 교제 사실이 알려지면 교회 내에서 큰일이 나니 숨겨야 한다"고 말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수연 씨는 두렵고 불쾌한 감정을 느껴 간접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호소합니다. 그럴 때면 김 씨는 꼭 "네가 특별해서, 사랑해서 그렇다"고 수연 씨를 달랬다는 겁니다. 당시 수연 씨의 일기장에는 "난 정말 수치스럽고 하기 싫었는데, 선생님이 계속 이상한 걸 요구했다"고 쓰여있습니다.
수연 씨는 성적 수치심과 함께 버려졌다는 감정까지 느껴 자살 시도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김 씨의 행위가 범죄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선생님이라는 생각에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당시를 기억합니다. 결국 수연 씨는 인근 학교로 도망치듯 전학을 갔고, "수연 씨가 김 씨에게 집착해 자살 시도를 했다"는 소문이 돌며 교회도 그만둬야 했습니다. 사건 발생 1년이 지난 후에야, 수연 씨는 부모님에게 겪은 일을 털어놨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경찰서를 찾았지만, 심리적 부담과 압박에 신고를 포기하고 돌아왔습니다.
■ 수사기관은 '혐의없음' 처분
수연 씨는 성인이 된 뒤, 10년이 다 된 지난해가 되어서야 용기를 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아동 청소년 성보호법 상 위계 등 간음 혐의는 수사 과정에서 공소 시효가 만료됐습니다. 경찰과 검찰 모두 불법 촬영 혐의에 대해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혐의없음 처분했습니다.
경찰은 불송치 사유로 ①피의자와 고소인이 연인 사이였고 ②교회 학생회 선생님이던 피의자가 높은 지위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없으며 ③고소인이 제출한 일기장, 병원 의무기록, 피의자가 작성한 사과문 등에 범행 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고 ④사건 발생 당시 고소인은 고등학생으로 성관계 영상 등을 촬영하는 의미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들었습니다.
수연 씨는 경찰의 불송치 처분에 대해 이의신청과 항고를 했지만, 검찰은 이를 기각했습니다. 또, 검찰 결정에 대해 그루밍 성범죄의 특성과 피의자의 위력을 간과하였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지난해 10월, 수사기관의 결정에 불복해 법원에 재정신청을 했지만, 아직 결과를 받아보지 못한 상황입니다.
취재진은 수연 씨 주장과 관련한 반론을 듣고자 김 씨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입장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오프라인 그루밍 직접적 규제 없어"
일부 전문가는 해당 사안을 전형적인 그루밍 성범죄라고 말합니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전형적으로 '그루밍'이라고 볼 수 있고, (수사기관이) 피해자의 맥락에서 보기보다는 가해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봤다고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법률적인 한계도 있습니다. 2021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온라인 그루밍'에 대한 처벌 근거가 마련됐지만, '오프라인 그루밍'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는 없습니다. 영국이나 호주 등 일부 국가에서 '그루밍'이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해 관련 범죄를 정의하고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오프라인 상에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그루밍 범죄는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루밍 범죄는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발생해 온라인에 한정된 그루밍 범죄 처벌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경찰청의 ‘아동·청소년 성폭력 범죄 피해자 현황’에 따르면, 20세 이하 피해자는 2020년 5만 6079명, 2022년 7만 2001명, 2023년 6만 7943명으로 꾸준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수연 씨는 지금 성인이지만, 그루밍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할 당시는 법률 상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운 미성년자였습니다. 수연 씨는, 다시 용기를 내 제기한 재정신청에 대해 노심초사하며 법원이 앞으로 어떤 답을 내놓을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
그루밍 성범죄의 특성 및 처벌 (윤정숙)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그루밍(Grooming, 길들이기) 판례분석 (한숙희, 정희진, 조아미)
아동·청소년 성범죄에서 그루밍(Grooming)의 특성 및 대응방안 연구(윤정숙,이태헌,김현숙)
고등학교 1년이던 이수연(가명) 씨는 집 근처 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학생회 간부를 맡을 정도로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당시 김상철(가명) 씨는 교회 선생님이었습니다. 대학 졸업반이었던 그는, 목사와 인척인 데다 주위 평판도 좋았습니다. 수연 씨는 학교생활이나 집안 사정 등 각종 상담을 했고 교리 공부도 함께 하며 김 씨와 가까워졌습니다. 그럴수록 수연 씨는 김 씨에게 의지하게 됐습니다. 수연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상처나 이런 걸 많이 물어봐 주고 자기와 비슷하다고 말하면서 정서적 유대감을 많이 형성했던 거 같아요."
어느 날, 김 씨는 수연 씨에게 '사귀자'고 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수연 씨는, 이후 1년 가까이, 여러 차례에 걸쳐 7살 차이가 나는 김 씨와 성관계를 맺고 영상 촬영까지 해야 했다고 주장합니다. 수연 씨는 김 씨가 "교제를 제안하면서도 선생님과 제자 간 교제 사실이 알려지면 교회 내에서 큰일이 나니 숨겨야 한다"고 말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수연 씨는 두렵고 불쾌한 감정을 느껴 간접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호소합니다. 그럴 때면 김 씨는 꼭 "네가 특별해서, 사랑해서 그렇다"고 수연 씨를 달랬다는 겁니다. 당시 수연 씨의 일기장에는 "난 정말 수치스럽고 하기 싫었는데, 선생님이 계속 이상한 걸 요구했다"고 쓰여있습니다.
사건 당시, 수연 씨가 쓴 일기장 일부.
수연 씨는 성적 수치심과 함께 버려졌다는 감정까지 느껴 자살 시도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김 씨의 행위가 범죄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선생님이라는 생각에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당시를 기억합니다. 결국 수연 씨는 인근 학교로 도망치듯 전학을 갔고, "수연 씨가 김 씨에게 집착해 자살 시도를 했다"는 소문이 돌며 교회도 그만둬야 했습니다. 사건 발생 1년이 지난 후에야, 수연 씨는 부모님에게 겪은 일을 털어놨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경찰서를 찾았지만, 심리적 부담과 압박에 신고를 포기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루밍(Grooming) 성범죄'란? 피해자를 정서적으로 지배해서, 피해자가 피고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심리를 이용해 저지르는 성범죄. 그루밍 성범죄는 피해자가 행위의 부적절성을 늦게 인지하는 경우가 많아, 지속 기간을 길게 만드는 특성이 있다. *참고 기사 ‘그루밍’ 성범죄 신고…공소시효로 기소 어려워 (2024.10) 10살 여아 ‘온라인 그루밍’에 무죄 주장…가해자 상고이유서 보니 (2024.9) 13년간 의붓딸 성폭행 50대 남성 구속 기소…“그루밍 성범죄” (2023.11) 당하긴 쉽고, 회복은 어려운 그루밍…내 아이는 안전한가? [창+] (2024.3) |
■ 수사기관은 '혐의없음' 처분
수연 씨는 성인이 된 뒤, 10년이 다 된 지난해가 되어서야 용기를 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아동 청소년 성보호법 상 위계 등 간음 혐의는 수사 과정에서 공소 시효가 만료됐습니다. 경찰과 검찰 모두 불법 촬영 혐의에 대해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혐의없음 처분했습니다.
경찰은 불송치 사유로 ①피의자와 고소인이 연인 사이였고 ②교회 학생회 선생님이던 피의자가 높은 지위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없으며 ③고소인이 제출한 일기장, 병원 의무기록, 피의자가 작성한 사과문 등에 범행 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고 ④사건 발생 당시 고소인은 고등학생으로 성관계 영상 등을 촬영하는 의미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들었습니다.
수연 씨는 경찰의 불송치 처분에 대해 이의신청과 항고를 했지만, 검찰은 이를 기각했습니다. 또, 검찰 결정에 대해 그루밍 성범죄의 특성과 피의자의 위력을 간과하였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지난해 10월, 수사기관의 결정에 불복해 법원에 재정신청을 했지만, 아직 결과를 받아보지 못한 상황입니다.
취재진은 수연 씨 주장과 관련한 반론을 듣고자 김 씨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입장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수연(가명) 씨가 KBS와 인터뷰 하는 모습.
■"오프라인 그루밍 직접적 규제 없어"
일부 전문가는 해당 사안을 전형적인 그루밍 성범죄라고 말합니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전형적으로 '그루밍'이라고 볼 수 있고, (수사기관이) 피해자의 맥락에서 보기보다는 가해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봤다고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법률적인 한계도 있습니다. 2021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온라인 그루밍'에 대한 처벌 근거가 마련됐지만, '오프라인 그루밍'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는 없습니다. 영국이나 호주 등 일부 국가에서 '그루밍'이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해 관련 범죄를 정의하고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오프라인 상에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그루밍 범죄는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루밍 범죄는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발생해 온라인에 한정된 그루밍 범죄 처벌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경찰청의 ‘아동·청소년 성폭력 범죄 피해자 현황’에 따르면, 20세 이하 피해자는 2020년 5만 6079명, 2022년 7만 2001명, 2023년 6만 7943명으로 꾸준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수연 씨는 지금 성인이지만, 그루밍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할 당시는 법률 상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운 미성년자였습니다. 수연 씨는, 다시 용기를 내 제기한 재정신청에 대해 노심초사하며 법원이 앞으로 어떤 답을 내놓을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
그루밍 성범죄의 특성 및 처벌 (윤정숙)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그루밍(Grooming, 길들이기) 판례분석 (한숙희, 정희진, 조아미)
아동·청소년 성범죄에서 그루밍(Grooming)의 특성 및 대응방안 연구(윤정숙,이태헌,김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