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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 팩트체크
부정선거 의혹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2020년 총선 직후 일부 낙선자가 부정선거로 인해 선거 결과가 뒤집혔다는 의혹을 제기했을 당시엔 이를 믿는 사람이 드물었으나,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30%를 웃돌기에 이르렀다. 윤석열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발령의 명분 중 하나로 부정선거 의혹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온 열성 지지자들은 “Stop the Steal(표 도둑질을 멈춰라)”을 외친다. 부정선거 논란이 국론 분열의 진원지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정선거 의혹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장기 투표지’다. 투표관리관의 날인이 뭉개져 빨간 원처럼 보이는 투표지를 말한다. ‘일장기 투표지’가 처음 발견된 건 2021년 6월 인천 연수을 국회의원 선거 재검표장에서다. 2020년 4·15 총선에서 패배한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해 재검표가 실시됐다. 이날 송도2동 제6투표소에서 날인이 뭉개진 투표지 294장이 발견돼 무효표로 처리됐다. 민 전 의원은 “도장을 찍은 공무원도, 이를 본 사람도 없었다”며 “투표장에도, 개표장에도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과연 4·15 총선 당일 송도2동 제6투표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당시 6투표소의 투표관리관은 공무원 H씨 였다. 그는 2022년 5월 23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인영(印影)이 뭉개진 투표지를 본 기억은 없다”고 증언했다. 민 전 의원에 힘을 보태는 증언이다. 취재팀은 H씨를 찾아가 당시 상황을 확인하려 했으나 “드릴 말씀이 없다”며 한사코 취재를 피했다.

하지만 그가 또 다른 중요한 증언을 한 사실이 재판기록에 남아 있다. H씨가 직접 투표관리관 관인(官印)을 찍지 않고 “사무원에게 찍도록 했다”는 것이다. 당시 투표소엔 2명의 사무원이 있었다. 당시 재판기록을 꼼꼼히 검토한 결과 투표사무원 중 1명인 20세 대학생 A씨가 2022년 4월 29일 재판정에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아르바이트로 투표사무원을 했던 A씨는 지금 미국에서 유학 중이다. 취재팀은 A씨를 인터뷰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A씨의 부모는 “취재를 도와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머지 1명의 신원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확인할 수 없었다.



선관위 20세 알바 “만년도장 흐려지면, 스탬프 찍으라 했다”
스탬프를 묻힌 뒤 만년도장을 찍어본 결과 인영이 번진 ‘일장기’ 모양의 날인이 나왔다. 오른쪽 사진은 21대 총선 인천 연수을 송도2동 6투표소 투표사무원 A씨가 자필로 작성한 자필 답변서. [사진 법무법인 시완 최길림 대표변호사]
하지만 당시 A씨가 법정 출두하기 전, 선관위 측 변호인에 자필 답변서를 쓰고 서명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길림 변호사는 “A씨가 증인으로 채택되면 재판부에 제출하기 위해 서면 질의응답서를 작성하고 서명까지 받아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질의응답서에 따르면 A씨는 H 관리관을 대신해 옆에 앉은 다른 사무원과 번갈아가며 투표지에 도장을 날인했다. “장수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투표관리관의 관인은 잉크가 내장돼 있어 따로 인주나 스탬프를 묻힐 필요가 없는 ‘만년도장’이다. 하지만 A씨는 어떤 이유에선지 ‘스탬프’를 묻혀 도장을 찍었다고 했다. 그는 “도장을 찍으면서 적색 스탬프를 일부 사용했으나 인주를 사용한 적은 없다”고 질의응답서에 적었다. 만년도장에 인주나 스탬프를 묻히면 결과물은 뭉개져 찍혀 나오고 ‘일장기’처럼 보이게 된다. 여러 차례 실험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과물이 정상적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A씨는 이를 투표관리관에게 보고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질의응답서에서 ‘(인영이 번진) 투표관리관 날인 모양을 본 적 있나’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그 이유는 A씨가 취재에 응하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투표관리관에게 문제 제기나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A씨의 질의응답서에도, H 관리관의 법정 진술에도 공통적으로 “아무런 보고가 없었다”고 적혀 있다. 결과적으로 도장이 뭉개진 투표지를 제대로 확인해 보지 않아 정상적인 투표지로 분류돼 유권자들에게 배포됐고, 개표에서는 유효표로 분류됐다가 재검표 과정에서 발견돼 무효처리됐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A씨는 왜 스탬프를 묻히며 날인했을까. 그는 “만년도장이 흐리게 나온다면 책상에 있는 적색 스탬프를 사용하라는 안내를 받았다”고 적었다. 투표소 현장책임자가 투표사무원에게 잘못된 교육을 한 셈이다.

일장기 모양 날인 주위로 동그란 ‘링’이 이중으로 찍혀 있다. 도장업체 측은 “스탬프를 사용한 흔적”이라고 했다. [『STOP THE STEAL』 캡처]
만년도장에 스탬프를 찍으면 백발백중 도장이 뭉개지는 것일까. 경기도 일산에서 32년간 도장가게를 운영 중인 L씨(58)는 “만년도장은 일반적으로 1000장 정도 찍으면 잉크가 떨어질 수 있어 리필을 해야 하는데, 만약 잉크가 없는 상태에서 적색 스탬프에 찍어 썼다면 전체가 똑같이 벌겋게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도장가게 점주 P씨에게 ‘일장기 투표지’ 사진을 보여주자 “일장기 모양 주위로 동그란 테두리가 찍혀 원형이 2중으로 보이는데, 그게 바로 스탬프를 사용한 흔적”이라고 했다. 만년도장은 바깥 테두리보다 안으로 약간 들어가 있는 부분만 찍히는 것인데, 스탬프를 묻히면 안쪽뿐 아니라 바깥 테두리에도 잉크가 묻어 동그라미가 2중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일장기 투표지’를 주장한 사진이 오히려 스탬프를 사용했다는 증거가 된 셈이다.

‘일장기 투표지’의 진실을 밝히는 데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는 A씨의 진술은 왜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걸까. 2022년 4월 29일 천대엽 대법관은 ‘직접 행위자’인 A씨야말로 ‘핵심적인 관련자’라며 직권으로 증인 채택하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A씨는 결국 법정에서 진술하지 못했다. 민 전 의원 측의 반대 때문이었다. 원고(민 전 의원) 측 권오용 변호사는 “피고 측(선관위)에서 날인 과정에 대해 해명도 한마디 안 하다가 지금 와서 사무원이 날인했노라 하고 정보도 없이 증인신문하는 것은 상당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대신 H투표관리관에 대한 증인심문이 진행됐다. 인영이 번진 투표지를 “본 기억이 없다”는 그의 법정 발언은 지금까지 부정선거론자의 핵심 근거로 인용되고 있다. A씨가 스탬프에 찍어 날인했다는 사실이 재판정에서 공개됐다면 ‘일장기 투표지’ 논란은 다른 국면으로 흘렀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재판부는 “스탬프의 잉크를 묻혀 날인하는 경우 송도2동 제6투표소에서 발견된 투표지와 유사한 형태의 인영이 현출되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투표지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다량의 투표지가 위조됐다고 추단하기 어렵다”며 민 전 의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제로 무효처리된 294장의 ‘일장기 투표지’도 민 전 의원 137표, 정일영 당선인 111표 등으로 나눠져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도 기각의 이유로 작용했다. 하지만 A씨의 법정 진술이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훗날 의혹이 증폭되는 빌미가 되고 말았다.

취재 결과에 대해 민 전 의원의 입장을 물어보았다. 민 전 의원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투표사무원의 진술로 우리의 주장을 탄핵할 수 없다”며 “재판 과정에서 투표사무원을 증인으로 세우려 했지만 매수 가능성이 있는 ‘오염’된 사람으로 판단해 ‘일장기 투표지를 본 적 없다’는 투표관리관을 증인으로 세운 것”이라고 반박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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