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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 <15> 부담부증여와 사기

편집자주

인생 황금기라는 40~50대 중년기지만, 크고 작은 고민도 적지 않은 시기다. 중년들의 고민을 직접 듣고, 전문가들이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이혼 소송, 부모까지 번지기도
실질적 권리 행사 여부가 관건
이별, 욕심보다 성숙한 태도 필요


Q:
50대 여성 A다. 결혼 후 수십 년간 시어머니(B씨)를 모시고 살았다. 남편과는 순탄하진
않았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그러다 약 1년 전 시어머니 명의의 다세대주택 2채를 내 명의로
이전받았다.
문제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불거졌다. 6개월 별거 후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이혼할 줄 모르고 명의 이전을 해준 것이니, 돌려 달라"는 민사소송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을 제기했다. 시어머니는 소송에서 “나(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이혼소송을
할 것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을 줬다. 며느리가 이혼소송을
제기할 것을 알았더라면 명의 이전 서류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 내외가 이혼하지 않고 살기를
강하게 바란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예전부터 “부동산 명의를 너로 바꿔주겠다”고 이야기를 해오셨다. 그 집은
시어머니 명의로 매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매수 자금 마련부터 매수 이후 관리(임차인 관리,
재산세 납부 등)까지 우리 부부가 도맡아온 부동산이다.
이 부동산을 시어머니에게 다시 돌려줘야 할까?





A:
결혼이 ‘가정과 가정의 만남’인 것처럼, 이혼도 ‘가정과 가정의 헤어짐’이다. 필자는 이혼 전문 변호사다 보니, A씨와 B씨처럼 부부의 이혼에 따른 문제가 부모에게까지 번지는 경우도 흔하게 마주했다. 특히 A씨처럼 부모와 경제적으로 상당 부분 얽혀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먼저, 시어머니 B씨는 왜 며느리에게 소송을 했을까? 부동산(다세대 주택 2채)이 며느리 명의라도 아들이 이혼소송에서 일정 비율(재산분할)을 받아올 수 있는데 말이다. 답은 간단하다. 승소하면 부동산은 B씨 명의가 된다. 이혼소송에 따른 재산분할을 한다면 ‘부동산 중 일정 비율’을 받겠지만, B씨가 민사소송에서 승소하면 ‘부동산 지분 100%’가 B씨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B씨는 두 종류의 법리를 주장할 수 있다. △‘아들 부부가 이혼하지 않고 잘 사는 것을 조건으로 증여한 것’이라는 주장(부담부증여)과 △‘며느리에게 속았다. 아들 부부가 이혼할 줄 알았다면 증여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주장(사기에 의한 의사 표시이므로 취소)이다.

첫 번째 주장은 유효할까?

‘이혼하지 않고 잘 사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증여’를 정확한 법률 용어로는 ‘부담부증여’라고 한다. 부모가 자녀(또는 자녀의 배우자)에게 증여를 할 때, 소위 ‘효도 계약’도 있는데 이 역시 부담부증여다. 예컨대, ‘자녀에게 건물을 증여하지만, 부모가 살아있을 때까지 부모가 월세를 받아서 사용하는 조건’ 혹은 ‘자녀가 부모에게 평생 생활비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증여하는 경우다. 조건을 어길 경우 증여를 철회하는 것이다. 하지만 B씨는 ‘이혼하지 않고 잘 사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고 증여를 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부담부증여 주장은 유효하지 않다.

그렇다면, 두 번째 주장은 어떨까?

우리나라 민법은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B씨는 “며느리가 나에게 이혼할 것이라는 것을 속이고 증여를 받았다. 며느리에게 사기 당해서 증여한 것이니 증여의 의사표시를 취소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A씨가 B씨를 기망(사람에게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행위)한 것이라면 B씨가 승소한다.

그렇다면 기망 여부를 따져야 한다. 의사표시 취소에 이르는 기망(사기)에 해당하는 기준은 세 가지다. △일방에 의한 고의적 기망행위가 있고 △이로 말미암아 상대방이 착오에 빠져 △기망행위가 없었더라면 사회통념상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법률행위다. 하지만 A씨는 B씨에게 ‘이혼하지 않겠다’고 기망한 적이 없었다.

실제로 법원은 “증여 당시, A씨가 이혼소송을 제기하려는 걸 몰랐다는 것은 B씨 주관적인 내심의 의사에 불과하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특히 A씨 부부가 부동산 등기권리증을 갖고 재산세를 납부하며 실질적 권리를 행사한 점을 토대로 “본래 A씨 부부가 취득한 재산으로, B씨에게 명의신탁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즉, B씨의 증여도 유효하고 기왕에 시어머니 명의였던 것도 명의신탁(재산에 대한 소유자 명의를 실소유자가 아닌 다른 사람 이름으로 해 놓는 것)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A씨가 승소했지만, 최종적으로 2채의 다세대 주택이 모두 A씨의 것이 된 것은 아니다. 이혼소송을 통해 재산분할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부부가 함께 이룩하고 유지한 재산을 정당하게 재산분할하게 됐다”는 측면에서 법원 판결이 공정하고 본다. 다만, A씨는 얼마나 큰 배신감과 상처를 받았을까. B씨 역시 패소하면서 모든 소송비용을 며느리에게 추가로 지급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B씨와 A씨의 남편 역시 소송 과정에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는가.

필자는 헤어짐을 앞둔 부부에게 당부하는 것이 있다.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헤어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성숙한 이별은 건강한 향후 삶의 첫걸음이다. 헤어질 때 무리하게 욕심을 내면 상대방뿐만 아니라 결국 본인에게도 상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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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혜 법무법인 에셀 파트너변호사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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