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오른쪽)을 뒤에 두고 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민간 경제사절단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을 만나 대(對)미 투자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트럼프 정부 관세 정책의 ‘집행자’인 러트닉 장관은 이 자리에서 “대미 투자에 따른 인센티브를 누리려면 10억 달러(약 1조4400억원) 이상 투자해야 한다”고 ‘기준선’을 제시했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한 삼성·현대차·LG·한화그룹 사장급 임원들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모처에서 40여 분간 러트닉 장관을 만났다. 대한상의가 주도한 경제사절단 활동의 일부였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 투자 정책’ 각서에 서명한 날이었다. 러트닉 장관은 사절단과 면담에서 각서에 담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절차)’을 언급하며 “미국에 10억 달러 이상 투자해야 패스트트랙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언급은 미국에서 기업이 투자 인센티브를 얻을 수 있는 최소 규모로 추정된다.
미국은 외국 기업이 미국의 첨단 기술과 핵심 산업에 더 많이 투자하도록 촉진하기 위해 패스트트랙을 만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안보 심사를 간소화하거나 환경평가를 신속하게 하는 등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최태원 회장은 같은 날 워싱턴DC의 한 호텔에서 최종현학술원 주최로 열린 ‘2025 트랜스퍼시픽다이얼로그(TPD)’ 행사장에서 취재진이 대미 투자 계획을 묻자 “어느 기업도 ‘트럼프 시기에 얼마를 투자하겠다’고 생각하며 다가가지 않고, 이게 내 장사에 얼마나 좋냐 나쁘냐를 얘기한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 생산 시설을 좀 더 원한다고 얘기하지만, 우리는 인센티브가 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대미 투자 인센티브와 관련해 “꼭 돈만 갖고 따지는 게 아닐 수 있다. 여러 가지 다른 인센티브가 있을 수 있다”며 “한국과 미국이 같이 해서 서로 좋은 것을 하는 게 지금 필요하다”고 답했다. 러트닉 장관이 언급한 ‘패스트트랙’과 겹친다.
경제사절단은 이번 방문에서 백악관 고위 당국자와 의회 주요 의원들을 만나 한국이 미국에 제조업을 중심으로 지난 8년간 16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선·에너지·원자력발전·인공지능(AI)·반도체·모빌리티·소부장(소재·부품·장비) 등 6대 분야를 중심으로 한·미 양국 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도 제안했다.