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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반 고흐, 카라바조. 알 만한 이름들입니다. 카라바조가 조금 낯설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3대 화가로 꼽히는 유명 화가입니다.

이들로 인해 지난겨울은 기대감으로 시작됐습니다. 이 위대한 화가들의 전시회가 서울에서 동시에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클림트와 고흐, 카라바조가 동시에 서울에 오다니…’라는 생각만으로도 약간의 떨림이 있었습니다.

유럽에 가면 한 작품, 한 작품을 보기 위해 도시를 옮겨 다녀야 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 그림들. 이를 한 도시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서울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수조원어치에 달하는 그림을 보유한 박물관과 미술관이 아무 도시에나 그림을 전시하도록 내주지는 않습니다.

그 즈음 나가본 명동 거리. 관광객들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한국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관심받는 도시가 된 서울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전성기 때 홍콩의 느낌이랄까.

그 풍요로울 것 같았던 겨울은 작년 12월 3일 밤,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습니다. 시대착오적이며 여당도 국무위원들도 대부분 반대한 계엄령이 터졌습니다. 이후 대통령은 조사도 거부하고 총 든 경호원을 앞세워 구인을 막았습니다. 국민들은 이를 생중계로 봐야했습니다. 현재 대통령은 내란수괴 혐의를 받고 형사 법정과 탄핵심판대에 서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제성장률 추락에 대한 경고는 이어졌고, 계엄령 이후 자영업자들은 소리도 내보지 못하고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또 한국 경제의 심장과 같은 삼성전자의 부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계속됐습니다. 10년을 끌어온 재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검찰은 ‘소모적 상고’로 맞섰습니다.

이 풍파에 작은 위안도 있었습니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는 지금도 넷플릭스 세계 차트를 휩쓸며 K컬처의 위세가 여전함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번 겨울 열린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와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쇼트트랙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김길리라는 새로운 스타를 내놓았습니다. 얼마 전 스위스에서는 발레리노 박윤재 군이 한국 남성으로는 처음 로잔발레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낭보도 전해졌습니다.

문득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클림트의 화려한 황금빛 2차원 평면, 28세에 생을 마감한 에곤 실레의 극심한 불안과 뒤틀림, 반 고흐의 격정 그리고 카라바조의 극단적인 빛과 어둠의 대비.’ 한국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는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 세계가 서울의 분위기와 묘하게 오버랩된 겨울이었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혼돈 속에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4년 만에 돌아온 미국의 트럼프는 온갖 행정명령을 동원해 미국과 세계를 흔들고 있습니다. 연방 공무원 수십만 명을 30분 만에 해고하고, 덴마크의 그린란드와 파나마운하를 소유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겠다며 영원한 식민지가 되라는 수준의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트뤼도 총리가 불신임 직전에 사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유럽의 두 축인 독일과 프랑스도 정치적 불안정에 휩싸였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하원의 불신임으로 사실상 붕괴됐습니다. 독일에서는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의회 불신임으로 해산됐습니다. 한국만 혼돈 속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위안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선진국에서는 군인들이 총 들고 국회에 난입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예술적 영감, 극도의 정치적 혼돈, 침체와 작은 희망 속에 그로테스크한 겨울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올봄에는 정치적 혼돈이 정리되고 새로운 질서가 시작되길 기대해 봅니다. 경기회복과 함께 말이지요.

한경비즈니스는 이번 주 한국 주식시장에 대해 다뤘습니다. 올 들어 분위기가 좋아진 주식시장이 3월에도 봄바람을 계속 탔으면 좋겠습니다.

봄에는 문화생활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여전히 반 고흐, 클림트, 카라바조, 에곤 실레의 그림은 서울에 머물러 있습니다. 떠나기 전에 한번 둘러보면 어떨까 합니다. 여기에 봄 분위기에 어울릴 것 같은 인상파 전시회도 열리고 있습니다. 근대와 현대 미술을 잇는 가교가 된 인상파의 아버지 모네와 미국 인상파들의 작품입니다. 바쁜 일상과 정치적 논쟁에서 잠깐 벗어나 거장들의 숨결을 느끼며 봄을 맞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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