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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 마지막 진료 뒤 수술까지 한달 넘어
전공의 의존 심하던 상급병원서 더 심각

전공의·전문의 등 팀 이뤄 수술 사라지며
기존만 유지하고 신규 환자는 안받는 곳도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한 인턴을 대상으로 3월 수련을 시작하는 올해 상반기 인턴 모집이 시작됐다. 사진은 4일 오전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로 전공의(인턴·레지던트)가 정부의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에 반발해 집단 사직서를 내던진 지 1년이 됐다. 정부는 의대 증원 필요성으로서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내세웠다. 하지만 1년 넘는 의-정 갈등으로 의료전달체계가 더 부실해진 것은 물론 의사 배출마저도 불투명하다. 3회에 걸쳐 ‘의대 증원, 그 후 1년’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③ 불어나는 환자 피해

ㄱ씨는 지난해 11월 이른바 ‘빅5’ 병원(삼성서울·서울대·서울성모·서울아산·세브란스) 가운데 한곳에서 폐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은 10개월 뒤인 올해 9월로 예정됐다. 다른 병원을 수소문해도 전공의 공백으로 수술 예약을 새로 받지 않거나, 수술까지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는 “암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폐암·췌장암·식도암 등의 수술은 일부 상급병원에서만 가능한데, 지금은 수술이 1년 가까이 밀려 있는 경우가 흔하다”며 “그사이 암이 커질까 봐 환자는 공포에 떤다”고 호소했다.


검사 다 받고도 한달 넘게 기다려 수술


23일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암 수술 소요 일수 자료를 보면, 의-정 갈등이 시작된 지난해 2월부터 10월까지 전국 상급종합병원에서 폐암 환자가 마지막 진료를 받고 수술 받기까지 걸린 평균 시간은 27.5일이었다. 전년 동기(19.6일)보다 40.3% 늘어난 수치다. 자궁경부암 대기 일수는 같은 기간 14.0일에서 22.5일로 60.7% 길어졌고, 위암은 16.2일에서 21.7일로 34.0% 늘었다.

환자들의 기다림은 의-정 갈등이 장기화될수록 길어졌다. 폐암 환자의 마지막 내원 후 평균 수술 대기 기간은 지난해 2월엔 17.9일이었지만 10월 29.6일로 증가했다. 자궁경부암 대기 기간도 지난해 2월 13.9일에서 10월 24.1일로 73.4% 늘었고, 유방암은 이 기간 9.7일에서 18.0일로 2배 가까이 길어졌다.

특히 전공의 의존도가 높던 대형병원일수록 환자들은 더 오래 기다려야 했다. 지난해 2월 빅5 병원에서 폐암 환자가 수술을 받으려면 마지막 내원 이후 평균 22.8일 걸렸지만, 지난해 10월엔 41.6일로 1.8배 길어졌다.

암 환자는 내과에서 조직 검사 등을 통해 병명을 진단받은 뒤 수술·항암치료 등 구체적인 치료 방법을 결정한다. 수술이 필요하면 혈액·심전도 검사, 엑스레이 등을 통해 환자가 전신마취 수술을 받을 만한 상태인지, 다른 부위 암 전이는 없는지 최종 확인해 외과·마취통증의학과가 수술 일정을 잡는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는 “마지막 검사 이후 환자 상태가 바뀔 수 있어 가급적 2주 안에는 수술한다”고 설명했다.

의-정 갈등 이후엔 수술 전 검사를 모두 마쳐도 수술까지 한달 넘게 걸리거나, 잡힌 일정이 미뤄지는 경우가 빈번했다. 60대 ㄴ씨는 지난해 2월 한 국립대병원에서 전립선암 2기 수술을 받기로 했지만, 수술을 사흘 앞두고 3개월 미뤄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전공의 파업(집단 사직)’으로 수술할 의사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3개월 뒤 다시 찾은 병원에선 ‘다른 병원을 찾으라’고 권했다고 한다. 그는 전국을 수소문한 끝에 한달 뒤에야 한 종합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었다. ㄴ씨는 “‘암 치료는 시간싸움’이라는데, 수술 취소 통보를 받고는 암이 커질까 봐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고 말했다.

“신규 환자 못 받아”…쌓이는 건강 피해


수술 일정이 잡힌 환자는 그나마 운 좋은 경우일 수 있다. 암 판정에도 각종 검사를 받는 데 1년 이상이 걸리거나, 항암치료를 받을 병원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상일 울산대 의대 교수(예방의학)는 “환자가 처음 내원해 암 진단을 받고, 몇개의 암이 있는지 검사하기까지의 시간이 상당히 길어졌다”며 “환자들이 체감하는 치료 소요 시간은 (마지막 검사 후 대기 시간보다) 훨씬 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최근 식도암 3기 진단을 받은 70대 ㄷ씨는 집 근처 경남에서 항암치료를 받으려 했지만, 신규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다. 한 상급종합병원에선 ‘기존에 밀린 환자를 보기도 어려워 신규 환자 항암치료가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전공의 집단 이탈이 대형병원 수술 기능에 ‘직격탄’이 됐다. 이전에는 전공의 2~3명과 교수 등 전문의가 팀을 이뤄 수술했지만, 지금은 교수 1명과 진료지원(PA) 간호사 등이 수술방에 들어간다. 간호사가 수술방에서 적법하게 할 수 있는 처치가 의사보다 적어, 교수 몫의 일이 늘고 피로가 쌓인다. 김윤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상급병원의 중증 암 질환 수술 건수(건강보험 산정특례 기준)는 지난해 2~10월 10만1569건으로 전년 동기(12만1102건)보다 16.1% 감소했다.

수술과 약물 치료 등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은 희귀 질환 치료 역시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전남대병원의 희귀·난치성질환 진료(입원·외래) 건수는 의-정 갈등 직전인 지난해 1월 4622건에서 그해 6월 3836건으로 5개월 만에 17.0% 줄었다. 부산대병원도 같은 기간 3986건에서 3336건으로 16.3% 감소했다.

환자 건강 피해가 ‘위험수위’라는 경고가 이어진다. 서울대 의대 교수(예방의학) 출신인 김윤 의원은 “의료진의 피로 누적 등으로 암 환자가 수술 받기까지의 시간은 앞으로 더욱 길어질 것”이라며 “전공의가 복귀해 의료 공백을 해소하는 것이 최선이나, 그 이전에도 병원들이 마취 전문 간호사나 입원 전담 전문의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수술 적체를 최대한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끝>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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