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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AI대학원 10곳에 GPU 물어보니
"엔비디아 H100 보유" 확답은 1곳뿐
연차순 배정받고 한번 쓰면 차례 밀려
"국가AI컴퓨팅센터? 대학 지원 줄일라
AI대학원 졸업생 잡을 세심한 정책을"

편집자주

딥시크는 중국 인공지능(AI) 굴기의 신호탄일 뿐입니다. 중국이 과감한 투자와 인재 확보로 다져진 AI 기술을 세계 무대에 본격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일보는 ‘깊고 넓게’ 뻗어가는 중국 AI 기술의 진면목을 뜯어봤습니다.
대학원생이 연구실에서 인공지능(AI) 플랫폼을 이용해 연구하고 있는 모습을 생성형 AI가 그린 그림. 미드저니·이재명 기자


지난해 연세대 인공지능(AI)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에 진학한 A씨는 학부 때 배운 카메라 사물 인식을 확장한 대규모언어모델(LLM)을 연구하고 싶었다. 사람처럼 실시간으로 주변을 인식하고 판단을 내리는 AI를 개발하는 데 필수인 기술이라서다. 하지만 연구를 시작도 못 했다. LLM 구현에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학교에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젊은 교수가 이끄는 신생 연구실이라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는 엄두도 못 냈고, A씨는 가정이나 PC방 게임 컴퓨터용 GPU를 달랑 8장 받았다. "연구 규모를 확 줄이고 주제도 덜 유망한 쪽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A씨는 "AI 분야 진학을 마음먹었을 땐 세계 진출을 꿈꿨는데, 너무 허망하다"고 하소연했다.

중국이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하며 AI 패권을 독차지해온 미국을 위협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AI 인재 양성의 허브인 AI대학원마저 인프라가 크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일보가 이달 7일부터 약 2주간 국내 주요 AI 대학원 10곳에 GPU 보유 현황을 문의한 결과, 엔비디아의 최신 GPU인 H100을 보유하고 있다고 확답을 보내온 곳은 고려대(2장)가 유일했다. 보유 현황 파악조차 안 된 대학도 여럿이었다. 중국 이공계 학생들이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것과 달리 한국 학생들은 원하는 AI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어느 학교, 어느 연구실에 갖춰져 있는지도 알기 힘든 게 현실이다.

GPU 배정에 암묵적 룰까지 설왕설래



한국일보가 AI대학원의 GPU 보유 현황을 문의한 대학은 고려대와 광주과기원(GIST),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울산과기원(UNIST), 중앙대, 포스텍,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한양대의 10곳이다. 모두 석·박사급 AI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정부가 2019년부터 최대 10년간 연평균 20억 원을 지원하는 AI대학원 사업에 선정된 학교들이다. 그런데도 AI 연구 인프라가 충분하지 못하다.

서울 시내 한 AI대학원에서 자연어 처리를 공부하는 B씨는 지난해 운 좋게도 H100 여러 장을 배정받았다. 학교에 H100이 모자라 연구실이 자체적으로 외부에서 대여해온 것이다. H100을 이용해 쓴 B씨의 논문은 저명한 국제학회에서 게재 승인을 받았다. 해외 학계에서 성과를 인정받은 B씨는 후속 연구를 곧바로 이어가려 했지만, 올해는 H100 배정 기회를 다른 학생에게 양보해야 했다. 워낙 GPU가 귀하다 보니 대학원생들 사이에 △한 번 쓴 사람은 또 못 쓰고 △연차순으로 쓰고 △큰 연구실이 많이 가져가는 식의 암묵적인 '배정 룰'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표 이공계 대학 카이스트는 AI대학원이 아닌 반도체 대학원에서 GPU를 8장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연구 수요엔 턱없이 못 미쳐, 많은 학생이 게임용 PC에 쓰이는 GPU를 나눠 사용하고 있다. 서울대, 연세대, 중앙대, 한양대는 집계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인재 양성에 필요한 인프라 관리도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익명을 요구한 한 AI대학원 교수는 "국제학회 수상 등 성과를 비교하면 중국이나 미국에 한국 AI 인재들 실력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며 "부족한 건 GPU 인프라라고 수년 전부터 건의했지만, 사실상 교수가 알아서 능력껏 확보하도록 방치돼 왔다"고 지적했다. 주경돈 UNIST AI대학원 교수는 "갈수록 고성능 연구가 많아져 연구과제 수주 비용 중 대부분을 GPU 매입에 쓰고 있다"고 말했다. 딥시크 쇼크에 놀란 정부가 GPU를 1만 장 넘게 확보해 연내에 국가AI컴퓨팅센터를 열겠다고 했지만, 학계의 걱정은 가시지 않는다. "센터 추진을 핑계로 오히려 대학 지원을 줄일까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광주 오룡동에 있는 국가AI데이터센터 내부 전산실.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활용한 슈퍼컴퓨터가 설치돼 있다. NHN 제공


중국 딥시크는 AI 모델 개발을 위해 2019년부터 엔비디아 GPU 5만 개를 모았다고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올해 AI 관련 예산으로 1,917억 위안(약 39조 원)을 배정해 미국보다 뛰어난 자체 AI 칩 개발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글로벌 AI 인덱스 기준 인프라 영역 국가 순위에서 중국은 미국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한국은 싱가포르, 대만, 일본에 이은 6위였다.

국내 AI대학원을 졸업한 학생들 대다수는 미국 유학이나 빅테크 취업을 추진한다. 국가 차원에서 육성한 인력이 해외로 떠나는 것이다. 이재성 중앙대 소프트웨어대학 AI학과 교수는 "AI 생태계가 커질수록 박사급 고급 인재는 물론, 산업을 이끌 다양한 전문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 폭넓은 인재 양성 전략이 절실하다"며 "국내에 실질적인 일자리를 보장하면서 심리적 자부심까지 채울 수 있는 세밀한 정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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